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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Oct 26. 2019

타임머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기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타임머신

 내게 최고의 바다가 어디냐 묻는다면, 답은 주저 없이 삼척 근덕의 궁촌 바다다. 궁촌 바다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해수욕장 부분과 방파제가 있는 궁촌항으로 나뉜다. 이 중 내가 좋아하는 바다는 지금은 많이 달라진 궁촌항이다. 어릴 적 그곳에는 짧은 방파제와 작은 선착장이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어업이 성행했던 기억은 없다. 주변에 이름을 날리던 해수욕장들과 달리 피서철에도 심하게 북적이지 않던 바다다. 화려한 지중해니, 캐리비안이니 가본 적 없지만 다른 화려하고 넓은 해변 어디에 비해도 내게는 궁촌이 최고, 아니 요즘 표현으로 최애다.


 이곳은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매년 찾던 곳이다. 친척 어른이 사시는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고향집 찾아가듯 궁촌을 갔다. 매번 머물던 작은 마당이 있는 민박집엔 파도소리가 하루 종일 들리는 바다방과 마당 안쪽 산방이 있었다. 넓고 바닷소리 들리는 바다방에 묵을 수 있을 땐 운이 좋은 여행이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호들갑 떨며 샤워를 해야 했고 화장실은 무서웠다. 에어컨도 있을 리 만무하고 선풍기도 감지덕지였다. 그래도 서울의 낮은 아파트에 살던 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평상과 바닷바람에 행복했다.


엘범에서 찾은 어린시절 궁촌 바다에서 노는 나의 모습


 민박집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주 억센 강원도 사투리를 쓰셨다. 튜브를 주부라고 발음하시니 십몇 년을 만나도 대화는 쉽지 않았다. 내 이름 초성은 ㅎㅈ인데, 이 발음을 어려워하셔서 제대로 불러주신 적도 없다. 그래도 날 때부터 매년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신 분들이고, 새벽에 그물 걷으러 나가실 땐 조용히 나를 태워주시곤 했던 정 많은 분들이다. 돌이켜 보면 엄한 친할아버지와 조금 이상한 친할머니보다 더 편하게 정 붙였던 분들이다. 그러니 궁촌은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내 마음속 고향 같은 곳이다. 바다와 사랑에 빠지고, 또 물에 빠지는 사고로 물을 겁내게 된 것 모두 궁촌 앞바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담임으로 부임해 6학년 1, 2학기도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 S는 초임 교사였다. 키가 작고 아담한 체형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교육관이 확고하고 진취적이었다. 기성세대 교사들과 부딪힐 법한 실험적인 교육을 많이 선보이던 분이셨다. 다행히 반 아이들이 잘 따르기도 했고 학부모들의 지지도 있어 우리는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글쓰기와 토론을 중요시하셔서 항상 토론을 했고, 반 아이들이 적은 수많은 글을 모아 꽤나 두꺼운 학급문집도 만들었다. 이를 시기한 다른 반 아이들 덕분에 그다음 학기에는 모든 반이 경쟁적으로 글쓰기에 뛰어들었으니, 아주 훌륭한 선생님임에 틀림없다.


 S선생님이 얼마나 진취적이었냐면, 매달 우리는 산으로 들로 도시로 놀러 다녔다. 학교 뒤의 은 산에 가서 곤충채집도 하고 피라미 잡기도 했다. 그러다 여름 방학이 찾아오자 우리 학급 전체를 이끌고 강촌 산골의 오지 마을로 여행을 떠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교장, 교감의 반대가 거셌지만 학부모 전원의 동의서를 받아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탈 수 있었다. 짧은 방학 캠프 같은 건 가봤어도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떠나는 산골 여행은 처음이라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구곡폭포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었고 허름한 민박집 옆의 보라색 도라지 꽃들을 비 떨어지는 처마 아래 앉아 보던 기억이 난다. 이때가 90년대 말이었는데, 떠올려보면 기차며 복장이며 안전요원 없는 여행이며, 세기말 감성 제대로다.


문배마을과 구곡폭포에서 찍은 사진들. 보라색 도라지꽃이 보인다.


 내 학교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6학년을 마치는 겨울방학에 S선생님과 몇몇의 반 친구들은 궁촌으로 여행을 갔다. 참 친했는데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친구들 이름을 모두 잊어 아쉽다. 무궁화호를 타고 강릉선을 달려 또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갔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지만 그 나이에 어딘들 재미없을 수가 없다.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에서 놀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타임머신을 묻기로 했다. 요즘도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유행이었달까. 정부나 지자체 행사에서도 곧잘 하곤 했으니 지난 세기의 유행이 맞지 싶다. 선생님이 준비해온 작은 통에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상하지 않게 비닐에 넣어 닫은 후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 포장했다. 민박집에서 빌린 삽으로 소나무 숲 한편에 나무 개수와 위치를 곱씹으며 파묻었다.


 10년 후에 꺼내자고 했을까? 아니면 15년? 20년은 너무 긴 것 같고. 어느새 시간은 흘러 20년은 훌쩍 넘겨버린 지금, 언제 파보자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번째 나무 밑에 묻었는지 기억날 리도 만무하다. 친구들 이름도 기억나지 않으니 당연히 연락도 되지 않고 S선생님 또한 만나 뵌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마지막 만났을 때 타임머신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던걸 보면 선생님 또한 그때를 잊어버렸을까. 20대 초반 처음 부임한 학교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힘 있게 가르치던 선생님은 지금은 어떤 선생님이 되었을까. 왜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준 그 선생님에게 연락도 드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스무 살이 넘어 그 민박집에 묵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뵌 적이 있다. 맨날 어리기만 할 줄 아셨는지 180이 넘는 거구가 된 내가 차를 운전해 나타나자 할아버지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셨다. 기 때부터 보고 데리고 다니셨으면서 갑자기 존댓말을 하시며 나를 '서울에서 오신 손님'으로 부르셨다. 발달장애가 있어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도 나를 감싸던 첫째형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다행히 할머니만큼은 반갑게 안아주시며 밥상을 내주셨고, 선물로 사간 술을 받으신 할아버지는 취기가 오르자 조금 편하게 대해주셨다. 그때의 어색했던 공기 때문인지 보고 싶어도 발길이 머뭇거려졌다.


궁촌은 아니지만 임원항과 삼척 바다. 삼척 바다색은 참 예쁘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좋아하는 삼척 바다를 잊지 못해 자주 찾았다. 궁촌은 아니고 더 남쪽 임원항을 여러 번 다. 임원에 가면 선착장 근처 고무대야 놓고 회 파시는 할머니들께 회나 게를 사 먹으며 민박집에서 1박 하곤 한다. 이 민박집주인 내외도 친절하나 어릴 적 내가 가졌던 친근함을 느낄 순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몇 번 궁촌에 들어가 차를 세웠다. 관광항구로 변모해 마을을 부흥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는데 잘 안된 듯싶다. 매번 비수기여서 그랬는지 마을 주민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방파제에도 올라보고 모래사장도 걸어보니 어릴 땐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민박집 앞 작은 바위섬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코앞에 보였다. 민박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들어가 인사를 드릴까,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어쩐지 나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매번 발길을 돌렸다. 워낙 연세가 많으셨고 병치레를 하신다는 소식도 들었던 터라 안 계실까 봐 무서웠다 얘기하면 나 편하자고 하는 핑계일지 모르겠다.


 타임머신을 묻을 때 미래의 나에게 무슨 내용으로 편지를 써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어보면 이불 걷어찰 말을 썼을게 분명하니 기억이 안 나는 게 오히려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왜 S선생님께 전화 한번 하지 않고 만남도 청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후회할걸 알면서도 민박집 문가에서 발을 들이지 못했을까. 떳떳하지 못해서일까. 연락 없이 지냈던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일까. 지금은 닿을 수 없는 호시절을 마주하기 두려웠던 걸까.


 글을 적다 보니 6학년 식목일에 학교 화단에 식수하며 묻었던 타임머신이 기억났다.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어떤 말을 적었을까.


 그 많던 타임머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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