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케시에서 저녁이 되면 노을을 보러 람줄라로 자주 갔다. 그곳에도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강에 띄울 수 있는 꽃접시를 들고 돌아다닌다. 맴, 플리즈. 헬로 맴. 아이들이 다가오면 샘은 늘 그렇듯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서로 미소를 꽃피운다. 그러다보면 다른 아이들도 모여 순식간에 인기쟁이 선생님이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샘은 친구를 만들었다. 그 날은 신발을 안 신고 있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나이는 7-9살정도였다. 신발이 없는 소녀에게 부모가 어디있냐고 묻자 아빠는 모르고, 엄마는 사고가 나서 아프다고 했다. 집에 누워있고 계속 치료가 필요한데 본인 동생도 있어서 열심히 팔아야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울음을 참으려 다른 곳을 보았다가 애써 말을 이어가길 반복했다. 차분한 분위기는 다른 아이의 장난으로 순식간에 상황이 풀어졌다가도 장난이 진심이 되어버려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도 했다.
각자 알고있는 영어로 몇마디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는 순간들이 많아지자 아이는 꽃접시에 있던 꽃을 줬다. 나는 아이에게 10루피를 꺼내 주자 아이는 이건 나를 위해 행운을 비는것뿐이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 나는 이 추운날에 아이가 맨발로 다니는것도 마음에 걸려 돈을 더 주고 싶었으나 소액권이 없어 줄 수 있는 돈은 20루피뿐이었다. 내가 그 돈을 건네자 아이는 다른 꽃접시를 들고 강쪽으로 갔다. 그리고 정식으로 그 꽃접시를 띄워줬다. 강물에 손을 넣어 꽃 접시를 띄우고 돌아온 아이의 손을 만져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아이의 손을 내 볼에 비비고, 입김으로 호호 불어주며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만들려고 했다. 하루종일 차가웠던 아이의 손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 때 다른 손님 들이 오자 아이들은 우다다 떠났다.
샘과 나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것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돈이 많았더라면 이 친구들이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고, 밥 먹고 사는 걱정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고민이 많게 해줄 수 있을텐데. 우리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근처에서 파는 쿠키 한봉지를 샀다. 아이들에게 주자 머뭇거렸다. 샘과 내 입에 쿠키를 하나씩 밀어넣고 같이 먹자고 얘기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손을 내밀어 쿠키를 먹었다. 그러면서 다시 금세 왁자지껄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은 구걸을 바라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오면 눈치를 봤다. 단순히 사람들이 쥐어주는 돈과 동정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식으로 돈을 쥐어준 어른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갔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당장 필요한 돈을 얻게되서 행복한 마음과 동정을 샀다는 마음이 겹쳐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 아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그 보호자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의 끼니걱정 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교육비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이 친구가 꽃접시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하며 새로운 세상에 살지 않았을까. 나와 샘은 이런 얘기를 나누며 다음날에도 그곳을 가 쿠키를 한봉지 사주고서 돌아왔다. 리시케시를 떠나기 전 한번 더 아이들을 보고 싶어 갔지만 아이들은 자리를 옮겼는지 안 보였다.
샘은 사람들이 참 무심하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을 기린다며 액자나 신과 관련된 상품을 살 때는 100루피건 300루피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는 사람들인데 아이들의 꽃접시인 10루피는 그렇게도 고민을 한다며. 신에게는 평등한 세상을 바라며 눈 앞에 펼쳐진 아이들의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하는게 무심하고 어리석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인도 사람들이 모순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도 사람들은 신이 다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아무렇지않게 마리화나를 한다며. 마약에 쪄들어있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러자 샘은 본인도 모순이라며 본인은 진짜 부자면 이런 아이들이나 병든 노인들을 돌봐줄 수 있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펜트하우스도 갖고 싶다고 했다. 그의 귀여운 모순 고백에 나는 아닌척 웃고 말았지만, 그때의 나도 모순적인 인간인건 매한가지였다. 나를 위한 초콜릿이나 커피는 포기할 수 없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10루피를 고민하는건 같았으니까. 이제와서야 그때 컵라면을 사들고가 더 같이 밥을 나눠 먹었어야 했는데, 더 자주 찾아가 친구처럼 굴었어야 했는데, 믿고 의지할만한 어른처럼 굴었어야 했는데, 싶다. 그때 소액권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작은 돈을 쥐어주고 온 내가 부끄럽다. 지금에서야 부끄러운 내가 또 한번 창피하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으로 돕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한번도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준 적이 없었다. 먹을걸 주거나 밥을 사줬다. 돈이라는 물질을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돈을 주면서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친구처럼 지냈다면 나도 그걸 받는 아이들도 서로 거부감이 없지 않았을까. 나는 무심하게도 이제서야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