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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Oct 22. 2023

고아와 크리스마스

나는 단순하게 리시케시에 요가원이 많으니까 요가와 명상이 유명할거라 생각했다. 왜 요가원이 많은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2주정도 지내보니 요가와 명상을 잘 할 수 밖에 없는 완벽한 환경이구나 싶었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관광지도 없고, 요리가 다양해서 미식 탐방을 할 일도 없다. 그 동네의 유일한 액티비티는 아주 길게 흘러내리는 강가를 따라 래프팅을 하는 것. 골짜기 속 깨끗한 물이 흐르는 그곳은 요가원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지갑은 늘 그렇듯 가벼워 요가원을 가지 않기로했다. 큰 마음 먹고 요가원 시세를 알아보려고 한 요가원을 갔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요가를 왜 배우러 왔냐고 물었다. 나는 요가로 유명한 곳이니 궁금해서 배우러 왔다고 했다. 이때부터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왜 궁금하느냐”

 - 여행 오기전에도 종종 요가를 하면 몸이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가의 고장이라는 인도는 무엇이 다른가 궁금하여 왔사옵니다.

“여기가 고장이라 하더냐”

 - 그렇사옵니다. 이 동네 걸어다니면 여기저기 요가 포스터가 있고 하나같이 우리가 오리지널이라고 외치던디요.

“오리지널 요가란 어떤것이냐”

- 저도 잘 몰라서 와봤습니다만.. 그래서 얼ㅁ..

“얼마면 하겠느냐”

- 모르겠습니다..지나가는 여행객이라 지갑이 넉넉치않아 금액을 보고 할지말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디다.. 얼마인지요.

“금액이 중요하느냐”

- 지금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와는 안 맞을지도 몰라서 일단 하루만 체험해보고 싶습디다.

“흐음 하루라”

“금액이라”

“흐음”


나는 금액을 알아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금액을 듣기도 전에 선생님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여기서는 수업을 들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고, 금액을 듣고나서는 요가원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시장으로 가 5,000원을 주고 싸구려 요가매트를 샀다. 맥간에서 산 싱잉볼이 있으니 매일 명상과 요가를 해야지. 꼭 선생님이 있고 함께 수련하는 동료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나. 나에게는 유투버 요가소년 선생님이 있으니 걱정 없었다. 


당연히 매일 요가와 명상은 남들의 일이였고, 요가매트에서 홈트나 하던 나는 리시케시에서 정말 무료했다. 여기는 볼만한 관광지가 딱히 없었고, 엄청 맛있는 음식도, 할만한 액티비티도 없었다. 대신에 명상할 수 있는 푸른 강줄기가 있었고, 수많은 요가원이 있었고, 몸도 가볍게 만들어줄 요거트 볼이나 샐러드 같은 음식도 있었다. 바로 옆방에 살고있는 인도인 커플은 마당에 앉아 자주 명상을 했다. 신비로운 음악을 틀고서 명상법에 도움되는 말을 내뱉기도 하고, 기타를 한줄씩 튕겨 연주하기도 했다. 평화롭고 무탈하고 아무것도 없는 일상이였다. 요가와 명상을 하지 않는 나에게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갖게되자 새로운 자극을 얻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다 충족하고 싶어서 여기를 떠나기로 다짐했다. 델리에서 룸메이트들이 추천해준 고아가 생각났다. 유럽 문화가 남아 있어서 성당도 많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문화라서 또 다른 인도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어디를 여행하든 상관없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꼭 고아로 가야해! 외치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인도에 오기 전 부터 고아가 궁금하긴 했다. 히피들이 붐비는 곳이라길래 영화 ‘노마드랜드’를 떠올리며 북인도 여행하고 가봐야지 싶었다. 나에게 고아는 히피라는 키워드 뿐이였는데 친구들 덕에 크리스마스라는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리시케시 2주차가 되어서야 달력을 보고 몇일 뒤면 크리스마스 이브라는걸 알아챘다. 


고아를 가려고 부킹닷컴을 열었다. 숙소는 내 예상보다 비쌌다. 어 뭐지..? 내가 쿠마르산에서 1박에 5만원을 쓰면서도 손을 떨었는데 고아에서 1박에 5만원이 넘다뇨.. 심지어 그 금액으로는 모래사장 위에 밀짚 지붕을 만들어두고서 거기에 간이 침대를 설치해둔 격이였다. 고아가 히피들의 성지라길래 인도 비행기를 끊기 전에도 꼭 가보아야지 했는데 이렇게나 히피스러울줄이야. 내가 말하는 집은 실외와 실내가 분리되어있는 공간인데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된 집이 많았다. 모래사장 위의 침대가 자연스러운 숙박 형태였다. 물론 가격을 높이면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숙박비로 2만원정도 지불하는 나로서는 1박에 7만원 이상 쓰는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거리가 워낙 멀어 한번 이동하면 최소 일주일은 머물고 싶을텐데 숙박비만 5-60만원이라니. 고아 일주일 숙박비는 인도 한달 숙박비와 같거나 더 비쌌다. 히피들의 성지인데 왜 이렇게 비싼거지. 숙소를 찾아볼수록 나는 머리를 더 쥐뜯었고,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돈이 많았다면 10분만에 끝날 문제를 1시간 지나 2시간 가까이 붙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여 좋은 공간으로 가서 환기 시키기로 했다. 카페로 가서 맛있는 음료를 시켜두고서 이번엔 폰이 아닌 맥북을 펼쳐 찾아봤다. 장소도 기기도 바뀌었지만 내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하루를 날렸다.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는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다. 돈이 없으면 시간도 없어진다. 돈이 많았다면 마음에 드는걸 결제하기까지 10분밖에 안 걸렸을거야. 텅텅 빈 지갑을 가지고 그나마 어디가 나은지 이리저리 비교하다보니 숙소를 고르는데 하루가 걸렸다. 샘에게 고아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어보니 겨울부터 남인도는 성수기라고 했다. 북인도는 너무 춥고, 남인도는 따듯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남인도로 여행간다고 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은 완전 피크라했다. 왜 난 몰랐을까. 크리스마스 문화가 자리잡은 그 곳이 나 뿐만 아니라 그 수많은 인도 사람들도 함께 가고싶은 곳이라는걸 왜 몰랐을까. 이렇게나 무지하고 아무 생각 없는 나에게 짜증이 났다. 


쉬익쉬익 거리며 어떻게든 숙소를 몇가지를 골랐다. 후보지를 두고서 고아를 어떻게 가는지 찾아봤다. 나는 단순하게 기차타고 하루정도면 가겠거니 생각했다. 아무리 멀어도 하루면 되겠지. 게다가 버스가 아니잖아. 지연이 된다고 해봤자 새벽 일찍 출발하면 밤에는 도착하겠지. 아, 역시 나는 인도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였다. 샘에게 대충 숙소를 알아놨다며 기차까지 끊어서 내일 모레 리시케시를 떠서 고아에 도착하자고 했다. 샘은 내일 모레에 고아라고 말하는 날 보며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한국에서 “아ㄴㅕ엉하쉐요우” 라고 말하는 외국인 보는 눈빛이 확실했다. 고놈 참 외국인이구먼, 아주 구여워 죽겄어. 그런 눈빛. 리시케시에서 고아까지 가는 기차는 37시간이 걸렸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고아를 가려고 하지? 잠시 흔들렸다. 지금 당장 떠나도 모자랄판에 숙소랑 기차 알아본다고 하루를 보내는게 과연 맞는일인가. 그런 혼란속에서도 맥북에서는 눈치없게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왔다. 징글벨- 징글벨- 싱잉볼마냥 주기적으로 울려대는 징글벨에 마음을 붙잡고 기차를 알아봤다. 물론 비행기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리시케시에서 델리까지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델리에서 비행기를 타서 고아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아아 나는 가난한 여행자요. 숙소비만 해도 예산초과라 교통편에서는 안전성을 어느정도 보장하면서 크게 비싸지 않은 금액을 생각했다. 


미간에 주름이 늘어나고 내 머리를 쥐뜯는 시간이 길어져도 캐롤을 반복재생하는 내가 안쓰러웠나보다. 샘은 고아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가장 빨리갈 수 있는 방법과 금액을 물어봤다. 고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지금 기차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아의 극 성수기가 시작되서 쉽지 않을거라고 쐐기를 박았다. 따깔을 걸어줄 수는 있지만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따깔은 열차 출발 몇일 전 오전 10시에 오픈하는 소수의 티켓으로 선착순으로 구매할 수 있다. 대기명단이 존재해서 앞에 사람이 취소할 경우 그 다음 순번에게 탑승 권한이 부여된다. 


나는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하고서 알아서 하겠다며 호기롭게 전화를 끊었다. 역시 인도지. 내 마음대로 되는거 하나도 없지. 인도야 아무리 니가 그래봐도 나는 내가 어떻게든 하고싶은대로 할거야. 두고봐! 숙소도 기차도 내 마음대로 안되자 알 수 없는 반항심이 생겼다. 고아? 그래 내가 간다. 가서 돈 없어서 삼일만 자더라도 내가 갈거야. 갔다가 인도 친구들이 입을 모아 추천해준 최남단인 케랄라까지 다녀와버릴거야. 나 인도 북쪽부터 저 남쪽 끝까지 다 가버릴거야. 


누구냐. 누가 내 분노버튼을 누른게냐. 먼저 인도 기차티켓을 끊는 방법을 찾아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코레일 같은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해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회원가입부터 쉽지 않았다. 내 폰에 인증번호가 계속 오지 않아서 회원자격을 얻는 것만으로도 어려웠다. 나의 스트레스가 쌓여갈수록 샘은 친구에게 전화해서 구해달라할까? 물었지만 나는 마음대로 안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단호하게 “놉”이라고 외치며 샘의 폰으로 인증번호를 시도해보자고 했다. 1시간만에 기차를 구매할 수 있는 회원이 되었다. 어제 고아 숙소를 찾아보며 눈 빠지게 바라봤던 맥북을 오늘 또 다시 붙들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재빠르게 캐롤을 틀어 화를 눌렀다.


기차를 구매하려는데 좌석칸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밥에서 바선생 나온지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기차에 득실거린다는 바선생을 정말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지갑은 만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였다. 나와 또 다른 내가 서로 싸우고 타협해서 적당히 눈을 붙일 수 있는 등급으로 기차를 찾아봤다. 검색을 해보니 구매할 수 있는 기차표가 나왔다. 

 

“샘! 우리 내일 하루만 더 리시케시에서 지내고 고아로 가자!! 그럼 우리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하니까 짐 풀고 좀 쉬고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어. 한 3일 지내다가 케랄라로 넘어가버리자.”

 

샘은 그게 가능하냐며 여러번 되물었고, 나는 이것보라며 맥북 화면을 당당하게 보여줬다. “내 네이버 아이디가 뭐야. 천재지? 나 멋있지? 내가 할 수 있다 했지?” 나는 샘에게 우쭐거리며 바로 기차를 끊었다. 와 신난다. 이 캐롤을 이제 고아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면서 듣는거야! 조금 더 일찍 고아를 생각했다면 크리스마스 4일전 쯤에 가서 같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을텐데.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렇게라도 가는게 어디냐며 혼자 덩실덩실거렸다. 나는 신난 기분에 취해 케랄라 숙소까지 찾아봤다. 케랄라도 꽤 비쌌다. 아무래도 남인도 성수기니까 게다가 사실 연말에는 어디든 비싸지 않나. 당연한 걸 왜 자꾸 인도라는 이유로 까먹고 사는건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몇 없는 숙소 중 또 다시 형편없는 지갑으로 밸런스 게임을 열심히 하고서 갈만한 곳을 끝내 찾았다. 이 모든 미션을 깨고나니 해가 져버렸다. 나는 탈진했다. 맥북의 뜨거운 열기에 나의 열정에 분노까지 더한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다. 맥북을 닫고서 집으로 돌아가 드러누웠다. 배고픔도 귀찮았다. 드러누워 고아가는 기차에서 뭘할지 상상을 하다 믿기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진짜 고아를 가다니! 나는 벌떡 일어나 맥북을 열고서 끊은 기차표를 다시 찾아 보았다. 진짜 제대로 끊은거 맞겠지? 나는 불안해져 샘에게 같이 확인해달라고 했다. 동반 책임으로 물으려는 내 행동은 이미 세번째였다. 카페에서 한번, 집 오는 길에 한번, 그리고 지금 한번 더 똑같이 물었다.

“샘 이것봐. 여기서부터 여기니까. 리시케시에서 고아가는거 맞지? 그리고 3일 뒤에 고아에서 케랄라까지 가는 기차가 이건데, 한번 갈아타서 이렇게 날짜랑 다 맞지?”

 

샘이 맞다고 하는 순간, 기차표의 좌석 번호가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처음에 결제하고 캡쳐했던 사진을 켜봤다. 지금 홈페이지에서 조회했을 때 나오는 번호와 달랐다. 무슨 말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샘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대답을 듣고서 나는 고아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옮겼다. 내가 구매한 티켓은 따깔이었고 바뀌는 숫자는 대기번호였다. 우리의 대기번호는 152번이였다. 심지어 처음 결제했을 때와 지금 조회했을 때 3시간이 넘게 차이나는데 번호는 고작 3개 앞당겨졌을 뿐이였다. 갑자기 처음 델리왔을 때 봤던 인도 사람들의 인파와 어디를 걸어도 나를 치이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인구수가 느껴지면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내 마음대로 되는게 없으니까. 인도 프리미엄을 붙여 혹시나, 만약에, 설마 기차가 잘 못 될까 싶어서 숙소를 내일까지 무료 취소 가능한 옵션으로 구매해둔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현실에 도망가고 싶어졌는지 극심하게 허기졌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 매일 만들어먹는 지겨운 샐러드와 빵을 먹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신게 다였다. 머리를 이리로 저리로 굴린거에 비해 들어간 식량이 없었다. 샘과 피자를 먹으며 이야기하다 의견 충돌이 생겼다. 나는 대기번호가 이렇게나 많이 남았으면 고아를 못 갈 확률이 높은데, 그 확률 때문에 하루하루를 피말리는게 싫었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리시케시에서 오로지 맥북만 눈 빠지게 쳐다보느라 매일 가던 강가도, 동네 산책도, 멋지게 떨어지는 노을도 보지 못했다. 기차표가 따깔이라는걸 알게된 이후에는 10분에 한번씩 어플을 켜서 얼마나 바뀌었지 계속 확인했다. 만약에 고아를 가게 된다면 숙소를 예약해야하고, 예약하지 않는다면 또 얼마나 비싼 숙소만 남아있을거며 그 돈을 쓰는데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숙소를 예약해두자니 기차표가 안 구해지면 모든게 끝인데 하루에 7만원씩이나 하는 숙박비를 날릴 수 없었다. 그만큼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고있었다. 반면에 샘은 여행하는 내내 크리스마스 때는 고아에 가야하는거 알지? 하며 주술처럼 외치고 시도때도없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대는 나 놈과 남인도 음식을 사랑하는 본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고아는 꼭 가야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샘을 설득했다. 


“봐봐. 고아 간다고 알아보는 동안 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무것도 못했어. 그리고 신나기보다는 짜증나는 순간이 훨씬 많았어. 지금도 기차표가 어떻게 되었는지 10분마다 폰을 들여다보고, 대기번호가 안 바뀌어서 실망하고. 내가 뭘하든 계속 신경써야한다는 것도 싫고, 이것 때문에 숙소를 예약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것도 그만하고 싶어. 제일 힘든건 이 모든것 때문에 지금 여기를 즐길 수 없다는거야. 나 맥북이나 휴대폰만 계속 빤히 쳐다보느라 강가에 가서 여유로움도 못 즐기고, 노을도 놓치는게 너무 바보같아.”


샘도 그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너무 아쉬우니 오늘 하루까지만 더 기다려보고 기차표를 취소하기로 했다. 오늘이나 내일 아침이나 기차 취소 수수료는 어차피 같았으니까. 다음날 어플을 열어보니 우리의 기차표는 크게 앞당겨지지 않았다.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두자리 수로 줄었다면 나는 어김없이 기대하게되고 또 다시 희망을 걸어 말어 고민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썼을테니까. 그럼 샘은 또 기다려보자고 나를 설득했을테니까. 희망 고문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고아를 떠올리는 동안 크리스마스는 코 앞까지 다가왔다. 리시케시에 있는 몇몇 카페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품을 달아두기 시작했고, 라이브 뮤직과 소소하게 파티를 한다는 포스터도 벽보처럼 붙어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고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건 아니였다.


계획을 바꿔 고아를 가지않고 연초까지 여유롭게 리시케시를 조금 더 즐기기로 했다. 여전히 여기서 할건 없었지만 어딘가를 이동하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보였다. 샘 누나가 리시케시 근처에 사는데 그녀는 매번 오라며 연락했고, 나는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크리스마스 정신을 갖다붙여 가겠다고 대답해버렸고, 연초가 지나고 그곳에 일주일정도 머물기로 했다. 새로운 설렘을 예약해두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는건 평소와 다른 일들을 벌린다는 의미였다. 이전에 종종 스쿠터를 빌려 하루에 1시간씩 돌아다녔다. 면허는 있지만 스쿠터를 타 본적이 없는 나는 샘의 지도하에 스쿠터를 배우고 연습했다. 매번 똑같은 주차장을 찾아가 뱅글뱅글 돌며 운전 연습을했다. 이번에는 스쿠터를 하루 온 종일 빌렸다. 저 멀리멀리 바퀴가 발 닿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왜? 크리스마스니까. 너무 궁금하지만 한 알 사먹기 시작하면 한 판 사먹는건 일도 아니겠다 싶어 먹지 않았던 초콜릿을 샀다. 기념하고자 케이크도 한 조각 샀다. 맛있게 오믈렛을 만들어주고 리시케시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을 가꾸어준 호스트와 옆 방 이웃인 인도인 커플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도 샀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호스트 집 문고리와 옆 방 문고리에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쪽지를 두었다. 평소와 달리 설레는 일들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정작 크리스마스날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맛없는 샐러드를 해먹고, 힌디어 공부를 조금 하다가 지겨울 때 쯤 산책 하러갔다. 지치면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저녁이 올 때 쯤 노을을 보러갔다. 다른 점은 과일가게나 슈퍼상인들, 옆방 친구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렇게만 보내는건 아쉬워 오늘은 평소보다 비싸고 맛있는 럼을 사고 피자를 포장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두고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아를 갔다면 조금 더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까? 더 많은 캐롤을 듣고 메리크리스마스를 말하고 다녔겠지만 그래도 리시케시에서 우리만의 특별한 비일상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의 크리스마스는 잔잔하고도 특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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