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숙소에서 짐을 풀고서 깨끗하게 씻고 꿀잠을 잤다. 숙소 주인에게 연락해 연박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쉽게도 하루만 연장할 수 있고 다른 날은 예약이 꽉 차있었다. 다시 집을 구해야한다니. 귀찮아졌다. 일단은 배에 뭘 좀 채워야겠다 싶어 동네를 산책하며 먹거리를 찾았다. 집을 나서니 옆집에 장기숙박하는듯한 외국인 친구가 있었고, 대문을 닫으니 잘 다녀오라며 인사해주는 집 주인 가족들이 있었다. 골목을 걷다보니 군데군데 홈스테이 간판이 보였다. 조용한 동네인게 마음에 들어 이 골목 안에서 숙소를 옮겨야겠다 생각하며 걸어갔다.
구글맵으로 음식점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핀이 많이 찍혀있는 골목으로 이동했다. 다른 골목을 가니 요가원이 보였다.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편안한 옷을 입고 다같이 둘러 앉아 몸을 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바삭하게 말라가는 빨래감들이 널려있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니 다른 요가원이 있었고, 동작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사이 군데군데 음식점들이 보였다. 테라스 자리가 많이 보였고, 사람들은 음식점을 배만 채우는 곳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금발 머리의 여성은 밥을 먹으며 일기를 썼고, 갈색머리의 남성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요가복을 입은 사람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고, 눈동자 색이 다른 외국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제서야 진짜 요가의 성지, 리시케시에 왔구나 싶었다. 그때까지는 온 동네가 요가와 명상에 취해있는게 새롭고 재미있었다.
아까 지나가면서 봤던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판을 봤다. 숙소 옮기느라 지친 우리는 아주 무거운 음식을 원했다. 고칼로리로 순식간에 기분을 행복하게 해주고싶었다. 고기가 들어간 메뉴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미안하다며 나와서 다른 음식점으로 향했다. 고기가 있는 메뉴판을 찾기가 어려웠다. 여기도, 저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했다. 다시 처음에 갔던 곳으로 가서 빠니르 스테이크와 팔라펠을 시켰다. 맥간에서 팔라펠을 보고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여기도 외국인이 많아서일까 후무스와 팔라펠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빠니르는 단단한 두부같은 식감을 가진 치즈다. 염소젖으로 만든다고 들었는데 인도에서 흔하게 구하고 먹을 수 있다. 델리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빠니르 스낵랩을 먹고 인도에서 1일 1빠니르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렸다. 빠니르면 무조건 오케이라 크림을 듬뿍 묻혀 나온 치즈 스테이크를 보는것만으로도 맛있었다. 이게 다 채식이라니 매일 먹을 수 있겠다고 자부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숙소에서 추천해준 맞은편 건물 홈스테이로 갔다. 또 다른 따듯한 가족이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만난 홈스테이 중 퀄리티가 가장 괜찮았다. 숙소를 구하면서 인도는 역시 돈에 정직하다는게 느껴졌다. 숙소 금액에 따라 퀄리티가 확확 바뀌는게 느껴지고, 메뉴 금액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나 맛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 홈스테이는 예외였다. 이 골목에만 해도 홈스테이가 10개가 넘는데 아무래도 공급이 많아서 그런걸까. 옮긴 숙소는 여태까지 중 가장 저렴한 숙박비였는데 컨디션은 최상이였다. 숙소를 잘 옮긴 덕분에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어느정도 머물다 남인도 고아로 넘어가기로 했다.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생기니 다음 여행지를 편하게 상상할 수 있고, 다시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어나면 운동을 하고, 마날리에서 처럼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하루 한끼는 집에서 해결하고, 다른 한 끼는 밖에서 맛있는걸 먹기로 했다. 큰 도로에 있는 상점에는 한국 라면이 종류별로 많았다 내가 한국에서 먹지 않았던 제품도 있었다. 거기서 라면과 시리얼을 대량으로 사두고 간식으로 먹거나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매일 만들어먹었다. 그게 지루할즈음에 홈스테이에 음식을 주문해먹었다.
루틴이 4일정도 반복되니 지루해졌다. 하루에 한끼를 외식하는데 음식점 이름만 달랐지 파는 메뉴는 같았다. 오믈렛, 샌드위치, 햄버거, 피자, 커리. 메뉴만 비슷한게 아니라 채식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우리는 리시케시에 온 첫날부터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아무리 찾아도 비건, 베지터블밖에 없는 이 세상. 혹시 신과 내가 하는 숨바꼭질인가 싶어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물어보고 허탈했다. 어머 여기는 채식마을이야. 리시케시에 흐르는 강은 신성한 갠지스 강이요. 갠지스 강이라면 네, 맞습니다. 그 유우명한 바라나시에 흐르는 갠지스강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신성한 강물이 흐르는 이 곳에서 살육에 해당되는 육식은 허용되지 않는 구역이였다. 여기가 내가 그토록 오고싶었던 채식마을이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고기를 그렇게나 찾아 다녔구나. 인도에 오기 전에 채식마을에 머무르게된다면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겠지. 환상을 꿈꿨던 나는 이제서야 정신차렸다. 맛있는 요리가 있을 때 가능한거구나. 채식이라면 살이 좀 빠질지도 모른다며 기대했는데 주된 요리법이 밀가루를 듬뿍 묻혀 튀겨버리는 것이라 금새 질리고 살은 더 쪄버렸다. 아무리 맛있는 밥이라도 맨날 먹으면 질리는 법이였다. 홈스테이 집밥도, 밖에서 먹는 비슷한 음식도, 맨날 만드는 샐러드도 다 맛이 없었다.
우리는 이대로 안되겠다며 고기가 있는 식당을 찾아나섰다. 옆동네나 옆옆동네는 다를거라 믿으며 구글맵을 켰다. 현위치에서 손가락을 옮겨 조금 떨어진 곳에 치킨을 타이핑하고서 나오는 음식점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쌩쌩달리는 차를 곁에 두고서 30분 넘게 걸었다. 그 사이 해는 졌고 허기진 배는 더 극성이였다. 식당 근처에 다왔는데 같은 골목을 몇 번이나 뺑뺑 돌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 드디어 음식점을 찾았다. 우리가 왜 똑같은 골목을 몇 번이나 맴돌았는지 식당 앞에 도착하고나서야 깨달았다. 환히 켜져있어야 할 음식점은 언제 문 닫았는지 유령처럼 변해있었다. 고기 먹을 생각으로 1시간 넘게 걸었던 우리는 방황했다. 근처 큰 음식점으로 가서 혹시나 고기가 있냐고 물어봤지만 여기도 강가 주변이라 고기를 팔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 똑같은 커리와 짜빠띠를 먹었다.
다음날 나는 고기에 대한 열망이 더 커져버렸다. 정말 없을까? 구글맵에 고기, 치킨, 논베지터블 여러 키워드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놀랐는데 대부분 검색 결과값에 잡혔을뿐이고 메뉴 사진을 보면 고기는 없었다. 똑같은 채식요리 뿐이였다. 그러다 한 동네에 결과값이 모여있는걸 보고 어쩌면 이 곳은 다른 행정구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확대했다. 메뉴 사진을 보고 치킨 커리를 발견했다. 이럴수가. 치킨이 있다고요? 나는 당장 전화해 물어봤다. 이즈 잇 파써블 투 잇 논 베지터블? 가능하다는 대답에 나는 속사포로 쏟아냈다. 이즈 데얼 치킨 커리? 릴뤼? 아이 원트 치킨!
확답을 받고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날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나는 출석체크 도장이라도 받듯이 그 식당으로 갔다. 매일 똑같은 무료한 일상에서 유일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였다. 계속 가다보니 거기서 일하는 젊은 친구는 우리를 반겨줬다. 특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샘과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때 가게에서 파티할거니 놀러오라는 초대도 해줬다. 온정을 쌓아가며 우리는 매번 비슷한 치킨 커리를 먹다 그 날은 다른 재료가 들어간 치킨 커리를 시켰다. 그 재료가 내가 주문한게 아니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매번 먹던게 아니여서 그랬는지 크게 맛있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샘이 먹다가 숟가락으로 자기 그릇을 몇번 건드리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영역이라 무엇이냐고 계속 질문을 해댔지만 샘은 헛웃음과 내 눈을 보며 어떡하지…라는 표정이였다. 샘은 결심한 듯 음식 속에서 어떤 갈색의 덩어리를 접시 밖으로 꺼냈다. 파리인가? 엥 왜이렇게 크지? 다른 벌레인가? 아니 잠깐만..아니..아니…어..? 헛것을 본건가…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바…ㅋ…ㅟ…ㅂ…ㅓㄹ레였다… 정말 끔찍한건 우리는 음식을 거의 다먹었을 즈음에 발견했다. 그리고 매일 출석체크하듯 갔던 음식점이라 얼마나 많은 차세대 미래식량을 섭취했는지 생각하면 토 나왔다. 나는 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오늘 밥값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샘도 나와 같은 생각이였는지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샘이 알아서 잘 말하겠지 싶어서 입은 다문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다가오는 직원을 바라봤다. 샘은 직원에게 조용히 갈색형체의 존재를 보여줬다. 직원은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했다. 그들은 수군거리며 대화를 했고, 추가 주문했던 빠니르 난을 그대로 포장해왔다. 거기서 더이상 머무를 수 없어 황급히 일어났다. 계산대에서 사장은 오늘도 식사는 괜찮았냐며 젠틀하게 질문하고서 계산서를 보여줬다. 계산서를 내게 건네는 순간, 어제와 똑같이 젠틀한 질문을 던지는 사장의 행동을 보는 순간 나는 순순히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나와야했다. 식당을 나와 미래 식량 체험했다며 아주 좋은 여행이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샘에게 왜 사장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사장에게 알려 밥 값이라도 굳겠구나 생각했다며 벌레의 소식을 알게된 직원은 어떤 말을 했냐며 추가로 물었다. 직원은 엄청 수치스러워했고 당황해했다고 한다. 힌디어를 모르는 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샘은 사장에게 말 해봤자 일하는 직원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직원들의 월급이 깍인다던지 엄청나게 혼 난다던지 그런 상황을 우려했다.
여태까지 샘과 돌아다니면서 샘은 손님으로서 할 수 있는 자격을 다 누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커리를 덜 짜게 요리해달라 했는데 여전히 짤 때 그는 손을 들어 안 짜게 해달라했는데 짜다며 음식을 돌려 보냈다. 짜빠띠나 난이 너무 많이 구워져 새까만 재가 많이 묻었을 때 직원을 불러 음식을 다시 돌려보냈다. 나라면 그러려니하고 먹었을 상황에서 그는 요구한대로 서빙이 되지 않았을 때 빠꾸시키는 사람이였다. 물론 진상처럼 화를 낸다거나 무작정 요구하지 않았고, 정중하고 친절하게 본인의 요구를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화가 그런건지 샘의 언행때문인지 음식점에서도 금방 다시 주겠다며 기분좋게 음식을 가져갔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얘기를 하지않고 나왔다니 의아했다.
그의 알 수 없는 다정한 행동은 훗날 유레카처럼 번쩍 떠오른 한 단어, 카르마로 연결되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업보와 같은 뜻인데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 씨는 뿌린대로 거둔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게 내가 이해한 카르마의 뜻이다.
리시케시에서 지낼 때 아침마다 오믈렛이나 쁘라따를 주문하면 맛있게 척척 내어주는 홈스테이 가족에게 고마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로했다. 내 마음과 달리 주머니는 가벼워서 선물을 고르는게 어려웠다. 그러다 요즘 내가 자주 사먹는 화덕에 구운 땅콩을 드릴까 싶었다. 샘은 좋은 생각이라고 해줬다. 인도에서는 새해가 되면 땅콩을 까먹으며 행운을 빈다고 했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호두나 부럼을 깨며 액운을 물리치고 덕을 바랐던 것 처럼 인도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이럴때 보면 역시 우린 같은 동방의 나라구나 싶다. 주인장 가족것만 사려다 바로 옆방에 장기로 머물고 있는 커플이 먹을것도 샀다. 지갑이 그리도 가벼운데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한 없이 나누는거니까. 그때만큼은 나도 종교인이었다. 우리는 땅콩 한 봉지씩 사서 그들의 문에 각각 걸어두었다. 다음날도 일상처럼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마스떼. 꿰세호. 메디띡홍. 메리크리스마스 디. 오믈렛…”
아침 운동을 하고 샤워가 끝날때 쯤 노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아, 행복한 아침을 알리는 순간이였다. 땡큐를 외치고 오믈렛을 건네 받아 테라스로 갔다. 매일 같은 접시에 비슷한 양의 오믈렛과 짜빠띠인데 그 날은 다른 작은 소스 그릇이 있었다. 샘도 발견하고서 밝게 웃으며 카르마!라고 말했다. 땅콩을 이용해 만든 짜빠띠 소스였다. 땅콩을 드리자마자 이렇게나 바로 요리해서 갚아주시다니 감동이였다. 역시 콩 심은데 콩나는건가. 땅콩을 드리니 땅콩 요리가 돌아왔다.
다음날에는 테라스에 앉아있는 나에게 커플이 다가왔다. “땡큐.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얼.” 이라며 나에게 베스킨라빈스 종이가방을 건넸다. 내가 놀란 눈으로 베스킨라빈스? 라니까 친구들은 다급하게 아, 이거 베스킨라빈스는 아니고 그냥 포장지라며 기대하지말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돈 워리 코이띠까네이’를 외쳤다. 지금 열어봐도 되냐며 물어보고서 베스킨라빈스 포장지를 뜯었다. 안에는 내가 인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까짝이 있었다. “오 마이 갓.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야. 너무 고마워!” 오두방정을 떨자 커플들은 다행이라는 듯 밝게 웃었다. 샘을 만나 우리가 선물을 받았다고 알려주니 그 때도 샘은 오우, 카르마 라며 밝게 웃었다.
샘과 함께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카르마였다. 내가 하는만큼 되돌아온다는 카르마. 만약에 미래식량을 섭취했던 날이 식당의 첫 식사였다면, 젊은 친구와 매일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고향이 어디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 때라면 나는 공짜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샘은 사장에게 사실을 말하고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다고 전액 환불을 요청했을지 모른다. 구면이 된 사이라 굳이 얼굴을 붉히기 보다는 좋은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고우니까. 내가 베풀면 또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테니까.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에 베여있는 카르마를 마주한 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