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시케시에 숙소를 1박 예약했다. 예상대로라면 오늘 밤에 리시케시여야 하는데 이미 밤이 되버렸고, 아직 목적지의 절반밖에 오지 못했다. 새벽 3-4시경에 도착한다치고 체크아웃시간까지 고려하면 최소 6시간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호스텔이 아닌지라 24시간 리셉션일 수 없으니 숙소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치킨이 나오는동안 샘이 숙소 주인에게 전화했다. 리시케시 가는길인데, 아직 찬디가르라서 아마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새벽 3시쯤 도착하거나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몇시가 되었든 새벽에 도착해서 자고 체크아웃 할건데 무인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숙소 주인은 “코이띠까네이” 라고 말하며 언제 와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마음에 걸렸던 숙소는 해결했고, 치킨을 입에 때려넣으며 스트레스와 식탐도 처리했다. 자, 이제 다시 버스를 타러 가볼까.
다시 릭샤를 잡아 100루피(1,700원)를 주고 게이트로 돌아갔다. 릭샤기사에게 리시케시 가는 정류장으로 가달라고 했더니 다른 게이트에 내려줬다. 드디어 리시케시 가는 버스를 만났다. 우리 자리만 없었을 뿐. 다음 버스는 언제인지 알 수 없고, 근처 마을에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우린 더이상 환승하고 싶지 않았다. 5시간이든 7시간이든 짐 옮길 필요없이 한 자리에서 가고 싶었다. 또 릭샤를 타고 다른 게이트로 이동했다. 오늘 찬디가르에서 릭샤타고 이동하며 쓴 돈은 400루피다. 금방 써버린 7,000원을 떠올리며 여기서 돈 조금 더 보태면 하루 숙박비인데 아깝다 생각했다. 조금전에 KFC에서 777루피를 쓸 땐 하나도 아깝지 않던 돈이 이유도 모른채 별다른 결과물도 없이 썼다고 생각하니 그렇게나 아까웠다. 찬디가르에서는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샘과 릭샤꾼과 이야기하여 이동하고, 이동하면 샘이 또 알아보고 다시 이동하는 방식이였다. 나는 힌디어 무식자고 샘은 현지인이니까. 나한테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너무 피곤하니까. 샘은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였고, 나는 따라다녔다. 마지막 릭샤를 타고 이동할 땐 차 안에서 마리화나 냄새가 진동했다. 습하고 기분나쁜 풀 냄새를 맡으며 다른 정류장에 도착했다. 모든 불이 꺼져있었다. 그러다 불이 다시 켜졌다. 정류장에 전기가 왔다갔다 했다. 내 정신처럼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에는 분명 리시케시 직행 버스가 있다고해서 왔는데 또 없다. 샘도 더 이상 게이트 이동은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리시케시에 가장 가까이 가는 버스 티켓을 끊었다. 그나마 위로할건 앞서 알아봤던 다른 마을보다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였다. 바로 출발하는 버스였고 이번엔 우리 자리도 있었다.
나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뚫기 시작했다. 오늘은 가장 양이 많은 생리 둘째날이고 인도에 있는 화장실에서는 휴지통을 보기 힘들었다. 화장실에 가면 위생은 둘째치고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진땀을 빼야했다. 생리대를 자주 교체해야하는 날인데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생리통도 꽤 심했다. 배가 자꾸 지끈지끈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겨우 자는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혼자였다면 나는 이 먼거리를 어떻게 갔을까.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찾는데도 구만리, 버스를 타서도 제대로 가는게 맞을까 전전긍긍, 이 사람이 나한테 사기치는건 아닐까 경계하고 의심하고, 할 수 있는게 없다는걸 알면서도 나와 내 짐을 지키느라 잠들 수 없었겠지. 마리화나 냄새가 가득한 릭샤를 타서도 나를 정류장으로 데려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의심 가득 도로를 달려야겠지. 내가 겪지도 않은 일을 무한대로 상상하며 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서 잠들었다. 샘이 왓? 이라고 되물은 것 같은데 그는 점점 흐린 기억속의 그대가 되어가고, 다시 내 귀에 샘 목소리가 들렸다. “굳나잇”
새벽 3시가 되어야 하리두왈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다시 리시케시 가는 버스를 갈아탔고, 함께 가는 승객들은 나처럼 지쳐보였다. 리시케시 정류장에 내렸을 때 첫 인상은 휑하고 스산했다. 주변에 강줄기가 있어서인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휘날리고 거센 바람은 내 뺨을 때렸다. 어두운 밤길이라 정류장인지 티도 안나는 곳에 떨어졌다. 둘이서 봇짐을 가득 메고서 두리번거렸다. 낯설고 긴장된 마음에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저 멀리 보였다. 그쪽으로 가보니 몇대의 릭샤와 기사들이 모여있었다. 몇명의 기사가 질문을 던졌고 샘은 그 중 한명과 이러쿵 저러쿵 대화를 하더니 릭샤 얼마라는데 탈거냐며 내게 물었다. 우린 맥간에서처럼 선택권이 없었다. 비싸게 부른 것 같았으나 오케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릭샤를 타고 숙소 근처로 갔다. 우리의 숙소는 강 건너에 있었고, 릭샤 기사는 여기서 걸어서 가야한다고 했다.
아직도 집이 아니란 말이야? 자고있는 소들을 지나 강을 건넜다. 강에는 아주 긴 출렁다리가 있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이러다 떨어지는건 아닌가 무서웠다. 이렇게 집에 못가고 배낭이고 내 몸이고 다 강 속으로 풍덩하는거 아니냐. 출렁이는 다리에 내 상상은 곱배기로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다리 끝에 도착했을 때 다시 구글맵을 켰다. 걸어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인데 구글맵과 내가 있는 위치는 달랐다. 분명히 이쪽으로 가라고 되어있는데 문이 닫혀있다. 그럼 난 날라가나? 점프하나? 돌아가는길이 있겠거니 싶어 오르쪽으로 크게 돌았더니 길이 막혔다. 아, 제발 이제 집에 좀 가자. 이러지말자. 이제 4시간만 지나면 밖에서 꼬박 지낸지 24시간이다. 제발 신기록 세우지말아줘. 이쪽으로 저쪽으로 돌고 돌아 길을 찾아냈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가 숙소를 발견했다. 문을 열려는데 이상했다. 왜 불이 다 꺼져있지. 코이띠까네이라고 했는데.
코이띠까네이를 외치던 주인은 없었다. 문이 잠겨있어 노크를 몇번하니 어떤 청년이 나왔다. 리셉션 쇼파에서 자다 일어난 것 같았다. 새벽 5시가 넘은 이시간에 왜 깨웠냐는 표정을 짓길래 내가 윤으로 예약했다고 알려줬다. 그는 방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예약을 해놨다고 말했고, 그는 다시 방이 없다고 되풀이했다. 내가 오늘 새벽에 도착한다고 여기랑 미리 통화도 했다고 다른 직원이 전화받은거 아니냐며 물었다. 본인은 전달받은 내용이 전혀 없다했다. 본인은 통화한 적이 없고 사장이랑 연락한 것 같다고 말해서 사장과 연결 해달라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않았다. 허탈했다. 꼬박 24시간 걸려 도착한 리시케시, 몸 뉘일 숙소 하나 생각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그 순간 분노가 차올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 건물에 자고있는 투숙객을 다 깨울듯이 소리 지르고 싶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예약해놨으니 당장 방을 내놓으라고 말했고, 그는 못이긴 채 따라오라며 올라갔다. 건물의 꼭대기층인 4층으로 올라가보니 넓은 강당같은게 나왔다. 재난 대피소처럼 각자 이불을 펴고 몸 뉘이는 곳이였다. 족히 10명은 넘게 쓰는곳인데 화장실은 하나였다. 기가찼지만 당장 몸 뉘일 곳이 필요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내일 사장과 얘기하겠다며 돌려보냈다. 배낭을 대충 던지고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의 몸상태는 처참했다. 당장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화장실은 샤워할 환경이 아니였다. 급한대로 처리하고 양치질과 세수만 하고서 이부자리를 폈다. 샘과 나는 황당해서 헛웃음을 몇번 짓다가 바로 뻗었다.
눈을 뜨니 아무도 없었다. 한 네-다섯시간 잤을까. 코고는 소리와 이가는 소음은 완벽한 자장가였다. 역시 육체적인 피로는 꿀잠을 자게하는 원동력이다. 말짱해진 정신으로 사장에게 전화했다. 어제 kfc에서 통화를 했기때문에 그의 번호가 내 폰에 남아있었다. 예약건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자고 리셉션에서 10분뒤에 만나기로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다른 숙소를 급히 알아봤다. 어쩐지 여기가 좀 싸다 했다. 인도에서 돈이 정직하다 했지. 델리에서 잠시나마 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던 아르헨티나 친구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이번에는 금액대를 더 올리고 후기도 조금 더 꼼꼼히 봤다. 홈스테이면 컨디션이 조금 더 낫지않을까 싶어 호스텔이 아닌 홈스테이로 집을 찾아 다시 1박을 예약했다.
샘은 짐을 챙기고 나는 리셉션으로 내려가 사장을 만났다. 사장에게 왜 오버부킹했냐고 물었다. 내가 부킹닷컴으로 예약했고, 인도인 친구 통해서 전화로 확인까지 했는데 왜 방이 없었냐고 물었다. 사장은 계속 그게 자기 의무라고 답했다. 무슨 의무냐고 물으니 이렇게 반복해서 말했다.
“ 손님들이 자꾸 방 없냐고 물어보는데 너는 12시까지 오지 않았잖아. 그 사람들을 밖에 재울 수는 없잖아. 너는 부킹닷컴에서 예약만 했지 결제를 안 했잖아. 만약에 니가 안오면 나는 그냥 하루 날리는거야. 부킹닷컴은 이걸 책임지지 않잖아.”
나도 되풀이해서 답했다.
- 알지 알지. 부킹닷컴은 책임지지 않지. 그래 니 마음 이해해. 그래서 내가 가니까 걱정말라고 미리 전화했잖아. 어제 밤 9시쯤 너한테 전화해서 오늘 새벽에 도착한다고 체크인 괜찮냐고 물어봤잖아. 니가 괜찮다고 말했잖아. 근데 왜 방이 없었는데? 니가 다른사람들한테 방을 팔아서 그런거잖아. 내 예약을 무시하고.
“ 그니까 너가 이렇게 새벽에 도착하는데 도대체 예약을 왜 한거야?”
- 그게 뭔상관이야. 나는 새벽 2시든 4시든 어쨌든 아침이 오기전에 도착할텐데 예약안하면 길거리에서 어쩌라는거야. 나는 2시간이든 3시간이든 개인 방에서 샤워하고 편한 침대에서 눈 붙이고 싶었다고. 그건 내 마음이지.
“ 니가 안해도 될 예약을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야. 니가 잘못한거지. 나는 잘못이 없어. 손님들이 계속 방 없냐고 물어보는데 뻔히 있는 방을 없다고 할 수 없잖아 ”
그전까지는 웃으면서 애써 이해해보려는 자세로 접근했다. 이때부터 나는 웃지 않고 말했다. 죽어도 자기 잘못이 없다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이건 명백히 니 잘못이야. 오버부킹이잖아. 한 방을 두팀에게 판건데, 내가 먼저 예약했다고. 이럴거면 너한테 미리 전화를 왜 했는데? 니가 코이띠까네이라며. 언제든 오라며. 내가 새벽 2-5시에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잖아. 알겠다며. 근데 이제와서 니 잘못이 아니라고? 이건 니가 제대로 운영 못한 니 잘못이야. 니가 사장이고 결정권자잖아. 나랑 통화한 사람도 너잖아. 니가 정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싶었으면 나한테 전화해서 상황 설명을 했어야지. 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어.
이렇게 말하니 사장은 말을 바꿨다.
“나는 그렇게 통화한적이 없는데? 니 친구가 언제 올거라고 얘기 안했어. 우리 체크인 시간 밤12시까지야. 니가 안와서 나는 어쩔수 없었어.”
나는 팩트체크를 위해 윗층에 있는 샘에게 전화했다. 스피커폰으로 물었다. 어제 우리 전화했을 때 몇시쯤 도착하고, 왜 그렇게 늦게 도착하는지 전달했는지 물으니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그 얘기를 듣고 사장은 샘 탓을 했다.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하자 샘은 그걸 듣고 어이가 없었는지 힌디어로 둘이 한참 얘기했다. 안그래도 피곤한 상태에서 이런 의미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샘에게 알겠다고, 처리하고 올라가겠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사장에게 다시 말했다.
- 그래 거짓말 하지말고 팩트만 보자. 내가 부킹닷컴에 미리 예약했지. 체크인이 늦을 것 같아서 너한테 늦는다고 미리 전화했지. 니가 알겠다고 했지. 왔는데 방이 없었지. 왜? 니가 다른 사람한테 팔았으니까.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 원하지 않는 방에 잤잖아. 여기서 전화하고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야? 누구 잘못일까?
사장은 못이기는 척 말을 던지듯 사과했다.
“오케이오케이. 이거 내 잘못이야. 미안. 어? 미안하다! 대신에 너 어제 잔거 돈 안내고, 오늘은 니가 예약한 방 비어있으니까 할인해줄게.”
- 당연히 돈 안내야지. 숙소 사기나 다름없는데 내가 왜 내야 하는거야.
센 척했지만 속으로는 좋았다. 내 목적은 사과를 받고 어제 잔 강당에 대한 지불하지 않는거였다. 사장이 다른 방을 몇개 보여줬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다른 숙소를 예약했고, 이렇게 말이 계속 바뀌는 사장이 운영하는 곳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샘을 불러 열심히 보는척했지만 샘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떠나자고 했다. 우리는 배낭을 챙겨 그 집을 나섰다. 가는길에 새벽에 깼던 직원을 만났는데 샘에게 뭔가를 물었다. 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짧게 대답하고 휙 몸을 돌렸다. 그 직원이 샘에게 어제 잔 숙박비 냈냐고 물었고, 샘이 내가 왜 내냐고 답했다고 했다. 직원의 태도로 보아선 이렇게 오버부킹을 시킨게 한 두번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오버부킹으로 팔팔 뛸 때 그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하고 잘못이 없다는 말투와 행동이였으니까. 20시간 걸려 도착한 리시케시에는 원하지않는 집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24시간째가 되던 시간에 나는 그 집을 떠났다. 다른 숙소로 이동하며 잡은 릭샤는 시세보다 2배를 불렀는데 흥정할 힘이 없어 기사가 원하는대로 지불하고 탔다. 가는 길에 본 샘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있었다. 더 자란 수염이 작아진 얼굴을 뒤덮었다. 반쪽의 샘과 그래도 어제 꿀잠잤다면서. 공짜. 개이득ㅋㅋㅋ 이러면서 킥킥 대다보니 릭샤가 여기서 내리라고 한다. 오르막이 심해서 갈 수 없다길래 알겠다며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메고 걸었다. 동네가 소박하고 조용하니 첫 숙소보다 좋을 것 같았다. 실망을 바라지 않으니까 기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설레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상상하던 요가의 동네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