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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정 Oct 27. 2022

싸움에 진심인 사람들

실망해도 또 다시 기대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결혼했나?”

한밤중에 부부싸움으로 소환된 양가 부모님이 지난한 싸움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반문하셨다. 하루종일 '내가 맞네, 네가 맞네' 싸우다가 그럼 누가 맞는지 제 3자에게 물어보자고 한 바람에 이 사단이 났다. 하필이면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날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상대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고 결혼한 것이 맞다.


연애할 때는 나와 다른 상대를 알아가는 일이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마냥 흥미로웠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차를 사고 10년동안 장롱안에 묵혀두던 운전면허를 막 꺼낸 초보운전자였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울겸 근교에 드라이브를 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남편은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운전을 알려주었고, 차 내부에 묻은 화장품 얼룩을 찾아서 닦아주었다. 나는 매주 손세차를 할 정도로 첫차를 소중하게 다뤘는데도 차 내부에 화장품 얼룩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을 챙겨주는 남편의 섬세함과 다정함이 좋았다. 남편은 나의 밝고 무던한 성격이 좋았단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본인과는 다르게 긍정적이고,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기분 나쁜 일은 잘 잊고 털어내는 내가 신기하고 부러웠단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서로 다른 세계를 매력적이라 느꼈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고,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가치관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출산하고 6개월이 지날 무렵 내가 졸업한 대학으로부터 입학식 사회를 봐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앞둔 신입생들에게 의미가 큰 행사라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동기부여가 될 만한 유명인이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이번에는 학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졸업생 사회자가 필요하다는 설득에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년 정도 매일 집에서 아이와 잠옷바람으로 뒹굴다가 정말 오랜만에 사회인이 되는 날이었다. 행사 전 날 리허설을 위해 외출을 준비하던 주말 아침, 처음으로 남편과 크게 싸웠다. 그 날도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아이를 보다가(아이의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응가한 기저귀를 갈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낮잠을 재우는 일이다) 나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서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거실에서 잘 놀던 아이는 엄마가 없어진 것을 알고 뒤늦게 울기 시작했다. 남편도 있으니(자고 있었지만) 괜찮을거라고 생각하고 세수를 대충 마치고 나갔다. 우는 아이를 안고 있던 남편이 버럭 소리쳤다. “애가 우는데 혼자 두고 뭐하는거야!” 실컷 자다 일어나서는 마치 나를 세수하느라 아이를 내팽개친 사람처럼 몰아붙이는 남편의 태도에 나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애가 울면 오빠가 달래주면 되잖아. 곧 리허설 가야할 시간이라 세수하고 왔어.” 남편은 자기를 깨워서 아이를 맡기고 세수하러 갔어야 했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나의 일을 별 것 아닌 하찮은 일로 깎아내리는 말도 덧붙였다. 그간 쌓인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지금까지 누구 덕분에 밤에 잠 잘 자고, 주말에 늦잠도 자면서 회사생활 했는지 생각해봐!”라고 소리치며 집을 나왔다. 나에게 의미가 큰 일이고, 무엇보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순조롭게 집중이 될 리가 없다. 운전해서 행사장에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출산 직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호르몬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리허설을 마쳤지만, 그 날 밤 또 싸우고 결국 퉁퉁부운 눈으로 다음 날 본행사를 진행했다. 정말 잘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속 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이 날 처음으로 출산과 육아에 회의가 들었다. 임신 중기 이후부터 일년 가까이 5시간 이상 통잠을 자본 적이 없다. 만삭일 때는 허리가 아파서 한 자세로 오래 누워있을 수 없었고, 커진 자궁이 방광을 압박해서 새벽에도 화장실을 서너번씩 다녀와야 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밤낮을 불문하고 3시간마다 모유수유를 했고, 특히 새벽에 아이가 울면 혹시라도 남편이 깰까봐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아이를 달랬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며 매일 육아를 하다가, 한달에 하루 정도 내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하면 우리 가정에는 어김없이 불화가 일어났다. 나는 남편이 없어도 혼자 아이를 볼 수 있는데, 남편은 내가 없으면 극도로 불안해 했다. 부모가 되는 일은 나도 처음이라 어렵고 힘든 일인데, 양육의 책임을 나에게만 떠넘기는 듯한 남편의 태도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싸울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가 이토록 가열차게 싸우는 목적이 무엇일까. 시시비비를 따져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우면서 진짜 우리의 모습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욕망을 정직하게 마주해야 모두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율하고 나아갈 수 있다. 남편은 어릴 때 친척들과 한 빌라에 살면서 함께 컸는데, 그 중 한 사촌 형이 아기 때 열나는 것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서 평생 정신지체 장애를 앓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아이가 울거나 열이나면 극도로 예민해지게 된다며 나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남편ㅇ 왜 그렇게까지 크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회 질서에 잘 따르도록 훈련된 내향인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출산 후 일년간 싸움이 잦았던 이유도 돌전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돌이 지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나의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자 우리 부부의 싸움도 자연스레 잦아들었다.


다행인 건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쳐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수며 더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는 것 위주로 치우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잘 보이지 않는 먼지와 하수구의 세균을 걱정한다. 매일 쓰는 물건은 손 닿는 곳에 꺼내 놓는 나와 달리 남편은 모든 물건을 보이지 않도록 찬장이나 서랍장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어느 날, 내가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동안 쌓여있는 설거지를 그대로 둔 채  싱크대 상판과 하수구 청소를 하고 뿌듯해 하는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고 또 싸웠다. 이 후 우리는 꼭 꺼내놓 아야 하는 물건을 정하고, 꺼내 놓는 물건 개수의 한도를 정했다. 이를테면 침대 옆 협탁에는 내가 자기 전에 읽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는데, 최대 3권을 넘지 않게 하도록 약속 했다. 남편이 디테일에 몰두해 큰 일정을 놓칠때면, 내가 데드라인을 정해준다. 애초의 우리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인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함께 지킬 수 있는 선을 찾아갔다. 덕분에 함께 무언가를 하면 역할분담이 명확해서 금방 끝낸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났을 때 생기는 ‘교환가치’이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 상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의 시선에 상대를 가두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출발은 ‘상대방에 대한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가 아니라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가 되어야 한다. 잘 모르니까 차근차근 알아가면 될 일이다. 가시돋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윽박을 지르며 감정을 토해 낼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서로를 영영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쌓인 그릇과 젖병을 눈 앞에 두고 싱크대 상판의 물때와 하수구 청소를 하는 남편을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남편 역시 베란다에 흩날리는 양파껍집을 매일 밟고 다니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한다. 다만 우리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중대한 장기프로젝트를 진행중인 한 팀이고, 이렇게 다른 성향의 사람이 세상에 하나뿐인 팀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싸움은 괴롭지만 부부에서 부모가 되면서 겪게어야 하는 성장통이라면 피하지 않고 잘 겪어내고 싶다. 갈등은 때로 우리가 마음 한켠에 숨겨두었던 상처와 두려움을 꺼내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때 용기를 내서 내가 모르던 세상에 한발짝 다가가는 일은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내 안의 두려움을 인지하고 그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나쁜 것을 반복하지 않을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무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잘못하면 사과하고, 또 다시 실망하더라도 다시 기대하면서. 나는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참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달라고, 납득시켜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할거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한번 희생한 사람이 계속해서 희생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희생하면 고성을 높이며 싸울 일은 없어지겠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는 평화가 아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기꺼이 행동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서로 건강하게 의지하되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치열하게 찾아 갈 것이다.


웹툰 며느라기를 쓴 수신지 작가의 책  <페미니즘 교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갈등을 드러내고 서로 논쟁할 수 있는 교실이 약자의 침묵과 고통을 묵인하며 유지하는 평화보다 낫다고 믿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싸움에 진심인 가정이 소란스러워보일지라도 누군가의 희생과 암묵적인 포기로 유지되는 가정보다 건강하다고 믿는다.



수신지 / 김고연주 / 돌베개 / 2019 /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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