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앞두고
“아들이네요. 벌써 19주예요.”
점심시간에 들린 회사 앞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말했다.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아무리 둔한 성격이라지만 임신 5개월이 되도록 못 알아채다니. 당시 나는 회사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에 집중하던 시기라 단순히 피로 누적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인 줄로만 알았다. 아직 결혼 전이라 임신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했다. 결혼은 프로젝트를 마무리 하고 일년 뒤 즈음에 하고, 자녀는 그 후에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생,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친구(현 남편)도 크게 놀랐지만 우리는 빠르게 정신을 다잡고 준비해서 그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렸다. 2021년, 코로나로 온 세상이 혼란스럽던 지난해의 일이다.
코로나의 한 가운데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시작했다. 동시에 입사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를 맡아 일했다. 임신기 10개월을 (절반은 모른 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재택근무’덕분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자 회사도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하루종일 소화불량과 빈뇨, 졸음에 시달리는 임산부에게 재택근무란 마치 하루 24시간이 48시간이 되는 마법같았다. 통근시간 2시간이 절약됐고, 점심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그리고 ‘태아검진휴가제도’와 ‘임산부단축근무제도’를 활용해 막달까지 마음껏 일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출산 일주일 전까지 근무했다. 근무지가 집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산모의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무리하지 않고 미리 휴직을 하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다.
출산을 하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남녀 모두의 책임이지만, 출산으로 극명하게 달라지는 건 여자의 삶이다. 단기간에 격동기를 보내며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문득 바라본 남편의 삶은 잃은 것이 없어보였다. 남편은 결혼이나 출산과 무관하게 승진을 했고, 더 큰 책임감으로 일을 해나갔다. 임신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출산휴가 시기에 맞춰 프로젝트에서 하차하는 수순을 밟았고, 올해가 승진 대상이지만 이번 진급은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의 섭리라지만 어딘가 씁쓸하고, 억울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들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 일기처럼 쓰다가, 공개 플랫폼에 올리기 시작했고, 주변 반응에 힘입어 여러 매체에 투고했다. 운이 좋게도 한 매거진에 기고 기회가 생겼다. 처음 연재한 육아 에세이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어서 직장생활 에세이도 쓰게 됐다.
휴직 막바지에 이른 지금 억울함은 상당 부분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서툴기만 했던 육아도 점차 적응이 되었고, 이 시간을 통해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서 책임감을 갖고 사랑을 쏟는 일은 부족함이 많은 나를 용기내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되었기에 육아에세이를 썼고, 잠시나마 ‘작가’라고 불리어본 경험은 이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었다. 이제는 아이와 함께 미래를 그려간다는 사실이 더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감사한 일이고 설레기도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희생하던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에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중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아기와 나의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울고 웃고 뒹굴며 오늘 하루를 사랑하며 보내는 일이 유일한 목표이다. 이 시간을 지나며 나에대해서도 새롭게 알게되었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내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그래서 일과 가정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고 선순환을 이뤄내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체력을 길러야겠다. 이전에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밤을 새거나 며칠간 몰입하면 그럭저럭 어떻게든 해냈지만, 육아는 끝이 없는 레이스이다. 멈추어야 할 때 멈춰서 쉬어가기도 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기도 하면서 긴 호흡으로 임해야 겠구나 싶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트랙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니 오히려 선명하게 보인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집 매화 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네.”
『모든 요일의 기록』김민철
지난 1년 3개월을 돌아보니 몸은 고됐지만, 그 어느때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이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기를 하고, 서고, 걷고, 엄마라고 말하던 그 순간의 감격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아이가 놀랍게 성장하는 순간을 직접 보고 감탄했던 그 시절이 사실은 봄이었다. 한시도 혼자 둘 수 없었던 아이는 1년만에 어린이집에 걸어서 등하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의 나는 1년전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내가 누군가의 미래를 이토록 기대했던 적이 있던가, 덕분에 나도 그 어느때보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앞으로 아이가 혼자 하는 일이 더 많아질테고, 나도 복직하면 지금처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겠지만 우리가 함께 보낸 봄날의 찬란한 기억은 우리 앞에 놓인 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 줄 것이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봄날의 행복이이 사실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이 글은 2022 고용노동부 일쉼동체 워라벨 근로자 수기 공모전 '일 생활 균형'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글을 각색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