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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유화, 아크릴화 그림 그리기

by 바다의별

어릴 때부터 ‘나는 절대 못하는 것’이라고 못 박아둔 영역이 있었다. 그건 바로 미술. 그나마 무언가를 오리고 붙여 만드는 건 좀 나은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밑그림도 어설픈데, 그 위에 색칠까지 하게 되면 대체 작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파악이 안 될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 되었다. 그림이란 타고 난 손재주가 없으면 노력해도 안 되는 영역이라며, 나는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더 이상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화/아크릴화 원데이 클래스’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광고 속 새파란 하늘 그림, 분홍빛의 바닷가 노을 그림 등은 집에 하나쯤 두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후기를 보니 그림을 제대로 그려본 적 없는 사람도 이 반나절의 수업으로 멋진 작품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과장 광고라고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넘겨버렸지만, 한번 보기 시작한 광고는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했던 마음은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되었고, 조금 궁금해졌다. 없는 손재주를 갑자기 수업 한 번으로 발달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초보자들도 그럴듯하게 그려낼 수 있는 쉽고 빠른 기술, 그런 꼼수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있다면 배워보고 싶었다.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들 중에 사진만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장소들을 그림으로 남겨보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세계여행 에세이를 준비하며 추억들을 들춰보고 있는 중이었다. 잘 될지 안 될지는 그려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결국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학원에 조심스레 연락해 상담을 시작했다. 원데이 클래스를 하게 되면 제한된 시간 안에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왕 해보는 거, 시간을 조금 더 써보기로 했다. 뭐든 마음이 급하면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하게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아예 한 달 정도 수강 신청을 했다. 한 달은 두 달이 되고 두 달은 또 몇 달이 되었지만 말이다.


첫 사진으로 무엇을 가져갈지 굉장히 오래 고민했다. 늘 처음이 가장 어렵고, 처음이 가장 조심스럽다. 내가 보기에 가장 쉬워 보이는 구성을 가져가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때는 이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이 될지도 몰랐으므로 가장 그리고 싶은 걸 가져가기로 했다. 고심 끝에 고른 건 알래스카에서 본 오로라 사진이었다.


학생 때 이후로 미술을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는 사람의 패기 있는 선택을 선생님은 비웃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가져간 사진이 너무 어렵지는 않은지 여쭈어보았지만,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답해주셨다. 그 '할 수 있는 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림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살고 있는 성인 학생 경험이 많으셔서인지, 수업은 쉽고 편안하게 시작되었다. 일단 밑그림부터 간략히 잡은 뒤, 유화 물감을 이용해 색칠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쓰던 도화지가 아닌, 캔버스를 건네주셨다. 난생처음으로 만져보는 도구가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문도구 같아서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그 어색함을 이겨낸 건 새로운 걸 해본다는 설렘이었다.


옅은 색연필로 살살 집과 나무들과 하늘의 오로라 형태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밑그림은 너무 세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적당히 위치를 잡는 위주로 그렸다. 밑그림이 잡히자, 이제는 물감으로 색을 만들어 칠할 차례가 되었다. 첫 그림으로는 금방 말라서 초보자가 다루기 좀 더 쉽다는 아크릴을 택했다. 색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재밌는 일이었다. 이동식 삼단 선반 두 개에도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물감이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놀라웠다. 비슷하지만 전혀 같지 않은 색들을 팔레트 위에 여럿 짜내 여러 차례 조합해 보았다. 어두운 하늘을 칠할 배경색은 짙어졌다 옅어졌다, 남색이었다가 보라색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한 색에서 결심이 섰다.


굵은 붓을 하나 꺼내, 색을 조심스레 묻혔다. 붓을 캔버스로 가져갔지만 선 하나로 그림을 망칠까 이내 두려움이 밀려왔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소심하게 점을 한번 찍어보았다. 팔레트에서 보았던 것보다 조금 옅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는 색이었다. 바탕색은 거의 절반 이상을 칠할 것이었으므로 조금씩 더 과감하게 붓질을 해보기도 했다.


사진이 그림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왠지 입체화되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배경 색 위에 초록빛 오로라를 올리고, 또 검은 나무 뼈대를 올리고, 집에서 어 나오는 붉은 불빛까지, 하나하나 각자의 자리를 쌓아주니 더 이상 평면 같지 않았다. 질감에 생명력을 주는 붓질 하나하나가 모두 이 그림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사진에 미처 담기지 못했던 사소한 숨결들이 그림 속에는 함께 담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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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건 성인이 되어서나, 어릴 때 학교 미술시간에서나 똑같았다. 꼼수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이제는 직접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그리고 싶은 것이 생겼을 뿐이었고, 두 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내 그림만을 들여다봐주는 선생님이 있었을 뿐이었다.


알래스카 오로라를 시작으로, 나는 대륙별로 한 장씩 사진을 골라 다섯 점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아크릴과 유화를 번갈아가면서 해보았다. 매번 새로운 구성의 새로운 사진이었므로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었지만, 그래도 갈수록 두려움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것이 늘었다. 더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민. 항상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면,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너무 잘하셨어요! 근데, 이 부분을 좀 더 표현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사진 속 디테일한 부분들을 가리키며, 내가 쓰던 붓을 들고 직접 그림 위에 덧칠로 보여주시곤 했다. 말씀해 주시는 부분들은 대부분 풀숲이면 풀 한 가닥의 줄기, 사람이면 사람의 머리카락 한 올, 내려앉는 노을에 물들여진 얇은 실구름의 끝자락 같은 것들이었다. 알면서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초록색이나 검은색 덩어리로 어물쩍 넘어갔던 넘어간 것들에 선생님은 생동감을 부여해 주셨다. 그 몇 가닥의 덧칠로 그림은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시기도 했다. 하늘의 빛에 따라 달라지는 눈의 색감, 만년설이 내려앉은 산의 골짜기 음영, 폭포의 여러 갈래들. 직접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어오고 수십 번을 보았던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을 선생님이 알려주실 때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사진에 대한 애정이 더 크게 샘솟곤 했다. '이런 섬세한 부분들이 이 사진을 더 빛내주었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결국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 세세한 관찰력이었다.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닌 이상, 사진을 따라 그리든 풍경을 보면서 그리든 머릿속에 담긴 기억을 그리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자 하는 것을 먼저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건 붓질을 잘하고 색을 잘 만들어내고 밑그림을 잘 그리는 수많은 기술들보다도 먼저 꼭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태도였다.


처음에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건, 이러한 세부 표현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었을 테다. 첫 그림은 비교적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작품을 하나씩 완성해갈 때마다 선생님은 조금씩 더 세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 방법이란 그림으로 잘 그려내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진을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림도 하나의 스토리다. 무언가를 그려낼 때는 그리고자 했던 그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완성한 그림의 이야기에도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줄 수 있다. 왜 이 사진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왜 예쁘게 느껴졌고 어떤 점들이 내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를 먼저 최대한 가까이서 들여다봐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진의 매력은 한 층 더 깊어졌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매력도 한 층 더 살아나곤 했다.


여행지에 가면 좋은 풍경 앞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는 안다.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얼마나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을지. 아마 내가 이젤을 직접 들고 다니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늘 그런 마음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든, 눈을 더 크게 열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 더 아름다운 세상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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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에 세부 표현이 더해지는 과정 (좌측 →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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