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다녔던 첫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다녀온 뒤 재취업을 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여행을 한 기간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첫 취업을 운 좋게도 고작 7번의 서류 제출만에 성공했던 나는 재취업을 그다지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자 나도 점점 조급해졌다. 원서를 내고 탈락하기만을 반복하자 자꾸만 무기력해졌다. 일상에 활력이 필요했다. 백수 6개월 차, 새로운 취미를 찾을 시간이었다.
먼저 집 근처 수영장을 찾았다. 더워질 무렵이기도 했고, 익숙한 운동이었으므로 쉽게 해 볼 만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운명처럼 클라이밍 센터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현수막의 안내에 따라 곧장 클라이밍 센터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은 운동이었으나 배울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렇게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면, 이번에는 꼭 시도해보아야 했다. 나는 바로 강습을 등록했다.
첫 수업에 갈 때는 ‘손에 물집이 많이 잡힌다던데 아프려나?’, ‘팔이 엄청 쑤실까?’ 등 상체의 고통만을 걱정했는데, 암벽화를 신자마자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발이 큰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대체 어떻게 신데렐라 행세를 했을까, 대단하다 대단해.’
당시에는 부드러운 초보자용 암벽화를 신은 것임에도 그렇게 괴로웠다. 이후 단단하고 바닥이 휘어진 중고급자용 신발을 길들일 때는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래도 초보자용 암벽화를 처음 신어봤을 때의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손이 함께 아프면 발의 고통이 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감으로 일단 벽에 붙어보았다. 있는 힘껏 달라붙어 홀드(벽면에 붙어있는, 손가락으로 잡거나 발로 디디는 돌)를 잡으며 옆으로 움직이는 것부터 연습했다. 납작한 홀드들은 손으로 움켜쥐어지지 않았고 손가락 끝의 힘으로만 잡을 수 있어서, 잡는다기보다는 손가락이 살짝 걸쳐진 모양새였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고통의 세계가 열렸다.
결과적으로 발도 아프고 손바닥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팠다. 게다가 그때의 나는 워낙 근육이 없는 몸이었기에, 어깨와 팔뚝까지도 너무나도 뻐근했다. 1시간가량의 수업 시간 동안 벽에 붙어 있던 시간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간이 10배는 더 되었을 텐데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큰 대 자로 거실에 뻗어버렸다. 무슨 힘으로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옷을 벗을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손바닥이 다 까져서 살짝만 스쳐도 아파 비닐장갑을 끼고 세수를 해야 했다.
15명으로 시작했던 수강 인원은 한 달 후 8명이 되었고(그래도 많이 남은 편이라고 한다), 두 달간의 강습기간 이후에도 남은 건 5명 남짓이었다. (이들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마지막 5명 안에 들 수 있었던 건 내가 특별히 의지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당시 다행히도(?) 백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으니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주 2회 수업 외에 다른 날들도 꾸준히 암장을 찾으며 클라이밍 실력을 높...인다기보다는 고통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고통에 적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클라이밍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분명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일주일은 운동을 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한 게 없었다. 신발을 신는 순간 아팠고, 벽에 매달리는 순간 그 아픔이 극대화되어 별로 한 것도 없이 바닥으로 내려오기 바빴다. '이게 정말 언젠가는 될까'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매일 하다 보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0초, 30초씩 버티다 보니, 10일 후에는 발이 덜 아파졌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조금 더 오래 벽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손에도 굳은살이 점차 생기자 덜 아프기 시작했고, 그렇게 연습량을 조금씩 늘리자 팔과 어깨에도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나는 능숙하게 신발을 신고 손에 초크를 묻히고 벽면을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할 정도가 되었다.
매번 성장하는 내 모습이 연료처럼 나를 힘나게 했고, 그때부터는 점점 성취감과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갔다.
실내 클라이밍에서는 4~5미터짜리 벽에서 소위 '문제'라는 것들을 푼다. 문제풀이란 지정된 소수의 홀드들만을 잡고 밟아 최종 목적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아니고, 바닥에서 먼저 눈으로 어디를 잡고 어디를 디딜 것인지, 길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 가짓수를 그려본 뒤 그걸 하나씩 실행해 보면서 마침내 문제를 풀어낸다. 암장들마다 주기적으로 문제를 계속 바꿔나가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고, 풀어낼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처음에는 보기 좋게 실패해도 여러 번 하다 보면 결국 방법이 나타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무리 해도 해답이 안 보일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혼자 한 문제에 매달려 애쓰고 있으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 ‘어디를 딛고 어디를 잡아봐라’는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고,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힘이 빠진 것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서로 목청껏 응원해 준다. 그건, 그날 함께 같은 암장에 있는 것만으로 생기는 동료애다. 그래서 클라이밍은 타인의 긍정적인 에너지도 한껏 얻어갈 수 있는 운동이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갈 때마다, 그전에 떨어지고 실패한 순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같은 구간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내게 맞는 속도대로 내게 맞는 방식들을 터득해 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속되는 서류와 면접 탈락으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던 때, 클라이밍은 내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매번 암벽의 문제를 풀듯, 내 눈앞의 문제를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갔다. 그리고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2달 뒤, 드디어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동안의 탈락들은 모두 클라이밍 문제 하나나 다름없었다. 결국에 꼭 풀어낸다면, 앞선 도전들은 실패가 아니라 시도다.
암장에는 각각의 문제들에 난이도 표시를 해두지만, 그건 참고용의 평균적인 지표일 뿐이다. 어떤 건 쉬운 문제일지라도 내게는 어렵고, 어떤 건 어려운 문제라지만 내게는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한다. 그러니 매달려보기 전까지는 오늘 내 눈앞에 있는 문제가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풀고 싶은 문제들부터 하나씩 골라 풀어볼 뿐이다. 때로는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혼자 이 벽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 위로가 된다.
암장에서는 어제의 문제에 얽매이거나 내일의 문제를 걱정할 일이 없다. 사소한 행복에는 즐거워하되 사소한 좌절에는 일일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며칠 뒤면 암장의 홀드들은 전부 뜯어내지고 새로운 문제들로 가득 차, 기존 문제들은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싹 잊어버리게 될 테니까. 그저 오늘, 내게 주어진 문제들을 할 수 있는 만큼만 차근차근 풀어내보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