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푸바오 열풍에 불편한 마음
우리나라 사람 중에 에버랜드의 인기 스타 '푸바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푸바오는 혼자서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사육사와의 유대관계 때문에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더 주목받게 되었다. 푸바오를 비롯해 에버랜드 판다 가족의 인기는 식지도 않고 여러 가지 굿즈로 재탄생하며 사랑받고 있다. 스티커, 이모티콘, 심지어 책까지 있다. 사진 속 푸바오는 행복해 보인다. 정말 그럴까.
판다는 멸종위기 동물이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면 죽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렇게 된 원인이 인간들이라는 것까지 이 글에서 다루진 않겠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이라고 해서, 판다들을 전 세계 동물원에 뿔뿔이 흩어 보내는 걸, 과연 보호의 목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비교적 시원한 지역에서 살아야 하는 판다를, 여름이면 30도가 훌쩍 넘는 곳들에서까지 살게 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위한 일일까?
내가 2017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을 안 들인 곳이 두 군데 있다. 바로 동물원과 수족관이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 인생샷을 위해, 구경거리를 위해 동물들이 소비되는 것이 영 마음이 불편하다. 왜 굳이 2017년부터인가 하면, 그때가 내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투어를 하며 우리 밖 동물들을 엿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하는 행동과 내가 하는 소비가 지구 반대편에 가져오는 파동을 느끼게 되었다. 매 순간 모든 행동을 조심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은 꾸준히 신경 쓰며 실천하기로 다짐했던 시점이다. 화장품을 살 때, 가방이나 신발을 살 때, 때로는 아주 조금 번거롭기도 하지만 동물실험을 했거나 동물 가죽이 쓰인 물건은 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노력이 한참 더 필요한 영역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식습관이다. 채식 기반의 식사를 더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육식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했다. 조금씩 채식을 더 선택하고는 있지만, 그러기 어려운 사회를 핑계로 나는 육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만큼은 아니라도, 이렇게 줄여나가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 내게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왜 동물원만 가지고 뭐라고 하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할 말은 없다. 내가 계속 육식을 이어가듯, 누군가에게는 동물원에 가는 것이 비슷한 일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동물원에 절대 가지 마세요’가 아니다. 나는 육식을 하지만 먹을 때마다 나 때문에 희생되었을 동물들을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서부터 언젠가 실천이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동물원에 가더라도 그 동물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같이 노력해 보자고.
정말로 야생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원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인간의 볼 권리를 충족시키는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애초에 인간에게 ‘이 세상 모든 동물을 볼 권리’란 없다. 한라산 백록담이 보고 싶으면 한라산을 올라야 하고, 오로라가 보고 싶으면 북극에 가까운 나라들로 향해야 한다. 왜 인간은 동물을 보기 위해 직접 떠나지 않고, 동물들을 인간의 서식지로 억지로 데려오는가. 아이들을 위해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지만, 맥없이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이게 얼마나 교육적일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푸바오가 행복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만큼이나, 푸바오가 꼭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 나 또한 틀릴 수 있다. 푸바오는 푸바오만 안다. 하지만 더 많은 푸바오가 나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푸바오의 행복을 인간이 결정짓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