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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May 01. 2024

혼자 걷는 이 길

런던 여행 후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

만 스무 살,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갔다. 첫 학기를 보낸 곳은 북부 파드칼레 지역의 소도시, 생토메르였다. 얼마나 작은지 버스가 하루에 세 번 지나고, 그 흔한 중국집 하나 없는 동네였다. 그곳에 대학교는 딱 한 곳으로 유일했고, 학생 중 동양인은 중국인 유학생 2명뿐이었다. 당시 학교 간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영어 수업이 전혀 없는 학기에 갔던 터라 교환학생은 나 혼자였다. 교환학생 선정 이후 뒤늦게 영어 수업이 없다고 하니 다른 학생들은 모두 다음 학기에 가겠다고 미뤘는데, 나는 프랑스어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배짱에서였는지 그럼에도 가겠다고 나섰다. 어떻게든 빨리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학기 시작 전 파리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은 사촌언니 집에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학기를 앞두고 그 작은 동네로 가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도 심심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연락할 방법은 노트북을 통한 화상통화뿐이었는데, 날씨가 안 좋을 때면 인터넷은 끊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곳은 우박과 비바람이 일상이었다.


"엄마, 괜히 일찍 왔나 봐. 동네가 너무 작아서 이미 몇 바퀴 돌아봤고 개학 전에는 친구 사귈 일도 없어서 심심해."

"거기 영국이랑 가깝다며, 여행이라도 다녀와봐."


생토메르에서 기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칼레항에서는 영국 도버항으로 가는 페리가 있었다. 페리를 타면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영국에 닿는다. 그렇게 가까운 곳이지만, 혼자 갈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어 손에서 땀이 났다.


당시 나는 혼자서 비행기를 타본 것도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가 처음이었고, 한국에서는 기숙사에서 살았기에 완전히 혼자서 살아보는 것 또한 생토메르에서가 처음이었다. 지금 지내는 곳도 익숙하지가 않은데 다른 나라로 여행이라니,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앞으로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해 여기 왔고, 그럴 각오로 남들이 다 취소한 여정을 혼자 강행했다. 그렇다면, 말이 통하는 나라로의 여행 정도는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가 던져준 선택지를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페리 예매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때를 시작으로 먼 훗날 결국 퇴사 후 세계여행까지 하게 되자, 엄마는 그때의 제안이 후회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ㅎㅎ)



그렇게 2박 3일간의 인생 첫 나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영국은 어릴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가기 전날엔 두려움보단 설렘이 더 컸다.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떨어진 생토메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칼레 항으로, 칼레 항에서 배를 타고 영국 도버 항으로, 그리고 도버 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에서는 지긋지긋한 프랑스어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어 좋았지만, 평생을 미국 억양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영국 억양은 생각보다 어색하게 들렸다. 그리고 파리의 아기자기함을 생각하고 갔기 때문인지, 마천루 가득한 대도시 런던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예약한 한인 민박집은 청소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홈페이지에 광고한 '무료 영국식 조식'은 시리얼 한 그릇이 전부였다. 내내 흐렸던 날씨 탓인지 도시는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였고, 기분 탓인지 사람들도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후 런던에 두 번 더 갔고, 세 번째 방문이 되어서야 런던은 비로소 그 오명을 씻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첫 런던 여행의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은, 그 사이사이에서 느꼈던 작은 행복들 덕분이었다. 뮤지컬 그리스를 보러 가서 옆자리의 영국인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 가고 싶었던 식당을 헤매지 않고 단 번에 찾았을 때의 쾌감, 숙소에서 방을 나눠 쓴 사람들과 함께 웃었던 기억 같은 것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들은, 그 당시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뭐든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일종의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들 중 마지막 쐐기를 박은 일은, 프랑스로 돌아와서의 일이었다. 칼레 항에 다시 내려, 칼레 기차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러 갔다. 그런데 정류장에 서 있던 버스 기사가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본 한 동양인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무슨 말이었는지를 영어로 물어보았다.


"역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25분 뒤에 출발한대요. 그런데 도보로 20분이면 역에 도착하니까, 기차를 빨리 타야 하면 그냥 걷는 게 나을 거라고 하네요."


그는 일본인이었는데, 일주일간 런던과 파리 여행을 온 것이라고 했다. 런던 구경을 마치고, 이제 칼레에서 파리로 향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말을 전해줘서 고맙다는 그와 함께 나는 칼레역으로 걸어갔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에 구글맵도 없던 시절, 도보 20분 거리의 기차역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칼레는 표지판도 별로 없는 작은 동네였다. 다행히 걸어가다 마주친 아저씨 한 분께 길을 물어볼 수 있어서, 무사히 역에 도착했다.


당시의 프랑스는, 그리고 특히 북부는,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그 일본인 관광객이 표를 구입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가 갈아타야 하는 역 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요즘처럼 여행 정보가 넘쳐나지 않던 때라, 나는 그래도 그에게 어느 정도 유용한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저 혼자서는 절대 못 왔을 것 같아요."


그의 말 한마디에 내 여행은 완벽한 막을 내렸다.



프랑스어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영어수업 하나 없는 학기에 와놓고, 학기가 다가올수록 나는 점점 겁이 났다. 파리에서 인종차별을 당하고도 프랑스어로 반박 한 마디 하지 못했던 나는, 앞으로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낯선 동네와 여전히 낯선 프랑스어가 내게 주는 심리적 부담감에 못 이겨 집에만 박혀있다 보니 불안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러다 처음으로 3일간 혼자 헤쳐나갔던 런던에서의 시간은 내가 그 후에 꺼내볼 수 있는 든든한 기억이 되어주었다. 내가 혼자서 여행을 잘할 수 있다는 증거들은 동시에 내가 남은 1년간 무사히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 이상으로 남을 도와주기까지 했으며, 심지어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자신감이 하등 없었던 나의 불어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혼자 사는 법을 알고 있을 때 더 수월해진다고 믿는다. 나 스스로와 단둘이 잘 지내는 법을 먼저 연습해 두어야, 어떤 새로운 사람이든 어떤 새로운 도전이든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그건 한 번의 여행으로 뚝딱 습득하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때 낸 한 번의 용기가 내게는 연습의 시작이 되었다.


런던을 시작으로 1년간의 교환학생 기간 동안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여행했고, 그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하는 모든 일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 떠나는 길,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가 이어지는 대화, 차 안에서 멍하니 바깥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 혼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사 먹고 혼자 공연을 보는 일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아쉬울 일도 없었을 즐거움들이겠지만, 그래도 알고 즐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때 런던에 다녀오길 정말 했다고, 나는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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