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은 떠나는 것이지만,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나 멀리 떠나든, 얼마나 오래 떠나든, 모든 여정은 결국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나야 한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그렇지는 않다. 어떤 여정은 중간에 끝나버리고 만다. 돌아올 기회를 영영 잡지 못한 채, 그렇게 멈추어버리고 만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한 광장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의자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간 뒤, 그들의 의자만 남은 걸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자신의 의자, 자신의 집을 두고, 그들은 기차에 물건처럼 실려 수용소로 운반되었다.
오시비엥침에 위치한 수용소, 우리에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곳에는 그 끔찍한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앉을 수 있는 공간조차 없어 이미 관속처럼 느껴지는 방과 침대, 가스가 나왔을 목욕탕, 추운 겨울 무작정 세워뒀을 들판. 그곳의 가이드는 수용소 앞에 놓인 철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희생자들을 싣고 온 철길은 이곳에서 끝이 납니다. 그들의 꿈과 삶이 이곳에서 모두 끝이 난 것처럼요.”
이어지지 못한 여정 속에, 이루어지지 못한 수많은 꿈들이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소소하고 평범한 여정들은 간혹 쓸데없이 큰 의미를 부여받으며 끝이 나곤 한다. 재난, 재해, 사고, 전쟁, 테러, 폭력, 잘못된 이념. 그 누구도 자신의 여정이 그런 거대한 사건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집을 나섰다가 알 수 없는 것들에 휩쓸려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품었을 수많은 꿈들, 그들이 나누고 싶었을 마음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가졌을 의문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크라쿠프의 의자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어쩌면 그건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은 이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계속 기억할 정도로는 큰.
미완성으로 끝난 그들의 여정을 남은 사람들이 대신 살아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위한 의자 하나 정도는 둘 수 있다. 그들이 마치지 못한 여정 끝에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