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은 한국인들에게 참 낯설지 않은 도시이다. 오죽하면 ‘경기도 다낭시’라는 애칭까지 있을까. 다낭에서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고, 가게마다 한국어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식당이나 마사지샵 직원들은 종종 유창한 한국어로 우리를 맞이해주기도 한다. 그만큼 다낭은 한국인이 경기도 다니듯 충분히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동네다. 너무 편해서 가끔은 여기가 정말 베트남일까 의심될 때도 있는 것이 문제지만.
베트남 다낭, 사랑의 부두
엄마와 둘이, 다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우리는 다낭의 근교 소도시 호이안을 먼저 여행하고 왔는데, 두 도시의 간극이 꽤 컸다. 어디든 도보로도 충분했던 호이안에선 그만큼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낄 수 있던 반면, 다낭은 마천루도 많고 도로도 넓어서 훨씬 북적거렸다. 다낭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도시였다.
다낭에 도착하고 이튿날, 우리는 베트남 도착 후 처음으로 현지 택시 앱인 그랩을 켰다.근교의 바나힐에 가기 위해서였다. 바나힐은 다낭 시내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테마파크로,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듯한 황금 다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베트남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택시 기사들도 많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방문하는 곳인데 택시를 타는 것이 편리한 동네이다 보니, 택시 기사들도 한국인 관광객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다. 물론 한국어를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고, 어쨌든 관광도시이니 대부분은 기본적인 영어 정도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를 태우러 온 택시 기사님은 한국어는커녕 영어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분의 가장 유창한 말 한마디는 'Sorry, no English'였고,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베트남어는 '신짜오 (안녕하세요)'와 '깜언 (감사합니다)'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내내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대화를 했다. 당시는 2018년, 그때만 해도 번역기의 수준은 썩 매끄럽지 않았다.
기사님이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건넨 말들은 번역기의 음성을 통해 무미건조한 말들이 되었다.
'이곳에 며칠 계십니까?'
'덥습니다. 그렇습니까?'
웃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익숙한 단어들이 조잡하게 번역될 때마다 우리는 한 번씩 웃었다. 어색한 번역 문체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기사님도 드문드문 웃음 지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우리가 한 대답들도 베트남어로는 우스꽝스럽게 바뀌었을 것이다.
식당마다 한국어로 반겨주고, 가게마다 한국어 안내문이 적혀 있어 '우리가 아직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한 건가' 착각하게 될 때즈음, '너는 지금 베트남에 있다!'라고 분명하게 알려주는 분을 만나서 도리어 나는 반가웠다. 편한 것은 좋지만, 편한 것을 너머 익숙한 느낌마저 들 때는 이런 순간이 늘 필요했다. 여행이란 결국, 약간의 낯섦과 불편함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이니까.
우리의 언어는 다소 삐걱거렸지만, 비언어적 대화는 부드러웠다. 건조한 말과 달리 기사님은 정말 친절하고 배려도 넘쳤다. 엄마가 부채질을 조금 하니 곧바로 창문에 햇빛 가림막을 달아주었고, 에어컨온도도 곧장 낮춰주었다. 시종일관 웃으면서 우리를 신경 써주는 기사님이었다.
베트남 바나힐
기사님 덕분에 쾌적했던 40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곧 바나힐에서 내렸다. 보통 바나힐은 접근성이 썩 좋지 않아서 태워다 준 택시를 다시 타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나올 때에 맞추어 태우러 와 줄 수가 있는지를 번역기를 통해 물어보기엔... 소통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돌아가는 택시를 잡는 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헤어지는 인사를 건네려는데,
'몇 시?'
기사님이 먼저 물어봐주었다. 이심전심이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우리가 다섯 시간 정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알겠다면서 다섯 시간 뒤에 보자고 했다. 우리는 구경을 마치고 연락하기로 했다. 나는 기사님과 메신저 아이디를 주고받고, 엄마와 함께 바나힐로 들어갔다.
고지대여서 서늘했던 바나힐에서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다, 어느새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기사님으로부터 먼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옛 장소 맞은편에 차를 주차했다."
옛 장소라고 하니 왠지 추억에 잠겨야만 할 것 같은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낭만적이지 않을 것도 없었다. 딱 필요할 때 나타나준 분이니까.
우리의 옛 장소는, 기사님이 우리를 내려줬던 곳. 그 맞은편에서 기사님은 우리를 보고 웃으며 반겨주었다.
우리는 다시 그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다정한 택시를 탔다. 바로 호텔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그날 그 기사님과 함께 다낭의 다른 명소들도 들렀다. 우리는 늦은저녁이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갔다.
바나힐에 있던 한국어 경고문
어쩌면 여행은 결국 번역인 것 같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우리만의 번역을 혹은 제각각의 번역을 거쳐 우리에게로 도달한다. 여행지에서 보는 풍경도, 만나는 사람도, 느끼는 감정도, 우리는 각자의 해석을 거쳐 받아들인다. 나는 이 기사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다낭을 계속 '경기도 다낭시'라고 해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운 좋은 만남과 서툰 번역기가 모여, 다낭이 비로소 '베트남 다낭'으로 해석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부르고 메신저로 기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이미 아날로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일이었지만, 언젠가는 이 정도의 여행도 아날로그로 비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리운 그 시절의 여행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번역기가 계속해서 발전하면, 이런 소소한 재미는 사라질 거니까.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런 엉뚱한 재미를 실컷 즐기고 싶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 왜곡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언어가 덩달아 굉장히 중요해지는 낯선 소통의 재미. 그러나 결국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