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구경하다 보면 종종 발견하는 콘텐츠 제목들이다. 강한 어조와 과감한 어휘 선택이 왠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물론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려면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토록 단정적인 제목들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편견을 주고, 가본 사람들에게는 묘한 서운함을 줄 수도 있지는 않을까?
지난봄, 부모님과 함께 괌을 여행하고 왔다. 그런데 다녀온 뒤 '괌 여행은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별로다', '괌에 가서 돌핀크루즈 (배를 타고 나가 돌고래들을 보는 것)를 하면 후회한다'와 같은 내용의 콘텐츠들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 없이 어른 셋이서 신나게 스노클링과 수영을 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놀았고, 돌핀크루즈를 통해 수십 마리의 돌고래들을 보면서 즐거웠는데,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런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 없이는 가지 말라'라고 쓴 사람은 조카들과 간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신나게 놀았고, 동행한 어른들은 충분히 재밌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같았다. 자신이 본 주변 가족들도 모두 아이들 때문에 온 것 같았다고, 기내에서는 아이들 우는 소리 때문에 괴로웠다고도 말했다. 돌핀크루즈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운 나쁘게도 돌고래를 한 마리도 보지 못한 데다 불친절한 서비스까지 경험했기에 그렇게 쓴 것으로 보였다. 모두 자신의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는 어른들끼리도 괌을 재미있게 여행한 후기와, 우리처럼 즐겁게 돌핀크루즈를 하고 온 사람들의 후기가 훨씬 더 많았다.
<한 번 가보면 절대 잊지 못한다는 여행지 10위> <죽기 전에 꼭 가야 하는 곳 5위>
비슷한 맥락으로 위와 같은 콘텐츠들도 있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리스트들이기는 하지만, 리스트를 작성하는 주체에 따라 그 속에 열거된 장소들이 매번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타당성 역시 명확하지 않다.
물론 위의 콘텐츠들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방문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굉장히 체계적으로 여행을 기록하고 여행지를 분석하며 나름대로 객관적인 데이터를 쌓은 사람들일 수 있다. 그들의 콘텐츠 속 여행지들은 내가 가본 곳도 있고 가보지 않은 곳도 있으므로, 나 역시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내가 발견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10위'라는 리스트에는 드물게도, 내가 직접 가본 곳이 무려 9곳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부터 아이슬란드 셀야란즈포스 등이 언급되어 있는 리스트였다. 가보지 않은 한 곳마저도 그 근처까지는 갔으므로 어느 정도의 느낌은 예상되는 터였다.
막상 내가 다녀온 곳들에 순위가 매겨져 있는 걸 보고 나니, 더더욱 확신이 섰다. 이렇게 단정적인 콘텐츠들은 사실, 아무 의미도 정당성도 없다고. 모두 아름다운 곳들이었던 건 맞지만 나는 그 속에 적힌 순위에는 공감할 수 없었고, 내가 생각하기엔 그 10곳 외에 더 아름다운 곳들도 세상에 많았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데,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순위가 존재하기는 할까. 전 세계 모든 곳에 다 가본 사람 또한 없을 텐데, 누가 어떤 근거로 이런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수치화할 수 없다.
"여행했던 곳들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
수도 없이 듣는 이 질문도, 나는 여전히 답하기가 어렵다. 그 어느 곳도 '다른 곳보다 더' 아름다웠던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 그 장소가 내게 아름답게 느껴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쳐갔던 모든 곳들은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많은 곳들에 쉽게 가게 된 요즘, 직접 가보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 일주일, 한 달, 혹은 며칠 머문 곳들에 대해 개인적인 감상을 너머 일반화하는 글들 또한 많아졌다. 하지만 뉴욕에 가봤다고 미국에 대해 전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월의 호주에 가봤다고 7월의 호주까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다 아는 듯한 그러한 글들도 사실은 다 알지 못한다.
타인이 전하는 경험과 정보들은 언제나 단편적이다. 한 사람의 경험은 겪은 일 그 자체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즉,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일을 겪더라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여행 후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어떤 내용이 나에게 더 어울리느냐의 차이만이 있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 직접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파리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1990년대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로, 프랑스 파리를 처음 방문한 20~30대 일본인들이 파리를 실제로 방문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환상과는 다른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문화 충격을 의미한다. 그들이 파리에 가보기도 전에 그토록 굳건하게 가진 환상은 어디서 왔을까? 다른 누군가의 사진, 누군가의 증언, 누군가의 경험,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고 누군가가 붙인 이름에서 왔을 것이다.
수많은 여행 콘텐츠들은 수많은 조언들과 같다. 건네는 사람들, 건네지는 정보들이 많을지라도, 결국 선택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내 취향과 그들의 취향이 다르고 내 삶과 그들의 삶이 다르듯, 내 여행 역시 그들의 여행과는 다르다.
직접 가보기 전에는 그 무엇도 미리 결정해버리지 않으리라.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오로지 내가 느끼는 감상에만 집중하리라. 그러면 선택도 내 몫이고, 책임도 내 몫인, 온전한 나의 여행, 나의 인생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