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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04. 2024

갓길 대신 휴게소가 필요할 때

휴식

'퇴근하고 집에서 쉬는 시간'. 어느 날 문득, 이 말에 의문이 생겼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자체로 휴식이 될까?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에도 열심히 자기만의 시간을 채워간다. 취미생활, 집안일, 제2의 직업. 나 역시 내가 세운 계획에 따라 책을 읽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운동도 한다. 매일 그 모든 걸 하지는 못해도,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하려 한다.  시간은 회사에서의 시간만큼 의무성을 띠지는 지만, 그럼에도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시간이 되어버린 이상 '쉬는 시간'이 아니라 당연한 일상의 테두리 안에 묶인다.


물론 계획적인 하루를 보내는 틈틈이, 쉬는 시간이 생기기는 한다. 잠시 영화나 짧은 영상을 볼 수도 있고, 모바일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침대나 소파에 몸을 뉘일 수 있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상의 틀 안에서 잠시 멈춰서는 건, 도로를 주행하다 갓길에 잠시 차를 댄 것과 다르지 않다. 잠깐동안은 가던 길을 멈추고 시선을 달리하며 한숨 돌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 한편 어딘가는 괜히 불편하다. 곧 출발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지금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목표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 뒤쳐지는 기분 같은 것들이 우리를 짓누른다.



가끔 우리도로가 보이지 않 구석진 휴게소로 향해야 한다. 열심히 달리던 도로에서 벗어나, 전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시간이 필요하다. 자잘한 짐정리와 어제 못 끝낸 책과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옭아매지 못하도록 말이다.


반드시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을 깨는 일이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떤 활동이나 상태일 수도 있다. 휴가를 내고 먼 곳의 바다를 보고 오는 일이든, 계획했던 운동 대신 달달한 컵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일이든, 휴대폰을 꺼두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영화를 한 편 보는 일이든. 각자가 쉴 수 있는 다양한 휴게소를 꾸준히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휴게소에 가도 괜찮다는 마음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믿음.


우리의 여정은 길고도 길어서 늘 장거리 마라톤처럼 대해야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어쩔 수 없이 단거리 달리기를 요구한다. 그러니 달리기 사이사이에 호흡을 고르고 물을 마시고 땀을 닦아낼 시간이 필요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쉬는 동안만큼이라도 충분히 멈춰 서고, 쉬고 나서 행여라도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지 말자. '이만큼 쉬었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해'와 같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말 대신, '이번에도 충분히 잘 쉬었어, 잘했어'처럼 긍정적인 격려를 건네며 다시 출발하기를. 때로는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는 것 같았던 시간이, 사실은 가장 큰 의미를 품고 있었음을 훗날 알게 될지도 모다.



* 다음 주에는 <도착하기 전까지의 이야기>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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