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 세 번이 아니라 열세 번

골든서클 투어 시작

by 바다의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기본 관광지로 꼽히는 골든서클.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우리를 태우러 온 미니버스에는 노부부 한 쌍만 타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날 선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1번 정류장에 와 있다는 거예요? 저 거기서 5분 넘게 기다리다가 그냥 왔어요. 아직 픽업이 더 남았어요."


상황은 이러했다. 미국에서 온 단체가, 정해진 시간에 픽업 장소에 나와 있지 않아서 가이드가 이름을 부르고 기다리고 둘러보다, 결국 포기하고 우리를 먼저 데리러 온 것이었다. 픽업 시간에 맞춰 나와있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으면 놓고 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아마 뒤늦게 사무실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 투어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거나 장소가 낯설어서, 픽업을 한 번 정도는 놓칠 수 있다. 어차피 골든서클은 아주 먼 곳도 아니고, 10분 정도 지연되는 건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1번 정류장에 다시 갔을 때도 아무도 안 나와 있는 건 선 넘었지!


가이드가 또 전화를 걸며 이리저리 뛰어다니자 드디어 저 멀리 8명이 나타났다. 아무도 급하지 않았고, 설렁설렁, 집 앞 마실 나오듯이 걸었다. 전혀 늦은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었다. 근데 그 와중에 한 명이 더 와야 한다고 했다.


"산드라는?"

"아까 나와 있었는데? 어디 갔어?"

"화장실?"

"푸하하, 또?"


천천히 걸어오다 멈추어 뒤돌아보고는 또 이야기하고, 웃고, 다시 걷다가 또다시 멈춰서 웃고. 버스에서 기다리는 우리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그들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8명이 차례차례 먼저 탔고, 3분 뒤에 도착한 9번째 일행을 마지막으로 겨우 탑승이 끝났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도 뛰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일행에는 3-4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60대 후반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도 서너 명 정도 있어 서툴고 느릴 수 있는 건 이해했는데,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 덕분에 예정시간보다 최소 20분은 늦게 출발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날의 목적지들이 아주 멀지는 않아서, 조금 늦더라도 손해 보는 게 크진 않을 거라는 것. 물론, 남부투어 때처럼 이때도 시간이 잘 지켜졌다면 추가 스팟을 들릴 수 있었을지 모르므로, 그들 때문에 손해 본 게 있는지는 우린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짜증을 멈추려면 그런 식으로라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 가게 될 온천 생각도 해보았다. 투어가 늦어지면 온천 도착 예정시간 또한 조금 늦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 끝에는 몸도 마음도 좀 풀리겠지.


란드만날라우가르, 남부투어에 이어 똑같은 길을 세 번째 지났다. 이미 흐린 날씨 한 번, 맑은 날씨 한 번 봤기에 이번엔 안 보고 잠들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잠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지만 곳곳에 눈이 내린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날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를 비롯하여 곳곳에 눈이 왔다더니 또 새로운 경을 볼 수 있었다.



출발한 지 약 50분쯤 지나, 흐베라게르디 (Hveragerði)라는 마을에 잠시 내렸다. 화산 지대에 위치해 있어 온천으로 유명한 동네라고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작은 게이시르가 위치한 곳의 지열 베이커리 (Geothermal Bakery)였다. 이날 오후에 보게 될 게이시르는 더 거대한 곳이지만, 이곳 간헐천도 15~20분에 한 번씩 꽤 높이 올라왔다. 옆에 온실이 하나 있었는데, 열대식물들이 자라고 있던 그곳에는 여러 명이 앉아서 간식을 먹을 만한 의자와 테이블들도 가득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온실과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주인은 계란을 뜨거운 온천물속에 넣었다. 그 광경을 본 뒤 산책로를 따라 걸어 힘차게 솟아오르는 간헐천을 보고 다시 되돌아 나오니, 삶은 계란과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온천에 삶은 계란과 온천 근처 뜨거운 흙에 묻어 오래 구운 아이슬란드식 빵, 흐베라프로이드(hverabrauð)였다.



이미 숙소에서 밥과 미소국, 약간의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나왔지만, 두 번째 아침식사까지 하니 더욱 든든했다. 평소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폭신한 느낌이 좋았고, 버터를 살짝 바른 빵도 정말 맛있었다. 촉촉한 호밀빵인데 처음 먹어보는 맛과 질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간헐천이 올라오는 걸 두 번이나 보고, 간식도 먹고, 화장실도 여유롭게 이용했지만, 그들은 이번에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차로 돌아오라고 말한 시간에, 그들은 아직도 계란을 까고 있었다. 나이 든 일행을 보면 어느 정도 참아야지 싶다가도, 그 옆에서 함께 시간 개념 없이 웃고 떠드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또 짜증이 일었다. 가이드가 몇 번이고 재촉해도 그들은 농담으로 응수할 뿐이었다.


"자 여러분, 아이슬란드 시간으로 10시 20분은 10시 20분입니다! 빠르게 드시고 차로 오세요~"

"벌써~? 아직 화장실도 못 갔는데! 이 나이 되면 화장실은 꼭 가야 하거든요~!"


이날의 가이드도 참 짠했지만, 내심 전전날 남부투어 가이드가 그리웠다. 그는 절대로 참지 않았을 것이다.



속 터지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출발해, 골든서클로 향하기 전 케리드(Kerið) 분화구에 먼저 도착했다. 이곳은 나도 처음 보는 곳이라 새로웠다. 윗길을 한 바퀴 돌 때는 햇살 때문에 눈이 좀 부시긴 했지만, 분화구 안쪽으로 걸어내려가니 분화구가 가림막 역할을 해주었다.


위쪽은 사람들 소리와 바람소리로 북적였는데, 아래쪽은 사람도 많지 않아서 한적하고 조용했다. 가볍게 찰랑이는 물이 참 예뻤다. 이날의 하루가 이렇게 조용하고 잔잔하면 좋겠지만...



문제의 일행은 나이 많은 사람들 때문인지 아예 걷지를 않고 기다려서 이번에는 늦을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또 한쪽에서 다 같이 사이좋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예정된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가이드가 '사람들 다 왔다'라고 외쳤고, 그제야 그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런데 새로 문 담배가 아까웠는지, 차에 올라타기 직전까지 피고 있다가 바닥에 버리고 타는 것이었다. 덕분에 불쌍한 가이드가 그걸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굴포스 - 게이시르 - 싱벨리어 3곳을 들르는 골든서클 투어가 시작되었다.


분화구에서 출발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 굴포스(Gullfoss)로 향했다. 가는 도중, 맑았던 하늘에 점점 구름이 늘어나 흐려져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들이 늦지만 않았어도!) 굴포스의 매력은 예쁨보다는 웅장함이니, 그것만큼은 보장되었다.



산책로를 걸어 폭포를 향해 가는 동안에도 이미 폭포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힘차게 쏟아져내리는 모습은 우리를 압도했다. 남부투어에서 보았던 폭포들도 다 매력적이었지만, 굴포스의 위엄은 남달랐다.


폭포에 가까이 가니 마치 비가 오듯 우리를 향해 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폭포가 흘러내려오는 강물도 예뻤는데, 저 멀리 설산도 예뻤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려고 달려보아도 너무 멀어서 가까워진 줄도 몰랐지만, 폭포와 함께 설산을 담아보았다.



10년 전에 왔을 때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전설이 써 붙어있어 친구와 흉을 봤었는데, 이번엔 그 전설은 사라지고 이 폭포를 지켜낸 이들의 노력이 붙어있었다. 10년 전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하다. 굴포스 폭포를 사이에 두고 한 소년과 소녀가 양쪽에 살았는데, 둘은 사랑에 빠졌고, 어느 날 소년이 용기를 내어 폭포/강을 건너 소녀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끝.


이번에는 20세기초 해외 자본이 이곳에 발전소를 지으려 했는데, 현지 여성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막았다는 이야기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래, 차라리 이건 감동이기도 하고 실제 이야기니 유익하기도 했다. 이야기만 달라졌을 뿐인데 굴포스 폭포의 웅장함이 한층 더 두터워진 듯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소리에 기분 전환을 한 뒤, 이어서 게이시르로 향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의 여유는 여전히 있던 것인지, 가는 길에 아이슬란드 말을 만날 수 있는 곳에 잠시 들렀다. 우리 가족은 큰 관심 없었지만 다른 일행들이 관심을 보여 함께 내려서 먹이를 줬다. 이곳에 갇혀 매일 다른 손님들을 맞아줘야 하는 말들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내 손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며 간지럽히는 모습은 귀엽기도 했다.



게이시르 앞에 내려 점심식사부터 했다. 우리가 이용한 투어들 중에 유일하게 점심시간이 확보된 투어였다. 10년 전에도 왠지 여기서 식사를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순무 수프를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없었다. 대신 토마토수프인 미네스트로네와 램수프, 피시 앤 칩스를 골고루 주문했다. 램수프는 조금 기름지긴 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냄새도 안 나고 맛있었고, 미네스트로네와 피시 앤 칩스는 역시 전 세계 어디서나 성공하진 못해도 실패하지는 않는 메뉴답게 무난했다.



간단한 식사 후 간헐천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The Great Geysir' 덕분에, 영어에서도 geysir라는 말이 그대로 간헐천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때 80미터 높이까지도 솟아올랐다는 Great Geysir는 이제 거의 올라오지 않아, 지금은 Strokkur가 가장 대표적인 간헐천이 되었다. 10~15분에 한 번씩 올라온다는데 세 번이나 봤다. 한 번은 그냥 그 이름 비석을 찍으러 카메라를 켰다가 운 좋게 사진에 같이 찍혔고, 이후에는 기다렸다가 영상으로 찍을 수 있었다.



Strokkur뿐 아니라 곳곳에 부글거리는 다른 간헐천 웅덩이들도 천천히 둘러보며 걸었다. 크게 한 번씩 솟아오르는 건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높이를 유지한 채 꾸준히 끓는 듯한 모습도 신기했다.


우리 가족은 평소 가이드가 말한 출발 예정시간보다 2-3분 먼저 도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하루동안 학습된 것이 있어, 정확히 그 시간에 맞춰갔다.



그런데도 그들은 또 없었다! 멀지도 않은 이 평지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또 늦었다. geysir는 본디 '솟구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하던데, 내 마음도 솟구치기 직전의 게이시르 같았다.


우리, 오늘 내로 투어 마칠 수는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