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고래 Jun 30. 2019

전문성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프롤로그 #중구난방 커리어 이야기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매일같이 투덜거리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의 시간이 지났다. 6년간 한 회사를 다녔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조금 다르다. 이직이 잦은 IT나 커머스 업계 사람들은 역시 공채 출신의 순혈이라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을 하고, 그룹사처럼 안정적인 곳에 다니는 분들은 6년이면 아직 햇병아리라고 이야기하며 열심히 해서 회사에서 성공하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케이스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도 한 회사에 6년을 다녔으니 어느 정도 특정 분야에 빠삭(?)까지는 아니더라도 익숙하거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실상은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내가 6년 (만으로 5년 반) 동안 했던 업무를 큰 분야로만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영업지원, 사업전략, 해외파견, 이커머스 영업, 신사업기획. 큰 꼭지로만 봐도 거의 1년에 한 분야씩 업무를 바꾼 셈이다. 또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영업지원/사업전략 이런 업무들은 메인 업무 외에도 수 없이 다양한 잡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말 별의별 일들을 조금조금씩 해왔던 것이 내 회사생활의 특징이다. 

 이렇게 업무를 시도 때도 없이 바꾸게 된 데에는 회사의 정치적 상황, 조직 개편, 개인의 희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생긴 가장 큰 문제는 회사원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UX기획자, 재무관리자, IOS개발자 등 단어 하나만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주저리주저리 최소 한 문장 정도는 써야지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 대학시절에는 복수전공을 하는 바람에 전공 이야기도 2개를 해야 하고 회사일 외적으로 벌려놓은 프로젝트들까지 늘어놓다 보면 나 스스로도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의문이 생기고는 한다. 


오색 빛깔로 칠해진 나의 이력서....


뭐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사실 몇 년 전 까지는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굴러가는 나의 커리어를 보며 고민이 많았었다. 이렇게 살다가 회사에서 쫓겨나면 뭐 해 먹고살아야 할지, 쫓겨나기 전에 나가야 할 거 같은데 이직은 가능할지. 수많은 직장인들이 하는 전문성에 대한 걱정들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행히 그런 걱정들이 많이 사라진 편인데, 우선은 좀 실없는 이유이긴 하지만 원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컸다. 회사 안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나 이외에도 다양한 업무들을 해본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그 가짓수와 기간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정말 생뚱맞게 직무를 바꾼 사람도 있고, 아예 회사원-프리랜서-다시 회사원 이런 식으로 직업 자체를 바꿔버린 사람들도 많았다. 어떻게 보면 회사원들의 세계에서, 특히 나 같은 문과 출신 회사원들에게 '한 분야의 업무를 오랜 시간 해서 전문성을 쌓는다'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 같은 느낌도 조금 있다.

 

나의 전문성은 내가 정의하는 것 

 강연을 듣거나 좋은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업을 스스로 정의하는 사례를 보고는 했었는데, 이런 사례를 참조하여 나의 업, 나의 전문성을 스스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니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설명할 거리는 만들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를 1년밖에 안 해보다 보니 이커머스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존에 사업전략을 오래 했었기에 이커머스 사업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역량과 지식은 다른 거니까

 하도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사실 어떤 분야의 트렌드나 전문기술 같은 것을 설명하라고 하면 참 할 말이 없다. 즉, 딱히 전문지식이 라고 할 것이 많이 없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구실하고 밥 먹고 사는 것을 보면 전문지식과 업무역량이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일 했던 모든 분야는 사실 전문지식을 엄청나게 쌓아야 한다기보다는 꼭 필요한 지식만 빠르게 익힌 후, 필요한 자원들을 조합해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 영역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영업을 기반으로 한 현업부서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성이 강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웬만하면 새로운 업무를 맡아도 잘은 못해도 어떻게든 해결은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엄청 생기게 되었다. 


직장인의 정신건강에 근자감은 필수


직장인은 고민이 많고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커리어 셰어라는 프로그램에서 주로 1-2년 차의 주니어 회사원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진행했었다. 나 스스로가 뭔가 대단한 가이드를 해줄 연차는 아니다 보니 주로 나는 어떤 고민들을 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해결해 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세부적인 내용과 결을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의 직장인들은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직무를 맡았는데, 사수도 없어서 체계도 없이 일을 배우고,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위에서는 쪼고, 어찌어찌 하루하루 해결하면서 시간은 지나는데 전문성은 안 쌓이는 것 같은 수많은 고민들. 하긴 이렇게 고민이 많으니 직장인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가 그렇게나 많은 것이겠지.


나는 정리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구난방으로 살아온 나의 6년 커리어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첫날 던져진 아리송한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 한번 본 게 전부인 대학 후배에게 전화하고, 촬영팀을 데리고 카니발을 타고 팔자에 없던 전국 로케를 하던 일, 니하오밖에 못하는 상태로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바둥거리던 시간들, 컨설팅 출신 임원분들 만족시키기 위해 밤새 회계 장부를 파던 일상,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엑셀로 시뮬레이터를 만들던 날들, 그리고 일상이었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하루하루의 소소한 노력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던 한마디의 말, 한 권의 책들을 서툰 문장으로나마 정리해보려고 한다. 별 것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지만 글로 남겨놓는다면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정말 좋겠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