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과로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고래 Jan 12. 2020

무례한 면접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상한 사람들한테 밉보였다고 실망하지 말자

#장면 1. 

 계속해서 서류와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며 힘든 취준 생활을 하던 한 취준생, 꿈꾸던 드림컴퍼니의 서류 합격을 하게 된다. 드림은 그저 드림일 뿐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그는 드디어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라며 심기일전을 다짐한다. 인적성에서 생각지 못했던 역사문제도 잘 대처한 후 드디어 면접날, 면접관은 대학생활 동안 가장 열중했던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왔구나! 이번 면접도 필승이다. 이미 수 없이 정리했고 수많은 면접에서 어필했던 경험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면접관은 취준생의 말을 자르며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하지 마세요. 00 씨 자소서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게 그거예요."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일에 대한 답변을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고 그분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로 마무리하자 면접관은 말했다. "그럼 00 씨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인가 보네요?"

 취준생은 참아보려 했지만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의 공격, 목적이 너무나도 훤히 보이는 압박 질문에 서서히 말려가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다. 너무나 꿈꾸던 회사였는데 현재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것은, 단지 면접관이라는 이유로 내 인생을 마음대로 평가질 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 달해 서였을까. 취준생은 어느 순간 그들의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그리고 드림 컴퍼니는 그렇게 꿈속에 있는 회사로 남게 된다.


#장면 2.

 심리학과 출신의 한 취준생, 모 그룹의 알짜 계열사 채용공고에서 '심리학과 우대'라는 단어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을 하게 된다. 몇 년간의 취준생 시절, 심리 학과생을 특별 대우해준다는 단어는 처음 본 것이 아니던가. 몇천 자가 넘는 자소서도 지원자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1차 면접에는 심리학과 교수가 배석을 했고, 얼마 뒤 1차 면접 합격 통보를 받자  취준생은 확신한다. 이번에야 말로 길고 긴 취준 생활은 안녕이라고.  그렇게 드디어 최종면접날, 관행적인 몇몇 질문이 오간 후 대표는 취준생에게 질문한다. "그래 00 씨는 심리학과니까, 면접관 중에서 누가 제일 깐깐해 보이나요?" 황당한 질문에 당황해서였을까. "취준생은 대답한다. "네 제 생각에는 대표님입니다." 대표의 양미간이 찌푸려진다. 취준생은 급히 부연 설명을 한다. "대표님이시기에 가장 큰 책임을 짊어지고 게시고, 그래서 채용 현장에서 누구보다 디테일을 고민하실 것 같아서 드린 말씀입니다." 찌푸려진 양미간은 그대로였다. 취준생은 생각한다. 'X 됐구나'


#장면 3. 

 취준생은 몇 년의 세월이 지나 경력직 면접을 가게 된다. 에스코트도 없이 회의실로 알아서 들어가라는 인사담당자, 이미 몇 건의 경력직 면접을 경험했던 그는 당황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은 봐야 한다. 일단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앉아있는 두 명의 면접관을 향해 인사를 한다. 응? 그런데 한 명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인사를 못 들었나?' 의자에 앉아 다시 한번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노트북만을 바라본다. 그는 다시 한번 당황한다. 유수의 IT기업이라는 이곳에서, 신입 채용 때도 겪어보지 못한 신박한 경험을 하다니! 이어지는 면접에서도 면접관은 비즈니스 매너보다는 형님 매너를 중심으로 그를 대한다. 그는 1시간 내내 놀랐지만, 사회생활 짬밥이 있으니 어떻게든 면접은 마무리한다. 며칠 후, 최종면접 일자를 조율하자는 인사담당자의 전화가 온다. 그는 대답한다. "안 가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이 3개의 장면에 나오는 주인공은 모두 나다. 장면 1,2는 몇 년 전 한창 취준으로 고생하던 시절이었는데, 이 두 개 회사는 모두 내가 정말로 너무나 가고 싶어 했었던 회사들이었다. 그런 면접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압박, 또는 황당한 질문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진 특유의 반항끼?를 숨기지 못했고,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사실 한동안, 아니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때 내가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년간 사회생활을 해보니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적당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거나, 웃으면서 납작 엎드리기, 네 말이 다 맞다고 그냥 대충 받아주기 등, 잠깐의 불편함만 잘 참아내면 나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 방법들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아니 몇 년간 그때 그 순간들을 돌아보며 아쉬워했다. 나는 왜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존심을 꺽지 못했을까? 아니 절박했기에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져서 유연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합격을 했으면 좀 더 편했겠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생각은 점점 변했고, 최근에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내가 왜 이상한 사람들한테 밉보인 걸 후회해야 하지?"라고. 물론 실리적으로는 잠깐 참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위의 #장면 3 같은 경우는 다 참아내고 합격한 후에 가기 싫다고 안 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례한 면접, 압박면접이라는 이상한 콘셉트로 지원자를 인격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면접에 내가 납작 엎드려야만 하는 건 아니다. 참아내고 원하는 걸 얻던, 참지 않고 나의 소신을 지키건, 어떤 선택이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그동안 문과로드 칼럼을 통해 항상 취준생들에게 '열심히 해야 한다'고만 이야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열심히 안 해도 되는 상황들도 있다. 이상한 면접, 무례한 면접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들에게 잘 보일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건 합격하면 나한테 선택권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말이 꼭, 반드시 잘 보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애당초 이상한 판이었는데, 내가 못했다고 문제 될 것이 있을까? 

 누군가 과거의 나처럼 비슷한 경험에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고, 실망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가 나를 존중해주어야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합니다.

*문과로드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yourcareerroad/

 

길을 찾는 문과생들의 커리어 파트너, 문과로드




매거진의 이전글 인문계가 상경계보다 취업이 어려운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