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차이가 아닌 관점의 차이
비슷한 스펙을 가진 두 사람 A와 B가 있다. 같은 나이에 같은 성별이고, 두 사람 다 서울시내의 중상위권 대학을 나왔다. 심지어 영어 점수와 활동내역도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A는 국문학, B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취업 성공 가능성이 높을까? 슬프게도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 특히 인문계열 전공자라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가뜩이나 이공계에 밀리는 것도 힘든데 같은 문과 내에서도 상경계 보다 취업이 어려우니 인문계열들은 정말 서럽다.
왜 상경계가 인문계보다 유리할까? 첫째, 실제로 기업에서 회계/재무/금융 관련 분야들은 상경계열에서 배운 것들이 바로 사용되기도 한다. 둘째, 그냥 편견이 있어서 지원자들이 고만고만하면 상경계를 뽑기도 한다. 마치 이왕이면 좋은 대학 나온 사람, 학점이 좋은 사람을 뽑는 느낌.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다. 또, 알아봐야 아무 쓸모가 없는 정보다. 지금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회계 자격증을 딸 수도 없고, 편견이 있는 기업과 면접관이라면 취준생 개인이 그 편견을 깨기도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편견을 뚫을 힘이 있다면 그 에너지로 다른 좋은 기업에 가는 것이 낫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위의 2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우리가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극복해야 할 차이에 관한 것이다.
회계/재무 같은 전공지식과 직접 연관이 있는 직무가 아닌, 문과생들의 1,2순위 희망 직무인 영업/마케팅 직무로 넘어가 보자. 생각보다 이 영역은 지식보다는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이 중요한 분야다. 또 정답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경험조차도 때로는 의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마케팅 전공에서 A+를 받았다고 해서 대박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다고 무조건 좋은 카피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 이런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문과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전공에 대한 편견도 적은 편이고, 인문계 출신들의 서류 합격률도 다른 직무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서 상경계 출신들에게 밀렸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나 기업중심적으로 생각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이 사람이 얼마나 기업 중심으로 생각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업 중심적인 사고란 기업의 입장,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6년간 많은 취준생들을 멘토링 하다 보니, 개인차는 있지만 확실히 상경계열 출신들이 높은 확률로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업중심적으로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다.
[예시]
A : 저는 성실하고 체력이 좋습니다. 어떤 일이든 끈기 있게 해낼 수 있습니다.
B : 저는 성실하고 체력이 좋습니다. 제가 지원하는 00 직무는 외근과 출장이 잦은 한편 중요한 계약서류를 1차 적으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활패턴을 관리해서 번아웃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가 가진 성실성과 체력이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요새 면접에 성실성, 체력 같은 답변은 천편일률적이고 뻔한 답변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래 B와 같이 회사와 직무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에 맞게 답변한다면 A보다는 가산점을 받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상경계열들이 저런류의 생각을 더 잘할 수 있고, 저런류의 답변을 더 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인문계 출신보다 뛰어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내 개인 경험상 절대 이 두 가지는 이유가 아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핵심 변인은 '역량'이 아니라 '노출빈도'다.
4년간 얼마나 기업에 많이 노출되었는가?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과목을 한번 보자. 경영학원론/회계학/재무관리/마케팅/인사조직관리 등등. 모든 과목들이 '기업의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4년간 다른 일 안 하고 전공 수업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기업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상경계열은 그 특성상 선배, 친구들도 취업을 많이 한다. 과 모임을 하건 동아리 모임을 하건 선배와의 시간을 보내건 자연스럽게 취업한 사람들을 통해 기업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반면 서론에서 예를 들었던 국문학과를 보자. 국문학과의 경우 문학, 언어학 등의 영역에서 주로 수업을 하게 된다. 당연히 취업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기업에 대해서 접할 일이 별로 없다. 또한 인문계의 경우 대학원을 가거나 취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학창 시절에 취업한 선배나 친구를 만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한국에서만 영어를 배운 사람보다, 미국에 살면서 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한 사람이 확률적으로 당연히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기업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기업에 대해 많이 들어본 사람인 상경계열들이 당연히 기업친화적인 행동과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누가 더 우수한지를 가르는 차이도 아니다. 다만 '적합성'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차이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는다. 당신이 다이아몬드를 사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A와 B가 모두 같은 다이아몬드 원석이지만, A는 아직 돌 속에 파묻혀 있어 그 진가를 아는 사람만이 시간을 들여 연구해봐야 제 가치를 알 수 있다. 반면 B는 이미 패키징이 되어서 쇼윈도에 들어가 있다. 이때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마 우리 모두 같은 답을 골랐을 것 같다.
기업중심적 사고를 위한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인문계열 취준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상경계로 재입학을 하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위에서 잠깐 미국에 살았던 사람이 영어를 잘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다고 이야기했다. 확률이라는 것은 100%가 아니어서, 미국에 살았더라도 영어를 못 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만 살았어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이 차이는 노력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1. 기업과 관련된 콘텐츠에 익숙해지자.
영원한 고전인 경제신문부터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소의 칼럼, PUBLY와 아웃스탠딩 등에서 발행하는 양질의 콘텐츠들,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전략/인사/마케팅/영업에 관한 자료들, 유튜브에서 나오는 기업과 관계된 이야기들, DART에 올라오는 기업공시들을 시간을 내서 많이 접해보자.
2. 현직자를 만나보자.
책에서는 현실을 배울 수 없고, 우리는 기업 컨설턴트가 아니라 직원이 될 것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좋은 공부다. 주변 선배들이나 취업 동아리 등을 통해서 만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최근에는 현직자들을 만날 수 있는 많은 루트가 있다. 잇다, 코멘토 등의 서비스를 활용해서 최대한 현직자들과 많은 교류를 해보자. 또한 채용 설명회/상담회도 활용할 수 있다. (링크 글 참고)
https://brunch.co.kr/@linkyspark/9
3. 나의 장점 - 기업의 Needs를 매칭 시키는 훈련을 계속하자.
대학교는 일정 점수와 조건이 되면 합격이 되지만, 회사는 이러한 일정한 기준이 없거나 희미하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나의 고객인 회사와 면접관을 설득해서 나라는 사람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회사의 입장에서, 그 직무의 입장에서 어떤 능력과 역량들이 필요할지를 생각해보고, 여기에 나의 장점을 매칭 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스킬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거나 장점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면 그러한 작업도 병행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6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 조차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작업이다.
취업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따라서 취업에 맞게 나의 인생을 설계할 필요도 없다. 국문학은, 심리학은, 영문학은, 철학은, 모두 그 자체로 의미 있고 훌륭한 학문이다. 다만 내가 나의 다음 스텝을 취업으로 결정했다면, 나의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직무가 있고 어떤 역량이 필요할지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나의 자리를 찾아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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