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도 아름다운
전새벽에게
새벽아, 오랜만이야 :)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 셋을 키워 내느라 바쁘고 지치고 힘겹고 괴롭고 너의 시간은 사라져 오므라 들었을 테고 오늘이라는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내일이 찾아오는 뭐 그런 다이내믹함에다가 회사 업무의 분주함까지 더해지는 미션 임파서블 같은 긴박한 나날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던 술잔의 맹서는 취기와 함께 날아가 버렸는지 너의 집 근처도 찾아가지 못하는 내 신세에 그저 미안할 따름이야...
요즘 말이야. '내가 사랑한 작가들'이라는 주제로 내가 뭐 아는 게 있다고...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내고 있는데, 사실 이 주제의 시작점은 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어. 너에게 정말 소개하고 싶었거든. 김애란이란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말이지. 물론 그간 우리가 주고받았던 대화의 내용을 톺아볼 때, 김애란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ㅎㅎ 다 저마다의 취향이니까, 너를 존중하고, 너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그래서 뭐라 뭐라 말로 설득하거나 설명해주지 못한 김애란 작가 이야기를 언젠가는 해주어야지~ 마음먹고, 그간 일곱 명의 작가들에 대해 나만의 소회를 밝히며 빌드업(?)을 해온 건지 모르겠어 ㅎㅎ
네가 김애란 작가를 엄청~ 싫어한다고 해서, 네가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를 곰곰이 생각했었어. 예민한 감정을 조곤조곤 풀어는 시선이 싫었을까,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시적이거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문장을 다듬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혹은 애써 잊고 싶은 감정을 다시 꺼내오게 만드는 조용한 힘 같은 게 거슬렸을까 싶어서 입 안에 넣은 츄파츕스 마냥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본 것 같아. 뭐… ‘그냥’ 싫은 걸 수도 있고. 싫은데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현실은 그런 감정적인 언어로 버텨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지경에 까지 갔었어 내가 ㅎㅎ 뭐 만약 그게 맞다면 그게 너 다운 거겠지! 어딘가 현실적이고, 가끔 무딘 듯 하지만 단단한 너의 마음 가짐을 늘 존경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김애란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무언가로 인해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내 현실을 버텨낼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어. 소리 내어 울지 않아도, 말로 꺼내지 않아도, 뭔가 내 안에다 속삭이듯 이야기 하는 것 같고 되짚어보게 만들거든.
뭐 이런저런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알겠지만, 김애란 작가는 조곤조곤 이야기해. 슬픔이나 분노, 외로움을 그냥 막 들이밀지 않아. 대신 조용히 바라보고, 조심스레 말하고. 그래서 나한테는 오래 남아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이 편지는, 혹시나 네가 놓쳤을 수 있는 지점이나 보지 않으려 했던 그 조용한 세계에 대해 내 방식대로 알려주고 싶었어. 김애란의 문장이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단단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지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어. 그러니 이번만큼은 네가 싫어한다던 그 이름, 김애란을 잠시 같이 바라봐 주면 좋겠다 :)
요즘은 아이가 금세 자라는 걸 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 같은 걸 느낄 때가 있어. 그걸 놓치고 있었다는 것, 혹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는 후회 같은 게 밀려와서 말이지. 『바깥은 여름』을 다시 펼쳤을 때 그런 마음이 밀려왔어.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늘 반대의 풍경을 상상하게 해. 바깥이 여름이라면, 안은 겨울일 수밖에 없다는 뭐 그런? 사람들이 반소매를 입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누군가는 자기 안에 눈을 묻고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현실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 그 안과 밖의 시차에 대해 김애란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봐.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우리가 요즘 어떤 계절을 건너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여러 부침으로 인해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있는 동안 세상이 너무 성급하게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슬픈 사람은 빠르게 걷지 않는다고. 그건 멈춤이 아니라, 애도의 속도라고. 김애란은 누구보다 조용히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고, 그런 사람들의 속도를 이해하는 작가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자꾸만 '이제 괜찮지?'라고 묻는 순간에도 그 괜찮음이 가능하지 않은 이들의 내면을 천천히 꺼내 보여주는 게 느껴진달까.
그녀의 문장 속 인물들은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계속되니까. 나는 그런 문장들에 대해, 그리고 그 시차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 지금 건너고 있는 마음의 계절이 우리에게는 어디쯤 일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그렇다고 해서 늦은 것도 뒤처진 것도 아니라는 걸. 이 계절이 지날 때까지 조금 더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
혹시 『비행운』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목이 이쁘지 않니 ㅎㅎ 왠지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뭔가 날아오를 것 같고 :)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게 참 아이러니한 단어였구나 싶지. 날고 싶을수록 땅에 더 발이 묶이는 이야기들이랄까. 비행하려는 마음은 넘치는데 현실은 늘 불행 쪽으로 기운 채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이 소설집 안에는 누가 봐도 고단한 사람들이 잔뜩 나와. 체불임금 때문에 크레인에 오른 사람, 새벽 한 시에 재개발 건물 위에서 양수가 터진 임산부, 죽어서도 주인공의 꿈속에서 여전히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까지 누구 하나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 아니, 사실은 누구 하나 살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 「호텔 니약 따」
이 문장이 딱 이 단편소설의 얼굴이지 않을까 싶어. 나도 한때 그랬던 것 같았거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 뭐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는 게 자꾸 늪처럼 발을 붙드는 시기였구나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꺼낸 날도 있었고. 그런데 그걸 두고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어. 김애란 작가는 그런 상태에 지겨움이라는 단어를 붙여줬고, 나는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됐어. 아,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었으니까.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청춘이 지나가고 있다는 당황감에, 사는 게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고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된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거든.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 「서른」
이건 아마 우리들이 지나온 문장일지 몰라. 그래서였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겪어냈던 무수한 20대와 30대의 조각들이 떠올랐어.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비행운』의 인물들은 그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 안에서 버텨낸 것 같아. 부드러운 두부를 고르고 유기농 생리대를 써보고 겨우겨우 자신에게 예민한 선택을 해보면서. 그게 가능한 만큼의 기분을 사기 위해 애쓰면서.
그 태도가 나한텐 깊이 남았어. 내려앉은 무게 속에서도 그 사람들은 아주 작게 꿈꾸고, 사소하지만 더 나은 감각을 위해 살아보려는 게 느껴졌어. 그건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잡아야 할 태도라는 생각도 했고. 누가 보면 별거 아닌 고집인데 사실은 가장 간절한 생존 본능처럼 굳게 움켜쥔 선택이니까.
그래서 『비행운』이라는 이름은 결국 높이 날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 발끝으로 몸을 세우는 사람들의 이름이라 생각해. 그리고 그 버티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두근두근 내 인생』이 떠오르더라. 많이 들어봤을 거야. 가장 나이 든 아이와 가장 어린 부모의 이야기. 들으면 좀 우습지? 아이는 열일곱인데 조로증을 앓고 있어서 여든의 몸을 가지고 있고, 그 부모는 아이를 열일곱에 낳아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듯하면서도 어쩌면 같이 자라 가는 이야기거든.
이 소설은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같았어. 늙어버린 몸을 가진 아이가 세상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아픔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랑은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데 그래서 더 진심이었으니까.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 냈어요.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자고.”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던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난 다음에 그래도 뭔가를 하겠다고 고른 선택이 웃기기라니. 슬픔이 일상이 된 아이가 택한 전략이 즐겁게 하기라는 점이 기특하면서도 뭔가 짠했어. 지쳤다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분위기 살피느라 그저 웃고, 그래서 오히려 자꾸 속을 숨기게 되는 나 자신이 떠오르기도 했고.
아름이라는 아이는 그런 마음을 참 조심스럽게 드러내거든. 슬픔을 유머로 위장할 줄 아는 아이니까. 아름이는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까지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와 추억담을 담은 소설을 선물하고 싶어 해. 그게 진짜 생일날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도 끝까지 한 문장씩 써 내려가.
나는 그게 되게 인상적이었어. 삶을 이야기로 남기려는 의지,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려는 태도. 아름이의 감정은 더 이상 비극이나 병에 머물러 있지 않았어.
그림자 탓에 선명히 보이진 않았지만, 딱 봐도 ‘앳된’ 손이 분명했다. 사진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화소가 떨어지는 구식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했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오래된 질감이 오히려 정다운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아이의 한쪽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곤 어느 순간 모니터 위에 내 손을 가만히 갖다 댔다. 그러자 그 아이의 손과 내 손이 어렴풋이 포개졌다. 컴퓨터 열기 때문인지 액정 위로 온기가 전해졌다.
그 온기가 그저 모니터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야. 그건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미열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두근두근 내 인생』은 병과 죽음을 다루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 삶에 가까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해. 그게 참 김애란스럽다고 생각했지. 어떤 불운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고 어떤 기적도 무리하게 끌어오지 않으면서 그저 조용히 그 사람 안의 삶을 지켜보게 만드는 시선이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름이처럼 뭘 거창하게 바란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저 조금 웃고 조금 더 사랑하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어.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작가가 직접 자신의 삶을 풀어낸 산문집인데 그 제목부터가 좀 뭉근해지지 않니(나만 그런가). 잊히기 쉬운 이름일 수도 있고 잊는 편이 서로에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정말 잊을 수 있을까 싶어지는 이름들을 살면서 마주치게 되니까.
에세이라는 장르 때문일까. 여기에선 문장들이 다소 무방비하게 다가와. 이전에 만났던 소설 속 인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마음을 전했다면, 여기선 김애란이라는 사람이 직접 말을 걸어오고 그 안에 쌓여 있던 작은 감정의 알갱이들을 쪼르르 쏟아내는 느낌이야.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가득하거든.
고3 여름방학 때 나는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내 몸과 마음을 길러준 팔 할, 갈수록 뼈가 닳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 가는 그 팔 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 「나를 키운 팔 할은」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나 겪는 그 작은 이 할의 순간. 누군가의 커다란 기대를 외면하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순간.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확신은 없어도 그때의 나는 분명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결이 느껴졌지.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슬픔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는 마음도 다가오게 되고.
김애란은 그런 기억들을 애써 반짝이게 만들지도 않고 너무 오래 쥐고 있지도 않아. 다만 그때 거기, 어떤 표정과 어떤 숨결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식으로 기억을 꺼내 보여줘.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은 결국 누구를 위해 남기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 나를 위해서였을지 시절을 겪어낸 상대방을 위함이었을지,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게 이름을 부르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예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려봤어. 지금은 다 연락도 끊기고 사진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시절 나를 지탱해 주었거나 스쳐 지나감으로 인해 지금의 나로 만든 이름 들이었을 테니까.
결국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말은 반어법에 가까운 것 같아. 진짜 잊힐 이름이라면 굳이 그렇게 붙일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김애란은 그 말로 오히려 잊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있는 거겠지. 내가 건네받은 이름을 한 번쯤 더 불러보라고.
결국 김애란의 이야기는 소리를 내지 않아도 그저 거기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 크게 울리지 않아도 오래 남는 문장들, 서러움을 웃음으로 비틀고, 기억을 말없이 꺼내 보여주는 손짓 같은 글들.
『비행운』의 사람들처럼 발끝으로 버티고 『두근두근 내 인생』의 아름이처럼 웃으며 안간힘을 쓰고 『잊기 좋은 이름』의 작가 자신처럼 낮고 단단하게 말을 건네는 순간들.
그 모든 이야기가 말하진 않아도 느껴지는 울림으로 남았거든. 그래서 나는 생각해. 김애란이라는 작가는 결국 그런 사람이구나. 소리 없이도 아름다운, 슬픔을 안고도 환한, 그저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우리는 때때로 그런 존재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사랑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고.
여름을 향해 치닫는 날씨는 무덥고, 점심시간은 다가와 배는 고프고, 당장 오늘의 할 일과 내일의 두려움이 겁 없이 밀려오는 순간이네.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잘 기억하자.
조만간 볼 수 있길.
- 한진 형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