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여기, 스물일곱 살에 역대 최연소 임원이 된 청년이 있습니다. 해변가에는 멋진 집을 가지고 있고 회사에서는 차와 기사를 제공하는, 누구나 꿈꿔볼 만한 성공의 아이콘이 되었죠. 하지만 그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불안했죠.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을 하러 태국 밀림의 숲 속 사원으로 떠나죠. 17년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은 파란 눈의 스님이 됩니다. 그리고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서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그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책입니다. 201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02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전하고 싶었던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죠.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스웨덴 전역에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17년간의 수행으로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참 인상적입니다. 보통 생각하게 되는 깨달음이나 초월적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거든요.
그 말은 초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떠오르는 못된 생각에 휘둘리죠. 지나간 일에 매달리고, 오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에 사로잡히니까요.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고요한 밀림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한 것이라고요.
"우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 희한한 생각이 또 떠올랐군. 괜찮아. 어차피 난 그 생각을 놓아버릴 거니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 안에서 하루 종일 벌어지는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잠이 들지 않아 수면유도제를 삼키며 청한 밤을 지나 아침부터 시작되는 걱정, 주고받은 대화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되짚어보는 부정적인 생각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들 말이죠. 그동안 저는 이 모든 생각들이 곧 저 자신이라고 여겼는데 나티코는 그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고, 놓아버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난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어요. 당신도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군요.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군요. 난 이따금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해요. 당신도 그렇군요. 난 어떤 일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곤 해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그의 목소리는 다정합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성찰이나 닿을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로 함께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말투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들을 읽을 때면 마치 '그래, 나도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던 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 같습니다. 누구도 혼자 잘 견뎌야 한다고 채근하지 않죠.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말이죠.
푸와 피글렛이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는데요.
"토끼는 참 영리해."
"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
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
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
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봐."
이 짧은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지혜롭고 똑똑하며 모든 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삶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진실. 그 말이 결국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너무 많은 걸 책임지려 하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일침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늘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능력 있고 실수하지 않고 감정을 잘 다루며 두루 잘 지내는 사람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런 모습만을 고집하다 보면 내면의 아픔을 느끼는 일조차 서툴러지고, 결국엔 나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이며 스스로 초래한 고통입니다. 이 진리는 부처님의 무척 위대한 발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발달단계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자발적이고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책을 조금씩 읽어가며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지나간 실수를 되새기다 자책하며, 불확실한 내일 앞에 조바심으로 점철된 현재를 놓치기도 하잖아요. 그 많은 고통들이 실은 내가 내 안에서 끝없이 만들어낸 생각들 때문이었다는 걸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고통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아닐겁니다. 생로병사의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도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나티코가 말하는 건 그런 고통 위에 우리가 덧씌우는 불필요한 고통들, 그리고 그것이 그저 내가 만들어 낸 생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말합니다. 생각을 조금 덜 믿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요. 필요할 때는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이 가능하다고 말이죠. 그 연습이야말로 삶을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지혜라고요.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온갖 해석과 예측, 편견과 관념을 끌어와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듯 보이려 애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이름을 붙이고 예기치 못한 감정에도 설명을 덧붙이려 하죠.
어쩌면 그 모든 애씀의 바탕에는, 모르는 상태로 남아있음이 만드는 불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렇게 믿어버리죠.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모든 감정을 해석하며, 삶의 흐름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이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나티코는 그 반대를 말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모를 수 있고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죠.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진정한 현명함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며, 그저 담담히 살아내는 데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루게릭이라는 질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매 순간에 몰두하며 사람들에게 깊은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요. 우울한 생각이 몰려와도 늘 평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겸손함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지혜는 깊고 따뜻했으니까요.
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답을 주려 하기보다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심스레 전하고 싶습니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
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