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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열정이 다하고 - 비타 색빌웨스트

진정한 자유란

by 세잇

여기, 여든여덟에 삶에서 자유를 얻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읽으며 오래도록 이 질문이 머물렀습니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이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 앞에서 선언한 독립은 단순한 노년의 변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든여덟 해 동안 미뤄온, 아니 포기했다고 믿었던 꿈에 대한 마지막 용기였습니다.




"살아온 모든 나날들을 총합하면 그저 삶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삶에 대고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묻기는 부조리했다. 꼭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두고 던지는 질문 같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 나는 행복한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후회는 없는가 - 같은 질문들이 삶을 되돌아볼 때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 그저 삶을 살아냈기에 그것만으로 합당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로 들렸거든요.


비타 색빌웨스트는 1892년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당대의 엄격한 사회적 관념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용기 있는 여성이었어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는 그런 그녀가 1931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자신의 두 아들에게 헌정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끝내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는 것이 인생인지도 몰라’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레이디 슬레인의 선택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총리의 아내로서,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반항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억눌러온 자유로운 인간이길 바란 꿈, 온전한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열망에 대한 마지막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란 정확히 누구였을까? 그녀는 과거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늙은 여자로서 자문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아주 편안하고 아련한 심심풀이였지만 결코 멜랑콜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최후의 사치, 궁극적인 사치였다."


이 문장에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삶이란 늘 해야 할 일과 주어진 역할에 밀려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유예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그제야 사치처럼,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노년은 보통 쇠퇴의 시간, 잃어가는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그녀에게 노년은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탐구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습니다.



"노인의 삶이란, 경기를 마친 뒤 저녁 무렵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앞으로 경마 따윈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하는 기수의 삶이지요. 하지만 잊으신 것이 있네요, 벅트라우트 씨. 젊을 때는 위험하게 사는 걸 즐기면 즐겼지 – 사실 갈망하지요. – 저어하지는 않아요."


이 문장에서 레이디 슬레인의 마음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녀는 안락한 노년을 추구하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모험을 갈망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노년이 단지 조용하고 안정된 시기가 아니라, 삶의 열정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감정을 느끼기에는, 경쟁하고 앞지르고 승리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그들은 뒤로 물러나 서 마지막 미뉴에트를 추는 쪽이 좋았다."


젊음의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에 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마치 화려한 색채가 빠진 수채화 같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감정의 영역 말이죠.


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이 진정 놀라운 순간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젊음을 경험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느끼는 기쁨은 특히나 사적이었다. 예전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또렷하기보다는 뿌옇고, 강렬하지만 막연했다. 그래서 그 정체를 밝혀낼 능력도,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그저 흠뻑 취할 뿐이었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진정한 자유를 맛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삶을 다 살아낸 이가 감정을 새롭게 느끼는 순간으로, 뜨겁기보단 뿌옇고, 명확하기보단 막연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하고 또렷한 울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애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영역 같았습니다.



"죽음에 이토록 가까이 다가선 지금, 그녀는 또다시 자기 앞에 위험한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번에는 더 용감하게 직면하겠다고,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더 굳세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죽음 앞에서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레이디 슬레인의 모습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젊음은 나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에서 온다는 것.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레이디 슬레인의 절반쯤 되는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레이디 슬레인이 여든여덟의 나이에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색빌웨스트의 문장들은 노년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넘어섭니다. 늙는다는 것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열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종종 나이를 핑계로 꿈을 포기하곤 합니다. 이제 늦었다고,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제한하죠. 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은 그런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삶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고, 자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라는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레이디 슬레인은 새로운 열정을 발견합니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열정, 자유롭게 꿈꾸는 열정을 말이죠.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나이 듦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진정한 자유란

외적인 조건의 변화에 굴하지 않고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언제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야말로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겠죠.


여든여덟에 자유를 찾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이와 상관없이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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