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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브로크 - 진저 개프니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지만

by 세잇

상처로 가득한 공간을 마주하다

"처음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여느 목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말을 훈련하고 마주를 교육하는 건 지난 이십 년간 내 업이었다. 문제 있는 말에 얽힌 일화는 지겹도록 들었다. 잘 들어보면 이야기에 쏙 빼놓은 부분들이 있고, 말하는 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부분도 십중팔구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 - 한쪽 귀를 쫑긋거린다든가 숨이 가빠진다든가 하는 - 도 말이 소통하는 신호임을 안다.
마주들이 이런 미묘한 언어를 일찍이 알아챘더라면 안 좋은 경험들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요청은 달랐다. 말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말, 약탈하는 말, 피에 굶주린 말이라니.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했고, 진짜라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저 개프니의 『하프 브로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 조련사인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뉴멕시코의 대안교도소 목장에서 문제행동을 일삼는 말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을 공격하고, 피에 굶주린 말들이라니. 20년간 말과 함께 살아온 그녀에게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목장에 도착한 개프니가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풍경이었습니다. 말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들을 돌보는 재소자들 역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목장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상처들이 공명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말(言)을 잃고 말(馬)을 얻다

개프니는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습니다. 여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혼자 방에 있을 때조차 침묵을 택했죠.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무언의 상태로 살기를 택했다. 심지어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조차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잠잠한 공간에서 살았고, 거기서는 침묵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 나에게 언어는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가지는 의미-자신을 표현하는 힘-가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힘도 아니었다. 나에게 언어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과 같았다"


그녀에게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어요. 동물의 언어, 특히 말의 언어를요. 귀를 쫑긋거리는 작은 움직임, 가빠지는 숨소리, 눈빛의 변화까지. 인간의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마법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말들과 재소자들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었을 거예요.


"어떤 재소자들은 작위적인 자신감으로 위장한 채 움직인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팀원들에게 버럭버럭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반대로 몸에 생기라고는 한 방울도 안 남은 것 같은 이들도 있다. 암초에 딱 붙어사는 조그만 해양생물처럼, 물컹물컹한 무정형의 몸이다.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는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다. 모든 걸 숨김없이 드러낸다. 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가난에, 가족사에, 그리고 교정 시스템에 얻어맞은 거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매일같이 그 고통을 말들에게 전하며 목장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가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말을 조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과 돌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만든 기적

목장에서 개프니가 만난 '토니'라는 재소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마흔다섯 살의 그는 '윌리'라는 말을 돌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있잖아요, 진저,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흔다섯 살인데 이제야 나 말고 다른 일에 마음 쓰는 법을 배우네요. 남을 보살피는 법 말이에요. 윌리 덕분에 배우는 셈이죠. 나를 믿어줬거든요.
있죠, 이 녀석이 나를 믿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무도 나를 안 믿어주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랬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토니. 하지만 윌리는 그를 믿어주었고, 그 믿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존재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목격한 기적의 본질이었을 것입니다.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며 치유되는 과정. 말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상처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된 그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을 이해해 갔습니다.



진정한 소통, 마음에 귀 기울이기

개프니의 스승이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린 그릇이 되려고 해 봐.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말들도 제 마음을 더 전하려고 할 거야."


이걸 들으며 개프니는 파도타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파도와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타듯, 말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것.


열린 그릇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선입견과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마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프니는 말들과 재소자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죠.



변할 수 있다는 믿음

개프니는 목장에서 '루나'라는 말을 만납니다. 고립되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루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고 고백합니다.


"지난 일 년간 나는 루나에게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루나의 고립, 아무도 믿지 못하는 태도, 이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모습. 그런 모습에서 외롭고 은둔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루나는 변했습니다. 한때 사나운 짐승에 버금갔던 루나가 이제는 푹신한 동물인형과 더 닮은 모습으로 원형 마장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개프니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도 루나처럼 더 온화한 존재로 변했을까? 마침내 남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어딘가에 속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는 깊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할 수 있다는 믿음. 상처받은 존재도, 외로운 존재도, 시간과 관계를 통해 더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에요.



작은 구원이 모여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개프니는 일라이라는, 교도소에서 목장으로 이소 하려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한 번에 하나씩요."


이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거창한 구원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생명을 구하는 일. 한 마리의 말을, 한 사람의 재소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 그렇게 작은 구원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온 걸 겁니다.


개프니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 것이겠죠. 말들과 재소자들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했으니까요. 이로서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 갇혀 살던 그녀는 다른 존재들과 진정한 연결을 맺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프 브로크입니다

'하프 브로크'는 말 조련사들이 쓰는 은어입니다. 반만 길들여진 말, 아직 미완성인 존재를 뜻하죠.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히 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프 브로크죠.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관계를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개프니가 목장에서 만난 말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다른 이를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며 믿어주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더 온화한 존재로 변해갈 수 있어요.



결국 『하프 브로크』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그 불완전함을 통해 연결되는 법을 배워가는 일일 겁니다.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지만

함께라면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개프니가 목장을 떠나며 마주한 현실처럼

삶에서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내 곁의 누군가는

울타리를 벗어나 떠날 것이고

나 또한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겠죠.


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

서로를 돌보며 주고받은 마음과 신뢰는

오롯이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조금 더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겁니다.



어쩌면 삶이란

완전해지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보듬고

서툴게나마 손길을 건네며

조금씩 함께 변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프 브로크' 겠지만

서로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온화해진 존재로

조금씩, 서서히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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