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요양원 입소
얼마 전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았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노인들을 위한 E.T' 와도 같은 내용으로, 세 명의 노인들이 의기투합해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 외계인을 돕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밀턴은 77세로 비교적 건강한 편임에도 이 과정에서 딸의 눈에 치매 환자로 비치게 되고 딸은
즉시 요양원(영어로는 Assisted Living 또는 Board & Care) 입소를 추진한다.
(더 이상의 스포를 안 하기 위해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영화라서 물론 드라마틱하게 그려야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도 노인이 주인공일
경우 약간의 사고가 나면 성인 자녀들은 심각한 얼굴로 요양원 입소를 추진하고 마음의 준비가 안된
부모는 자녀들과 단절하게 되는 것이 스토리 라인이다.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노인들에게서 약간의 이상 징후만 발견되면 요양원을 가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경향은 현장에서도 내가 너무나 자주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시니어 하우징의 경우, 음식을 가스레인지에서 조리하다가 태워서 스모크 알람(smoke alarm)이 울리는 일이 생기면 매니지먼트에서 경고문을 발부한다. 이 경우 자녀들이 알게 되면 내게 전화해서 바로 요양원 입소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가스레인지 손잡이에 커버를 씌우기,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기, 식사 배달 서비스 이용 등을 먼저 권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위와 같은 안전 조처에다 간병인 방문을 통해 조리와 투약 등의 도움을 받으면 대개의 경우 별 탈없이 지내실 수가 있다.
노인들이 뭔가 잊거나 실수를 하면 모두가 치매라고 먼저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의 경우 정신적 충격이나 일의 과부하로 인해 잊기도 하고, 새로 받은 처방약이 졸음 등을 유발해서 기억이 명료해지지 않기도 하고, 또는 우울증이 심하거나 갑상선 이상으로 자꾸 잊어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치매라고 생각이 된다면 먼저 신경과 전문의 (Neurologist)를 만나서 검사와 상담을 받아본 후
향후 계획을 세워도 늦지 않다. 일련의 사건 하나를 놓고 '치매니까 요양원 입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면 빈대 하나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아툴 가완디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그간의 필드에서의 경험이 크다. 개인의 고유성과 개성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믿게 된 나는
요양원 입소는 마지막에 써야 하는 카드라고 생각한다.
주민 중에서 잊지 못하는 Mr. R. 그는 화가이자 작가였다. 괴팍하지만 사랑스러운 면이 있었던 그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직후, 담당의는 내게 직접 전화해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그림에 둘러싸인 자신의 방에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놀랍게도 뉴욕에 사는 전부인이 퇴원에 맞춰 그를 방문해 그의 침실을 병실처럼 완전히 개조를 해주고
24시간 케어를 위해, 간호사들이 3교대로 올 수 있게 조처해 주었다. 그녀는 내게 사적인 감정은 잊고
그의 방식대로 보내주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두 달 후 그는 좋아하는 바르톡의 음악을 들으며 떠났다.
한편 자신과 잘 맞는 요양 시설을 찾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떻게 늙을까>의 저자 다이애너 애실은 본인과 잘 맞는 올드 피플의 집 (Old people's Home :그녀가 붙인 별명)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10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혼자 지내는 삶 대신, 스태프에게 일상의 도움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는 요양원에 가게 된 것이 또 다른 해방이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 맞는 요양원을 찾아 여러 가지 일상적인 일들에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속단해서 요양원 입소를 했다가 다시 그 전의 생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기에, 심사숙고해서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본 후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경우에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