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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24. 2022

미술학원 가서 배워?

그림을 그리다


한동안 혼자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 시간을 즐겁게 보낼 친구가 생긴 기쁨이 컸다. '서울 풍경 스케치' 수업에 참여할 때는 매주 함께 그림 그릴 곳을 돌아보고 1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 컸다. 실제 풍경을 보면서 그림을 그릴 때가 제일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가장 아쉬운 점이다. 자연 풍광 속을 걸어 들어가 스케치하는 즐거움. 지금도 그때 기억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혼자 그림 연습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찍어 집에 와서 그리게 된다. 함께 우르르 몰려가서 각자 그리고 싶은 곳 아무 데나 털썩 엉덩이 깔고 앉아 그림을 그리던 배짱이 사라졌다. 혼자는 왠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와 집에서 그리려니 그림 그리는 맛이 떨어진다. 콧등을 스르륵 지나가는 바람의 감촉이 그림에 담기는 맛이 좋았다. 햇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앉아 그림을 그릴 때 등에서 또르르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순간 쾌감 있었다. 1시간 훌쩍 언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게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내 존재를 잊은 시간이 달콤했다. 아마도 그 순간순간 느낀 즐거움이 스케치 안에 함께 그려져 있을 거다.



유튜브나 인터넷에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수채화 그림이 있으면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가 따라 그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는 사람마다 선의 느낌, 색채 사용이 각기 달라 따라 그리면서 배운다. 예전 글을 쓸 때 글을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줄 한 줄 따라 쓸 때 느낌이 아주 달랐다. 신기하게도 필사를 하면 작가가 글을 쓰면서 어떤 느낌과 생각이었을지 마음으로 전해진다. 글 행간 사이에 숨겨진 느낌과 의도가 따라 쓰는 동안 되살아나 내 손끝으로 전해진다고 할까?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과 한발 한발 걸어서 산책할 때 동네 정취, 냄새, 길 가는 사람들 표정에서 전해지는 분위기를 다르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림 따라 그리기를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스케치 선은 그린 사람의 성향과 성격, 취향을 담고 있어 보인다. 따라 그리면서 부러운 스케치 선을 발견했다. 스케치 선이 가늘고 부슬 부슬해 그리는 대상을 자세히 그리지 않고 슥슥 생략하고 그리는데 형태감이 표현되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한다. 디테일을 모두 날려버린, 무심한 듯 그린 선 몇이 그림의 전부인데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그리고 있는 그림. 그러고 보니 욕심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따라 그리면서 눈 만 높아진 게다. 처음에는 되든 안 되든 내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재미와 즐거움이 가슴을 뛰게 했다. 다른 사람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니 그대로 따라 그리는 기술은 좋아지는데 내 그림 실력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져 답답함이 느껴진다. 더 잘 그리려면 미술 학원에 다녀야 할까? 그림 그리는 목적이 잘 그리고 싶은 욕심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다.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으면 실력이 향상될까? 혼자 뭘 할 때 늘 부딪히는 고민이다. 유튜브에 그림 그리기 관련 영상이 정말 많다. 그리고 싶은 대상을 검색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케치, 채색 과정 모두를 배울 수 있다. 그것도 무한 반복 재생이 가능하고 언제든 끊고 다시 되돌려 볼 수 있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모든 정보가 유튜브 안에 있다. 감사하게도 그것도 무료로 제공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미술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 잘 그리고 싶은데 실력이 느는 느낌이 덜 하니 돈 주고 미술 학원 가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돈 내고 미술 학원 가도 혼자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할 텐데 말이다. 자연스럽게 그림 실력, 글 쓰는 실력이 어떻게 향상되는지 생각해 본다. 꾸준히 그리고 쓰는 일만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 남이 밥을 먹여줄 수 없다. 내가 내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며 꼭꼭 씹어 소화해야 한다.


실력 향상을 위해 좀 더 디테일하게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휘리릭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는 즐거움이 초보 시절 때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이다. 조금 더 욕심이 생긴다면 풍경을 사물을 오래 관찰해 디테일을 어떻게 살려 표현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그림도 더 자세히 관찰한다. 자세히 뜯어보고 그림을 그린 사람이 디테일을 살린 부분이 어딘지 보고 배운다. 미술 학원을 다니는 건 땅기지 않고 그림 그릴 줄 아는 멘토 한 분이 있으면 좋겠다. 그림의 방향에 대해 안내해 주고 내 틀에 갇혀 사물을 계속 똑같이 표현하고 있다면 깨줄 사람이 필요하다. 예쁘게 잘 그리려고 다른 사람의 그림을 모방하려 할 때 자신의 스타일이 얼마나 매력 있는지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줄 멘토가 필요하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좋다. 그림의 기교와 기술보다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 여전히 즐겁고 가슴 설레면 더 좋겠다. 누구한테 보여줄 필요 없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실패 간에 우울할 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족하다. 남에게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릴 들으면 뭐 할 것이며 남과 비교해 못 그린다는 자책에 휩싸여 더 이상 그리길 포기한다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그림 그리기를 나만 만나 속닥속닥 수다 떨 단짝 친구로 숨겨 두고 싶다.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번개 쳐서 함께 산책할 수 있는 내 친구로 오래 기억하고 싶다. 미술학원 가서 배울까? 했던 고민은 이렇게 바꾸기로 했다. 함께 그릴 사람들이 필요하고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가 철퍼덕 앉아서 그릴 모임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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