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마케터의 <프리 프로젝트>를 마치며.
2021년도 4월.
모두들 뜯어말리던 이직 없는 퇴사를 한 후, 8개월이 지났다.
이 사람은 8개월 동안 무엇을 탐구하였고, 무엇을 얻게 되었을까.
원하는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을까. 불안하고 힘들진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 있게 들고 온다던 12월의 결말은 어떻게 내렸을까.
뭐..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있으니
지금부터 자세하게 써보겠다.
퇴사를 할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이러했다. 마케팅의 올라운드를 다 할 줄 아는데, 정작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지? 마케팅을 전공하며 마케터로 사회에 발을 들인 후, 5년 반 동안 끊임없이 마케팅 직군 내에서 여러 일을 경험했다. 퍼포먼스 마케팅, 미디어 플래닝, 광고기획,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 각 업무를 맡을 때마다 나의 상사와 동료들은 내게 그 일이 천직이라고 했다. 분명 업이 다 달랐음에도 말이다. 감사하고 운이 좋게도 맡은 일에 대한 성과가 늘 좋았고, 꽤나 몰입해서 그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돌덩이가 속에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묵직한 문제들이 나를 눌렀는데, 그것은 내가 일을 하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의 방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하고 있는 일에서 굳이 내려 공백기를 갖겠다고 하는 후배나 동생을 본다면 나라도 그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고민해. 나가지 말고. 고민 없이 늘 만족스럽게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하고 있는 일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나의 길이 보일 것 같았다. 대신 기간을 정해두고.
기간을 정해두는 것은 꼭 필요했다. 그래야 그 안에서 치열하게 답을 찾고자 더 노력할 것이고, 이후에는 찾은 방향대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8개월의 갭이어를 두었다. 봄에 퇴사를 한 후, 한 해가 다 가기 전에는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해놓길 바랬다. 하고 싶은 방향을 정한다면 그에 맞는 사업자를 내고 창업을 하던,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길 바랬다.
어차피 평생 어떤 일을 해나갈꺼라면, 8개월의 재정비 시간을 나게 주는 것은 그렇게 큰 투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고 싶은지, 좋아하고 잘하면서 세상이 필요로 해서 돈이 되는 일의 가운데는 무엇인지 (이키가이), 오로지 나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움직여보는 나만의 8개월 프로젝트를 벌인 셈이었다.
기간 : 2021년 동안 무소속으로 지내기 (2021.04 ~ 2021.12)
네이밍 : 앤가은의 프리프로젝트, <잠시 집으로 출근하겠습니다>
목적 : 10년, 20년 후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일의 방향성을 찾기
과정 : 다양한 제작 프로젝트와 마케팅 프로젝트, 개인 창작을 통해 정체성 탐구하기
결과 : 12월에 방향성에 맞는 사업을 시작하거나, 방향성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결정하기
갭이어(Gap year)의 사전적 정의는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한 후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그냥 쉬기 위해서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는 '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에 대한 경험 없이 어떤 일을 하겠다고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갑자기 수익이 끊긴다면 누구나 당황스럽고 불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반은 외주로 내가 잘해왔던 일로 돈을 벌고, 반은 내가 그간 해보고 싶었던 일을 벌리기로 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통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하면 일이 없어 고민인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들어오는 일 조차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받았고, 궁금해했던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선명한 기준이 있으니 일이 있으나 없으나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어디서나 일을 받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열어두니 오히려 색다른 제안들이 많이 다가와주었다.
1. 퇴사 직후, 당분간 프리랜서로 지내겠다고 공표함과 동시에 그간 내가 해왔던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을 정리한 노션 페이지를 오픈했다. 프로젝트를 의뢰할 수 있도록 상세한 이력과 어떤 일에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지도 명료화해두었고, 프로젝트 TF를 구하는 글도 함께 올려두었다. 8개월의 기간 동안 약 2,300명의 사람들이 해당 페이지에 방문했고 다양한 협업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다.
2. 기존에 프리워커, 개인 사업으로, 개인 창작으로 자신만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찾아갔고, 자문을 구했고, 디깅했다. 영상 인터뷰로 기록물을 계속 남기려 했으나, 10년 차 프리랜서 다혜님 인터뷰를 한편 만들어보니 공수가 너무 많이 들어 한편을 끝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끊임없이 리뷰와 기록을 남겼다. (프리 낫 프리 다혜님 인터뷰) 이 기간 동안 나를 만나주고 귀한 시간을 내어준 분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했다. 만날 때마다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나도 새로운 영감과 사고의 확장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기준으로 나의 방향성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나도 누군가가 내게 이런 요청을 한다면 기꺼이 내어줄 거다. 누군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3. 나는 디지털마케팅의 강점이 있지만, 브랜디드 콘텐츠 기획과 제작에 목마름이 있었고, 기존에 하던 광고 제작에서 더 확장된 일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퇴사 직전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영화제작자분과 팀을 이뤄 웹드라마 제작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받았고, 남은 시간에는 개인 창작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했다. 광고회사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영화제작자, 예능작가, 엔터사대표님, 드라마 제작감독님과 함께 팀을 이루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새로움의 연속이었고 이 일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게 만드는 물꼬가 되어 주었다. 감사하게도 초반에 참여했던 이 웹드라마는 12월 16일 티빙에서 웹 영화로 공개 예정이다.
4. 디지털 마케팅에 관한 외주는 사실 계속해서 들어왔고, 항상 팀장님들을 대동해서 갔던 미팅 자리에 홀로 서서 클라이언트를 상대하고 컨설팅을 하고 리포트를 주고 인사이트를 나누고 강의를 하며 돌아다녔다. 처음엔 떨리고, 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5-6년간 쌓은 내공과 인사이트는 창창한 실무자들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자료들이었고, 이 일을 하면서 나는 5년간 쌓아온 디지털 마케팅의 A to Z를 정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와서 알게 된 사실은, 직장인보다 프리랜서가 몸값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높은 퀄리티의 업무를 기존 에이전시보다 낮은 가격으로 진행할 수 있고,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직장인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니 이건 완벽한 win-win 구조다. 정말 프리를 위한 에이전트들이 많아져야 하는 시점이다.
5. 나오자마자 30명 정도의 프리랜서 모임 (월간 프리)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다양한 루트로 일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했다. 그 속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섞이며 벌릴 수 있었고, 이 안에서 만난 분들에게 또 다양한 제안을 받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월마다 하는 정기 프리랜서 모임이었지만, 나와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는 홀로 일하는 사람 같지만, 절대 홀로 일할 수는 없다. 정신적, 물리적, 업무적 연대와 지지가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이 시장이라는 것을 이들과 함께 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8개월간 가장 집중하며 재미를 느꼈던 것은 바로 내가 벌리는 프로젝트였다.
갭이어 기간 동안 당신이 실컷 해야 하는 것은 '기존의 일'이 아니다.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기존 일을 하러 갭이어를 갖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목적은 다를 수 있지만,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건 정말 회사에서 해도 되는 것이다. 그 일을 너무 사랑해서 홀로 서려고 했다면 나오자마자 그 일을 하는 회사를 차리면 될 일이다. 대신 이건 갭이어가 아니라 창업이다. 창업. 그치만 '갭이어'는 '방향성'을 찾는 실험이기 때문에 기존 일과 다른, 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내가 갭이어 동안 하고 싶던 일은 이러했다.
1. 나만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으로 퍼스널브랜딩하기
2. 스몰 브랜드를 가볍게라도 만들어보기
3. 크리에이터와 창작자로의 주제와 결을 찾기
4. 오랫동안 하고 싶은 업의 방향성을 찾기
5. 나의 비전과 미션을 새롭게 정의하고 30대에 집중해야 할 일을 찾는 것
위의 내용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고 얻은 인사이트를 미디어에 기록하는 것이었다. 방대하게 늘어난 시간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나는 기록에 습관을 들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1. 월마다 열리는 건강한 기록 체력을 기르는 프로그램 : 건강한 기록 체력을 키우는 뉴미디어 기록 클럽을 3달간 운영했다. 평일 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미디어에 자신이 하루에 얻은 영감,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기록하고 나누는 모임이다. 이곳에는 카피라이터, 에디터, 마케터, 제작자, PD, 프리워커,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일한 관심사를 갖고 들어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모임이었다. 정원 20명에 월 1만의 참가비가 있었고, 나는 이 모임을 운영하는 운영장으로 평일 매일 푸시메세지를 보내는 역할을 하며 다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들은 나의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었다. 돈을 벌면서, 누군가의 인사이트를 얻으면서, 클럽을 운영하면서, 나의 창작과 기록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넥스트에 집중하고 있어 중단되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모임을 운영 해나가 보고 싶다. 연대로 살아나는 창작의 열정과 인사이트를 나눌 수 있는 모임!
2. 매주 금요일 찾아가는 에세이 뉴스레터 <앤가은 일과집> :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집에서 일하고 일과를 보내는 순간들을 담은 나의 짧은 에세이집이다. 매주 한편씩 보내드리는 조건으로 나는 구독료 대신에 독자들에게 답장 한 번을 받기로 했고 10월 한 달간 시범 운영을 하였다. 얼마나 읽어주겠어 했지만 구독자가 300여 명 가까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벌린 것은 책을 한편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수려하게 잘 쓰는 작가가 아니지만, 꾸준히 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글을 봐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서 나는 인생에서 해결하고 싶던 숙제들이 하나 둘 해결되었고, 금요일마다 발송 버튼을 누르기 전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답장이 띠링띠링 도착할 때마다 나를 응원하고 공감해주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독자들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아 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일을 하고 싶구나. 이렇게 연대하고, 서로 응원해주고, 내 창작물을 봐주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창작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할 때까지만 해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뉴스레터를 보내고 서로 소통하며 공감을 얻는 순간 나는 굳이 책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언제고 다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인생의 숙제를 풀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일과집>을 구독해준 독자들 덕분이다. 정말로 감사하다. 2022년도에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3. 홈오피스 1.zip 만들기 : 자신만의 키워드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는 항상 나만의 키워드가 없는 사람 같았는데, 갭이어를 통해 추가로 얻은 키워드들은 '홈, 집, 루틴'이라고 볼 수 있다. 홀로 일하기 위해서는 작업실이 필요했고, 홈오피스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택했다. 일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콘텐츠에 대한 영감과 자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집을 꾸미면서, 나의 취향과 새로운 공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의 집 메인에도 소개가 되면서 관련 브랜드들과 협업과 콜라보, 협찬과 브랜디드 콘텐츠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외주 일, 내 창작과 영상, 방향성을 확립하며 책도 읽고, 사랑스러운 응구와도 많이 놀며 쉴 수 있었다. (오늘의 집에 소개된 나의 홈오피스)
단순히 홈오피스를 꾸미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는 이 집을 콘텐츠 스튜디오처럼 만들어서 활용하기로 했는데, 처음 이 생각을 갖고 시작한 커뮤니티 브랜드가 바로 1.zip 이었다. 디자이너 친구와 같이 홈워커들을 위해 영감을 주는 아이템들을 소개하고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인물들을 담으려 했지만, 벌리고 있는 일들이 많아 잠정적 홀딩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친구와 여러 메시지를 뽑고 이 홈오피스를 콘텐츠 스튜디오로 탄생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서, 추 후 언젠가 다시 추진력을 얻게 된다면 이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연재하는 것으로...! 투비 컨티뉴...
4. 필름에세이스트 앤이웨이 (유튜브) : 내게 새로운 콘텐츠 제작자의 길을 열어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유튜브였다. 개인 영상을 올리며 브랜디드 콘텐츠 제작자로의 확장을 했고, 실제로 디지털마케팅에서 광고 기획제작자로 직무를 옮기기도 했었다. 회사 업무에 집중하면서 유튜브는 멈췄었지만, 퇴사 이후 8개월의 갭이어 동안 프리워커 라이프를 연재해보겠다며 호기롭게 다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현재 약 1,000명 가까운 구독자들이 모였다. 앤이웨이 유튜브 / 차가은 유튜브
하지만... 외주가 우선순위가 되고 나서는 2주에 한 개의 영상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고, 나의 게으름과 꾸준하지 못함에 실망하는 날들도 많았다. 그치만, 나는 유튜버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떤 순간이든 내게 영감을 준 생각, 사람, 물건, 대화들을 기록하고 담아내는 것이 좋았던 것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글과 좋은 장면을 담아내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러니 업로드 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내가 맡은 브랜드,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경험한 하루, 소개해주고 싶은 스몰 브랜드를 담는 필름에세이스트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프리기간 중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필름에세이스트 앤이웨이입니다. 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아닐까..!
5. 나의 5년간의 초년 일기를 엮은 독립출판 : 아직도 편집 중인 나의 초년일기 독립출판물. 앞만 보며 일을 하다 억지로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나에겐 나의 5-6년의 커리어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느꼈다. 서울로 상경해서 첫 직장을 잡고, 하우스메이트 언니들과 새로운 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떨리던 순간부터, 권태로움을 느끼며 새로운 일을 마구 펼쳐나가던 나의 5년. 업무적 스킬 셋을 정리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것을 위해 노력했으며, 얼마나 많은 희노애락이 회사생활에 담겨 있었는지를 정리한 나의 초년일기 에세이을 만들었다. 간략하게 아래 브런치 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다음 5년의 일과 삶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5년마다 책을 내야겠다. 그때만 쓸 수 있는 생각과 감정과 글이 있는 법이니까!
6. 오디오북/오디오 드라마/오디오 콘텐츠 프로젝트 : 이것은 앤가은 일과집 에세이 레터를 보내면서 역으로 제안받아 생긴 프로젝트이다. 에세이 레터를 받는 독자분들 중에는 출판사 분들도 계셨는데, 내용이 상당히 드라마 대본 같아서 오디오북과 오디오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다가 목소리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심심찮게 성우로 수익을 내는 일도 해볼 수 있었다. 나만의 프로젝트가 ->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재능이 되고 -> 그렇게 계속해서 연결되어 가는 구조를 경험할 수 있어서 아주 감사했던 일들. 자세한 내용은 이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_v7_HHwwQk)
7. 스몰 브랜드와 함께하는 공간 콘텐츠 프로그램 : 사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시청자나 청취자를 위한 웹프로그램을 만든다던가, 스몰 브랜드를 돕기 위한 공간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기획은 2019년 작은 카페 브랜딩을 위한 스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는데, 막상 이 일을 크게 벌려보지 못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하고 있던 일들이 많아서 크게 일을 벌리는 대신, 나는 작은 브랜드들에 먼저 컨택하여 직접 공간 콘텐츠를 만들어드렸다. 이 브랜드 프로그램 기획은 최근 만난 PD님과 좀 더 디밸롭 시켜보기로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주제 중 하나로 남게 되겠지만, 어쩌면 넥스트 스텝을 밟으며 함께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고 실행할 나의 프로젝트 1순위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내가 미치지 않고 현명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미쳐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기한을 정해두니 여러 일을 경험하려다 망한 것도 있고, 새롭게 시작한 것도 있고, 그 속에서 얻고 깨달은 것도 참 많았구나 싶다. 그래서 일도 중요하고, 창작도 중요하지만. 이 기간에는 추진력을 얻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적당한 일과 풍부한 휴식을 놓치면 안 된다..!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다행히도 나에게는 응구라는 실외배변견이 있었고. 오전마다 응구와 산책을 나가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시간을 기록했고, 기록을 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시간대와 떨어지는 시간대를 보고 쉬었다. 나는 아침 7시에는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나면, 오전에는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오후 3시쯤 그날 하려던 일을 마무리 짓고 나면 가까운 동네에 있는 작가님 집에 놀러 간다던가, 성수동으로 투어를 간다던가, 새로 생긴 팝업 스토어 전시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뺀질나게 찾아다녔던 것 같다.
프리의 장점은 낮에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니까. 이 기간엔 꼭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프리랜서들은 밤낮으로 일하기 바쁘다. 명심해야 한다. 낮에 한가롭게 다닐 여유 같은 게 잘 없다. 나는 체험형 인턴 같은 것이었으니 조금은 더 여유가 있었다고 봐도 좋다. 나만의 루틴을 갖고 나서부터는 쉼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일이 없다면 편히 쉬어라. 놀아라. 제발 놀아라. 그 시간도 일을 위해 나를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 자고, 잘 먹고,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끼고 살면서 원 없이 콘텐츠도 다 봤다. 새로 나온 책들도 일부로 서점에 가서 여유롭게 보고, 산책을 갔다가, 좋은 곳을 돌아다니며 행복한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8개월쯤 이러고 나면 몰입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른다.
영영 안 생길 줄 알았는데 정말 생기더라.
그러니 부디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이 기간 동안 나는 자신을 탐구하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 찾아봤다. 유튜브에 원하는 일 찾는 법,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을 다 찾아서 보고, 자기계발 유튜브 재생목록이 끝날 때까지 찾아본 것 같다. PDF도 결제해서 보고, 강의도 들으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은 바로 'be note'쓰기.
내 책상 옆에는 be note가 있다. 이 이름은 내가 만든 것이지만, 유명 해외 기업 회장이 썼던 방식이라는 영상을 보고 써본 것이다. be note에는 아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아주 디테일하게, 그리고 감정과 감각을 실어서, 상상을 하면서 답을 써두었고 매일 아침마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해 나갈 예정인데, 정말 놀랍게도 여기 써져있는 20%를 이 8개월 기간 동안에 이룰 수 있었다.
<be note 쓰기>
*당신은 5년, 10년 뒤에 어떻게 되어 있고 싶은가?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경험해보고 싶은가?
*당신이 현재 닮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의 어떤 라이프를 닮고 싶은가?
*당신이 늘 유지하고 싶은 몸의 상태, 건강, 감정은 어떤 것들인가?
*당신이 얻고 싶은 직무와 직업적 타이틀은 무엇인가?
*당신이 이루고 얻고 싶은 부의 크기는 어떻게 되는가? 어떤 것을 소유하고 싶은가?
*위에 써둔 것들을 왜 이루고 싶은가? 아주 솔직하게
*당신이 위에 써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이 어떻다고 믿어야 하는가?
핵심은 내가 정말 여기 써둔 것들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말 이 문장에 써둔 대로 하나 둘 일과 삶이 바뀌기 시작했고, 결국 원하는 삶의 모양대로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여기 써져있는 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야말로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 아닐까.
나를 탐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be note는 그냥 적어지진 않는다. 다양한 사람과 물건과 공간과 책과 경험을 하면서 내면에서 꿈틀거리며 원하는 장면들 모습들 사람들의 라이프를 새겨두어야만 강력한 문장이 완성될 수 있다. 처음에 막막할 순 있어도, 하나 둘 수정해서 고쳐나가다 보면 내가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한 장의 노트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다 작성했다면, 이제 이걸 이루기 위해 하나 둘 다음 스텝을 밟으면 된다. 이때부터는 명쾌하고 명료하게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뤄가는 삶을 살면 된다. 내가 이 기간 동안 건강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써둔 나의 be note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향성을 찾았다면,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8개월을 나를 돌아보고 탐구하고, 원하던 일을 경험하고 시도하고,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다른 환경에 나를 놓고, 시간을 다르게 써보면서 나만의 방향성을 찾았다.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 나는 꾸준히 글과 장면을 담는 필름에세이스트로 살고 싶다.
* 내가 만든 창작물로 대중과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다.
* 브랜드를 돕는 스토리텔러이자 콘텐츠기획자 나아가 브랜드 디렉터가 되고 싶다.
* 내가 경험한 것들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
* 5년 뒤에는 내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서비스/제품/공간/리빙/콘텐츠로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다.
* 뉴미디어에 꾸준히 기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연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 그래서 자연적으로 부가 따라오는 삶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4월에 회사를 나올 때, 결심했던 것은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하자는 것이었다. 프리랜서로 이미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냐는 주위에 질문에는 애초에 나와 약속한 계획이 이렇다고 설명했다. 나아진 것들은 있지만, 내가 세운 방향대로라면 여기서 자유인의 생활은 멈추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 시점이 맞았다. 내가 세운 방향성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이 문장들이 나의 다음 스텝을 명확하게 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걸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내게 필요한지, 어떤 일들 더 쌓고 커리어를 만들어야 되는지.
그래서 이 방향성에 맞는 조직을 골랐고, 감사하게도 내년부터는 함께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나의 5년은 꾸준히 내가 세운 나의 정체성을 가져가면서도 프리워커에서 프로워커로 성장하는 시간들이 될 것 같다. 5년 사이에는 또 어떤 얘기들이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행여 중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해도, 이 선택이 맞지 않다고 하도 뭐 어떤가. 우리 삶은 여기서 끝이 아니니 노선을 수정해서 가면 그 뿐이다. 그저 한걸음씩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으로 가기 위해 오늘도 나아가면 되는것이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갭이어는 2021 버전으로 막을 내린다. 언젠가 내가 다시 흔들리고, 나를 찾아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이 시기의 기록물을 들춰보면서 나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갭이어 기간 동안 정리한 초년의 페이지는 이제 덮고, 나는 새로운 여정으로 또 한 걸음씩 가보겠다. 그간 나의 기록물을 따스하게 봐준 이들에게도 모두 감사함을 전한다.
고마웠어. 나의 8개월!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