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해수욕하기
8월의 제주. 폭염 문자가 하루에 몇 번씩 울린다. 서울도 덥지만, 섬의 특성상 습도가 높고 태양의 열기가 무자비하다. 매년 여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에 오는데, 이번 여행을 앞두고 괜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켜니 작동이 되지 않았다. 오래되기도 했고 청소 같은 관리를 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미리 세심하게 점검하지 않은 내 탓이 컸다. 완전히 망가진 에어컨을 교체하는데 4~5일 걸린다고 했다. 우선 더워서 금방 쓰러지실 것 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한 엄마를 호텔에 모셨다. 요즘 제주가 휴가지로 인기가 떨어지는 추세라 방이 있어 다행이었다. 냉방이 되어있는 호텔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평온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에어컨이 없어도 집이 좋다고 문명의 도움을 받지 않고 더위를 이겨냈다. 아. 잘 돌아가는 선풍기 두 대를 이용했으니 아주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제주에 사는 친구는 바다 수영이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집 근처에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쬐는 곳)이 있는 바닷가가 생각났다. 내가 자주 걷는 길목에 있어서 가끔 내려가서 바다 구경만 했던 곳이다. 신이 만든 수영장처럼 바위가 적당히 둘러싸고 있어 파도가 없고 수심이 얕다. 바닥에 깔린 돌은 바닷물에 닳고 닳아서 아쿠아 슈즈를 신으면 걷기에 나쁘지 않다. 이곳이 최근 몇 번 프리 다이빙 성지로 별스타에 오르고 나서 텅 비었던 근처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고 장비를 진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물속을 헤집고 다니다 전복 같은 해산물을 따가지고 나오다 해녀에게 들키면 옥신각신 다툼이 일기도 했다. 그래도 한적하고 깨끗한 바다에서 놀려는 사람들을 막을 길이 없어 이제 해녀들도 그들을 봐주는지 새벽 해안가는 평화로웠다.
나는 동이 트기 전 동네 올레길을 걷고 바닷물에 더운 몸을 식히고 싶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제주어로 수다 떠는 해녀들이 모여있고, 입구에 줄이 가로질러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하는 한 젊은 서양 여자가 해녀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해녀 삼촌들은 찍지 말라고 하면서 “공짜로는 안 되지”라고 말하면서 크게 웃었다. 결국 여자는 해녀의 모습을 담지 못했다. 최근 ≪슬픔의 땅, 팔레스타인≫을 읽고 시온주의자에 대한 분기가 탱천해 있던 중이라 해녀들이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그 여자의 부탁을 거절해서 속이 후련했다. 극우 시온주의자가 아닐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사람을 싸잡아서 비난해서는 안 되겠지만,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정녕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말살이냐고. 하지만 뜨거운 해를 품고도 고요한 바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해녀 할머니에게 여기 바다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들어가서 얕은 데서 안전하게 놀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일터에 허락 아닌 허락을 받고 바다에 들어갔다. 밤새 식은 물이 차가워서 더운 몸이 금방 식었다. 바닥에 있는 돌이 훤하게 보이고 그 사이로 작은 줄무늬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쳤다. 그 물고기는 침입자의 살을 한번 콕 쪼아보고는 내 곁에서 맴돌았다. 소금물에서는 수영하기도 쉽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에 들어가 놀았다. 만만한 파도는 몸을 한번 쓰다듬듯이 스쳐 지나갔다. 산호초가 죽은 흔적이 푸른 곰보처럼 남은 물 밑 바위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생명을 잉태했던 바다의 한없는 에너지를 받아들였다. 헤아릴 수 없는 환희와 고통의 시간도.
해녀 삼촌 두 분이 검은 수트를 입고 물에 풍덩 들어오더니 “날이 더우니 물도 시원하지 않구나”라고 말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바다에서 나오면서 왜 일하러 안 가시냐고 물었더니 다른 해녀들이 와서 같이 일해야 하니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정말 다른 해녀들이 하나씩 둘씩 검은 슈트를 입고 바다로 걸어왔다. 그들이 하나씩 들고 가는 주홍색 테왁이 바다의 쪽빛과 어울려 선명하게 빛났다.
제주 남쪽에 살다가 동쪽으로 이사한 친구는 매일 걷고 해수욕장에서 바다 수영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새벽 운동을 하고 싶어 가서 하룻밤 묵겠다고 했다. 우리는 밤에는 물이 끝없이 나가버린 깜깜한 갯벌을 걷고 새벽에 일어나 이제는 대기업에 팔려 리조트 부지가 된 바닷가 목장길을 걸었다. 겨울에는 귤껍질을 말려 노란색 초원이 되었던 목장은 진초록으로 빛나고, 바다는 갓 떠오른 해가 수평선까지 금빛 길을 내었다. 우리는 해의 기운이 여리여리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한 새벽의 공기를 즐겼다. 그리고 근처 해수욕장에 가서 파도가 남긴 곡선의 흔적이 끝없이 이어진 모래밭을 걷고 수영을 하고 놀았다. 아침 7시가 넘어가자 태양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모래사장 그늘에 앉아 뜨끈한 모래로 찜질했다. 까칠한 모래의 감촉이 바닷물만큼 시원했다. 아무도 없는 여름 해변이 낯설어 아주 먼 열대의 나라에 온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해수욕을 좋아하신다. 아무리 노익장을 과시해도 90 넘은 노인이 뭍에서 걷기는 힘든데 물에서는 거의 물개 수준이다. 나는 그동안 짠물이나 모래가 몸에 묻는 것이 귀찮아서 아버지의 권유에도 바다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어컨 없는 폭염이 나를 바다에 들어가게 했다. 고장 난 에어컨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