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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Nov 26. 2018

<툴리>독박 육아에 대한 공감, 위로 다룬 대화의 희열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에 대한 이유 있는 질타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제목: 툴리(Tully)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출연: 샤를리즈 테론(마를로 役), 맥켄지 데이비스(툴리 役)

#1시간 35분 #독박 육아 #힐링 #위로 #공감 #26살의 어머니 #대화


 꿈만 같던 20대 그리고 새벽 쓰레기차처럼 찾아온 30대. 영화의 주인공 마를로는 한 술집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시간과 삶의 속도를 한탄한다. 그 한탄 속에는 세 남매를 독박 육아하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마를로의 체념이 서려있다. 이 삶은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은 그녀를 자발적으로 독박 육아의 메커니즘에 참여하게 만든다. 한 인간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어느 선까지 자신을 방치할 수 있을까.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은 이에 대한 대답과 위로를 건넨다. <툴리>는 그런 영화다.




<툴리>는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시선을 반영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툴리>는 건조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실적인 영화로 마를로가 셋째를 출산한 직후의 씬들은 특히나 정교하게 묘사된다.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은 현실적인 묘사를 위해 출산 직후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마를로가 힘들게 수축해 보관한 모유를 식탁 위에 쏟는 씬, 핸드폰을 하다가 실수로 아이 얼굴 위로 떨어뜨리는 씬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일련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은 마를로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대해서도 현실성을 부여한다.

 첫째는 마를로의 퀭한 눈과 튼살 투성이의 피부를 보고 "엄마 몸이 왜 그래?"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툴리>는 임신과 출산으로 생긴 육체적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각적 변화보다 와닿는 건 생기가 점차 사라져가는 마를로의 정서적 변화다.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은 고된 육아 속에서 마를로가 표정을 상실해가는 모습을 주의 깊게 담는다. 마를로가 겪는 상실은 호르몬으로 인한 산후 우울증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녀의 상실감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에 보다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툴리는 마를로가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것들을 함의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한계에 다다른 마를로는 '꺼림칙하다'며 미뤄왔지만 결국에는 오빠가 추천해준 야간 보모를 고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시작된 야간 보모 '툴리'의 방문은 마를로에게도, 영화에게도 일종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꿈만 같은 20대를 보내고 있는 툴리와 새벽 쓰레기차처럼 찾아온 30대를 보내고 있는 마를로의 교감은 영화의 제2막인 셈이다. 마를로에게 툴리는 아이를 재워주고 집안을 정리해주는 통상적인 야간 보모가 아니라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자신의 고민과 감정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울 메이트다.

 마를로에게는 육아 노동의 분담만큼이나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툴리>에서 '대화'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아이들과는 아직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없고, 남편은 밤늦게 들어와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기 일쑤다. 마를로는 같이 있어도 외롭고 공허했던 것이다. 툴리는 그런 마를로에게 다가가 그녀가 내면의 깊숙한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또 경청한다. 한동안 적막했던 <툴리>는 툴리가 마를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부터 마치 홍상수 영화처럼 잔잔한 대화로 가득 메워진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주목해야 할 건 마를로와 툴리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다. 마를로는 변함없이 아이들과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럼으로써 변해가야 하는 자신이 낯설고 또 서럽다. 그녀는 툴리를 바라보며 자신의 20대를 떠올린다. 마를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꿈같았던 시절의 자신은 이제 없다며 우울해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마를로의 현실적인 아픔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과 '어머니가 간직하고 있을 꿈만 같은 20대의 기억'에 대해.

 이처럼 관객들은 마를로를 거침으로써 '자신'을 보거나 '자신의 어머니'를 보게 된다. 끊임없는 연상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위로와 공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죄책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영화가 내포하는 잔잔함은 울림이 크다. 그러나 영화의 끝에 등장하는 반전은 잔잔함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그 울림이 더욱 크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주제의식은 더욱 선명해지고 관객의 생각은 보다 깊어진다. 결과적으로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은 관객들로 하여금 26살의 자신, 혹은 26살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며 영화를 끝맺는다.



 

 잔잔한 사운드트랙과 풍경을 배경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화법이 참 마음에 드는 영화다. 영화의 스타일 자체도 영화의 메시지 자체도 썩 괜찮았다. 한편으로 독박 육아에 대해 무책임하게 일관해온 남편의 개과천선으로 마를로의 고충이 해결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독박 육아로 인해 여성이 겪는 변화와 고민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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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moviestreet0525


정식 연재: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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