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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Oct 04. 2018

당신이 <베놈>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베놈>의 진짜 빌런은 '영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제목: 베놈(10월 3일 개봉)

감독: 루펜 플레셔

출연: 톰 하디(에디 브록 役), 미셸 월리엄스(앤 웨잉 役), 리즈 아메트(칼튼 박사 役)

#1시간 47분 #졸작 #미안해요 #톰 하디 #쿠키영상은 1개뿐 #속편 예정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내가 <베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라도 마련해달라고. 그러나 루펜 플레셔 감독이 내게 마련해준 것은 <베놈>에 대해 나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세 가지 근거였다. 베놈 관련 이슈를 찾아볼 정도로 '마블'과 '베놈'을 사랑하는 골수팬으로서 이런 말을 하게 돼 참 유감이지만 <베놈>은 조잡하고 유치한 올해의 '졸작'이다. 진심으로 유감이다.




영웅과 악당 사이의 정체성? 파워레인저 변신 버튼 수준으로 전락한 베놈...


영웅과 악당 사이의 정체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진 출처: sonypictureskr]


 '마블'에 대한 과신 때문이었을까. 소니 픽쳐스는 <베놈> 홍보에 열성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래퍼 '도끼'와의 콜라보 뮤직비디오 'VENOM'를 공개했을 뿐이다. 도끼는 강렬한 훅을 반복하며 베놈의 정체성을 묻는다. 영웅과 악당과 뭐 헷갈려 때론/ 지배를 할 건지 지배를 당할지/ 난 좋은 놈이 아닌 동시 나쁜 놈도 아닌. 콜라보 뮤직비디오만 본다면 영화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수준의 자아 분열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그랬듯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히어로의 모습은 늘 새롭고 또,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베놈>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 속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1도 없었다는 사실. 기본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성립되려면 심비오트인 베놈과 숙주인 에디 브룩 사이에 가치관, 성향에 대한 극명한 대립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대립이 없다.

 에디 브록도, 베놈도 대책 없이 선한 존재로 묘사된다. 애초에 대립 구조가 충족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에디 브록은 영화의 초장부터 정의감 투철한 기자로 그려지고, 지구를 멸망시키러 왔던 베놈은 투덜대면서도 에디 브록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츤데레처럼 구해주기를 반복한다. 영화의 마지막, 베놈이 지구를 파괴하려는 동족 '라이엇'을 저지하면서 에디 브록에게 '사실 지구가 좋아졌어. 너 덕분이야'라고 할 때의 오글거림이란.

 <베놈>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보다 선과 악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다. 베놈은 숙주의 육체를 지배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의 질병과 부상을 치유해주는 등 '조건 없는 호의'를 베푼다. 에디 브록은 격렬한 거부 반응 없이 그런 베놈과의 공생을 꽤나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개인적으로 소망한 에디 브록과 베놈의 관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였지만 현실은 패트와 매트였다. 자아 분열을 강조한 도끼의 현란한 랩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악당인지 모르겠는 빌런에 대한 설정 근거


빌런의 정체성 결여는 결과적으로 히어로의 정체성 결여로 이어진다 [사진 출처: sonypictureskr]


 매력적인 빌런 없이는 매력적인 히어로도 없다. 히어로 무비에 대한 내 오래된 지론 중 하나다. 히어로뿐만 아니라 빌런에게도 정체성 내지 입체성이 부여될 때, 한 편의 완벽한 히어로 무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베놈>이 불완전한 히어로 무비인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다. <베놈>의 빌런인 칼튼 박사는 메인 빌런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정체성과 행동 근거가 부여되지 않는다. 싸구려 B급 액션 영화의 최종 보스만큼이나 조악하다.  

 얼핏 보면 칼튼 박사만큼 인류애가 넘치는 빌런도 없다. 과잉 생산에 의한 자원의 고갈을 걱정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의 수명 연장을 꿈꾼다. 칼튼 박사는 심비오트를 인간과 결합시킴으로써 인류가 처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아이러니는 그렇게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 동물부터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을 강제적으로 생체 실험에 투입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잔인하게 희생시킨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의아한 점이 많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칼튼 박사가 그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 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칼튼 박사가 심비오트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매 씬마다 앵무새처럼 대사로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DC의 야심찬 실패작 <배트맨 대 슈퍼맨>의 빌런인 렉스 루터가 자신이 유년기에 아버지한테 학대당할 때 신이 자신을 외면했다며 슈퍼맨을 괴롭히는 것만큼이나 개연성 없는 설정을 보여준다. 

  비중을 떠나 서사에 대한 칼튼 박사의 개입이 미미하다는 점 역시 결정적 패착 중 하나다. 결말 직전까지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비인권적인 생체 실험을 강행시키는 것과 주인공 베놈 & 에디 브록을 잡아오라고 명령하는 것이 전부다. 결말에서 베놈 & 에디 브록과의 대치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메인 빌런이 영화의 긴장감에 힘입어 히어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연출을 볼 수는 없었다. 

  

베놈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 특색 없는 액션과 질질 끌다 끝나는 지루한 서사 구조


유감이지만 광고 영상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액션의 전부다  [사진 출처: sonypictureskr]


 베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이 있다. 관객들이 <베놈>을 선택한 이유의 8할은 톰 하디라는 배우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베놈 특유의 액션에 대한 기대감이었으리라. 안타깝게도 루펜 플레셔 감독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광고 속 현란한 액션을 보며 기대감을 키워왔는데 실상은 광고를 어찌나 잘 만들었던지 광고가 영화의 전부였다. 실망할 수밖에. 광고로서는 훌륭했을지 모르나 영화로서는 부족한 액션 씬이었다.

 베놈과 결합한 에디 브록이 심비오트로 몸을 변형시켜 싸우는 모습 자체는 원작 속 비주얼도 잘 살린 데다가 일단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육탄전에 간간히 심비오트가 활용되는 형식으로 액션 씬이 구성돼 베놈의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임에도 어째서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많은 씬에서 인간들의 방식으로 싸우게 했는지 의문이다.

 액션 씬의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또 아쉬운 점이다. <베놈>의 러닝 타임은 1시간 47분으로 일반적인 히어로 무비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편이다. 그런데 초반에 에디 브록과 그의 여자친구 앤 웨잉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대략 30분을 소모하니 액션 씬이 충분히 들어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초반의 30분이 꼭 필요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태반이다. 

 애초에 전반적인 서사 전개 자체가 늘어지는 감이 있다. 히어로 무비 치고 기승전결의 진폭이 너무 작다. 초반의 30분 이후 (실험 강행) - (베놈 & 에디 브록 추격) - (베놈 & 에디 브록과의 격투) 구조가 몇 차례 반복되다가 결말에 도달하고 끝난다. 루펜 플레셔 감독은 서사 구조의 지루함을 에디 브록과 베놈이 에디 브록의 정신 속에서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이나 에디 브록의 썰렁한 농담으로 상쇄하려 하는데 그렇게 해결될 공백이 아니다.



 

 베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렇게 해석한 것에 대해 아쉽다는 표현보다는 안타깝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제작사가 디즈니가 아니라 소니 픽쳐스인 것을 감안해도 마블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강의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작품에서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과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속편의 흥행 여부를 떠나 이후 그려낼 세계관 자체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그래서 참 안타깝다. 


PS. 여러 가지로 위태로운 영화였지만 나름 속편에 대한 쿠키 영상도 마련돼있으니 영화를 보러 갈 독자들은 영화가 끝났을 때, 바로 뛰쳐나가지 말고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자.


정식 연재: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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