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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Apr 21. 2019

작가님, 오늘 방송 수고하셨고 다음 주 까지만 나오세요

잘리고 3주 되어 쓰는 일기


매일 나가던 회사에서 잘리고 3주가 지났다.


정확하게는 '계약 만료'라고 할 수 있겠다. 계약서 상 명시된 1년을 채우면 나가 달라는 말을 피디에게 들은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휴대전화 달력을 살피니, 1주일 뒤였다. 사실 방송작가라는 업이야말로 언제 어떻게 잘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나야 그래도 계약서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쓰지 않는 곳이 많으니까.


계약 만료 통보를 받고 처음은 딱 죽을 맛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는 물음이 수도 없이 머리를 괴롭혔다. 그렇게 고작 이틀 시름시름 앓고 나서 해고된 지 사흘 만에 분연히 이불을 차고 일어나 양푼 비빔밥을 말아먹었다.


술 마시면서 신세한탄도 조금.... 조금 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여행을 다녀왔고, 죽어가던 식물을 돌보고, 운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책도 읽고... 미뤄오던 많은 일들을 해치웠다. 하지만 내가 몸 담았던 방송은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 여전히 방송은 잘 진행되고 있고, 달라진 것이라고는 방송 말미 작가 소개에 내 이름이 빠졌다는 것 정도. 그 미세한 차이뿐이다.


잘리고 3주를 보내면서 여행부터 원예까지 바쁘게 보낸 데는 다소 불건전한 이유가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공연히 부산스럽게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쓰는 행위'를 멀리했다.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다 보면 다시 마음이 쓰리니까. 여행을 가서도 펜을 들지 않았고, 책을 읽고 나서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부유하는 먼지처럼 3주를 보내고 나니 이제 좀 정신이 든다. 결국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되는 것이다.






3주 전. 방송이 끝나고 원고를 정리하는데, 피디가 잠깐 따로 이야기를 하잔다. 얼마 전 인사이동으로 이 프로그램을 맡게 된 신입피디였다. 이 자리에서 할 건지, 커피숍에서 할 건지를 묻는다. 짐작도 하지 못하던 나는 기왕이면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자고 바깥으로 나갔다. 커피숍에 가서도 제작비도 빠듯할텐데 돈 내게 하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지고 있던 쿠폰을 내밀었다. 나 해고하라고 쿠폰을 줬네. 내가 등신이네.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피디가 묻는다. "옛날에 계시던 작가님들이 어떻게 나가게 됐는지 아세요?" 마음이 싸하다. 손 끝이 차가워진다. 그러더니 계약서에 명시된 1년만 채우고 그만 해달란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길 듣는 건지. 심호흡을 하고 이유를 물었다.


"제 원고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아닙니다. "

"그러면 사유가 뭔가요?"

"윗선에서 결정한 일이라 저도 잘..."


일개 한 작가의 거취가 뭐라고, '윗선'에서 결정한다는 말인가. 후에 다른 스태프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윗선의 결정'이라는 건 없었다. 아마 피디가 나와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원고에 문제가 있었다면 앞으로 날 위해서라도 고쳐야 맞다. 그런데 원고는 문제가 안 된단다. 이러니 더 돌아버린다. 삼십 대 후반에, 커피숍에서 눈물을 떨구면서 몸을 떨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나는 평소 덤덤한 편이다. 언젠가 살면서 이런 통보를 받는다 해도 눈물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이구 이 등신. 애착과 아쉬움은 비례한다는 걸 왜 몰랐을까.





1년 동안 열심히 갈고닦아 온 프로그램이었다. 직접 고민해가며 코너 아이디어를 내고, 새 단장하고, 요모조모 바꿔서 반응이 좋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원고를 쓰지 않는 시간에도 일을 생각했다. 진행자가 쉴 땐 쉬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좋았다.


그런데 다음 주까지만 나와달라니. 당장 내일부터 나는 어떤 얼굴로 어떻게 앉아있어야 한 단 말인가. 지금까지 쏟아온 애정과 노력이 계약 만료와 어떻게 닿아있는 걸까.  '커피숍 면담' 이후로 나는 그냥 사라질 수밖에 없는 건가.


스태프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일주일 동안 버텨야 한다니. 청승도 청승이지만 그 아쉬움을, 그 황망함을 어떻게 달래야 한 단 말인가. 피디에게 부탁을 했다. 조용히 나가게 해 달라고. 그렇게 나와 그 프로그램의 인연이 끝났다.


피디가 짐짓 이마에 내 천자를 그리고 묻는다. "작가님... 운전은 하실 수 있겠어요...?" 네. 그럼요.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집까지 운전해서 가야지요.


부디 운전 걱정일랑은 넣어두시고 잘리는 이유나 알려달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커피나 한 잔 하며 하자던 이야기는 결국 그러니까, 해고 통보였던 거다. 너털너털한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식탁 위에 가방을 올리려다 또 마음이 내려앉는다. 식탁에는 코너 아이디어 회의용 페이퍼와 프로그램 원고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나는 아주 늦게 방송작가로 전직했다. 나이에 비해 연차는 높지 않지만 시사부터 뉴스, 음악까지 운 좋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참여해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일도 생기고, 또 의도치 않게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가 너무 안일했나 싶다. 프리랜서는 늘 파리 목숨이라는 것을 잊고 천년만년 이 프로에 몸 담을 것처럼 일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폭풍이 거셌다.


혹시 현직 방송작가이거나, 작가를 꿈꾸는 분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계약서를 쓰시길 바란다. 계약서는 우리 같은 파리 목숨을 그나마 '시한부'로 연장시켜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나 역시 계약서 덕분에 1년을 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약서가 없었다면 피디가 바뀌는 시점에 내 자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방송국에서도 다들 계약서를 쓰는 추세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먼저 말이라도 꺼내보시기를 추천한다. '갑'이 계약서를 써주지 않는다고 해도, '을'이 요청했다는 것. 작은 것이 쌓이면 거대한 흐름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내 해고 스토리는 이렇게 시시하게 끝이다. 언젠가 좋은 곳에서 즐겁게 '오래' 일하고 있다는 글을 써서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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