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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Oct 28. 2023

벗어나고 싶은 벌쓰데이

   10월 25일 저녁부터 나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남에게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불러주는 것은 즐길지언정 막상 누군가가 나에게 불러줄 법한 날, 10월 26일 생일이 다가오는 날은 글쎄 노래 가사처럼 마냥 해피하지가 않다.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친한 친구들, 딱히 친하지 않은 친구들까지도 10월 25일 밤 12시가 되고 나서 한두 명씩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것은 나의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고, 나름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이렇게 옆에서 나를 챙겨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일을 계기삼아 이어진 톡은 얼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물리적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생일축하를 해줬으면 했던 지인이 축하를 해주지 않았을 경우다. 나는 신경 써서 그들의 생일에 정성 가득한 메시지와 선물까지 보냈는데, 톡 하나 없는 모습에 속상한 마음이 든다. 누구에게 메시지가 왔는지 나도 모르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긴장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것 같고, 그 마음이 찌꺼기로 남아있게 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서운함을 억압하기 어려워하는 나의 모습이 두려운 것이다. 나도 그냥 쿨하게 넘기고 싶다. 그렇지만 그게 안된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이 사람 쪼잔하네라는 생각을 하리라 생각한다. 그냥 사정이 있겠거니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생일을 축하하는 형식'에 집착하느냐라는 비판(?) 아닌 비판이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당연히 마음으로는 축하하겠지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사실은 그들이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기에 나의 생일을 눈치채지 못하고 하루를 넘겼을 수도 있으니까.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분명 축하해주고 싶어 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축하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것과 표현이 안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무리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도 그것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누가 알 수 있을까? 이것은 생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표현을 하면서 인지를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는 과정, 친구가 되는 과정도 같다. 시간을 갖이 보내고 싶기 때문에 약속을 계속 잡는 행동은 '너와 친해질 마음이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친해지고 싶지만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한다면 진전이 굉장히 느리거나 친해지기 힘들어지게 된다. 의도가 있건 아니건, 나의 마음에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든다.


   성인군자(?) 같은 친구 하나는 너가 그렇게 사람들한테 마음을 쏟아서 그렇다며, 자신은 어차피 자신도 바쁘고 정신없어서 남의 생일이나 중요한 이벤트 챙기는 것을 자주 까먹기 때문에 자신도 서운할 일도 없다고 한다. 설령 자신이 챙겼던 사람이라도 하더라고, 일부러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넘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건 나에게 해당이 안된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그런 것들을 살뜰하게 잘 챙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지인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놓으니, 누군가는 1. 자신의 생일에 직접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생일이라고 축하해 달라고 말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 피차 서로 기분이 안 좋을 여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받은 조언은 2. 내 생일인 것을 알리는 기능을 없애라는(off) 것이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게 되니까 신경 쓸 일도 없어진다며, 자신도 언젠가부터는 기능을 꺼놓고 살아왔다고 한다. 마지막은 극단적이지만, 3. 그냥 너도 축하를 해주지 말고 기대도 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셋 다 딱히 끌리지 않았다. '내 생일인데 축하해 줘'라고 하기에는 내 성격이 그렇지를 못하고, 괜히 겸연쩍은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생일인 것을 알리면 상대방은 무언가 부담을 느끼게 하는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내 생일인 것을 알리는 것이 default(고정값)인데, 그것을 끄는 것도 솔직히 딱히 내키지 않았다. 마지막 조언은 실현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축하해 주고 감정교류하는 과정을 억지로 안 하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큰 부분이 없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축하해 줄 때는 맘껏 축하해 주고, 그것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만약 이게 쉬웠다면 나는 스스로를 성인군자급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평소에는 기억력이 특별히 좋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럴 때만 내가 누구에게 축하를 해줬는지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아무쪼록 10.26일 생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음이 편해진걸 보니 생일이 불편하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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