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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Oct 22. 2021

프랑스의 대표 간식은 모래 쿠키?

사블레 낭떼와 디아망

 꼬르동 블루의 두 번째 실습은 쿠키였다. 크림 다음 쿠키라니! 다른 제과류를 만드는 것보다 더 쉬워서 그러려나 이유가 궁금했다.  


쿠키. 오븐에 구워낸 과자. 이 걸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저렴한 간식 정도로 느껴졌고 단 것이라면 케이크를 챙겨 먹지 쿠키를 찾은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쿠키는 슈퍼에서 한 박스에 2-3천 원 하는 버터링이나 버터 와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름 고소하고 맛은 있는 데 선뜻 사 먹게 되진 않는다고 할까.


이런 내게도 쿠키의 신세계가 열린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샌드위치 가게 '서브웨이'.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 먹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직접 재료를 골라 먹는 서브 샌드위치도 맛있지만 사실 숨겨진 쿠키 맛집이라는 것을. 세트를 시키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커다랗게 구운 쿠키나 감자칩 작은 사이즈 한 봉지를 디저트로 고를 수 있는데, 감자칩은 시판이라 뭔가 더 불량스러울 것 같고 쿠키는 매장에서 오븐에 구운 것을 주기에 자연스럽게 매번 이것으로 고르게 된다.  설탕은 훨씬 많지만 수제라는 이유로 더 좋은 걸 먹는 느낌이라. 말도 안 되는 이유지만 열이면 열 번 그곳에서 디저트는 늘 쿠키를 선택했다. 슈퍼에서 사 먹을 때와 사뭇 다른 감흥. 서브웨이의 쿠키는 겉만 바삭하고 속은 쫄깃. 껌같이 츄이(chewy)한 느낌이 있다. '아니 이건 뭐지. 맛있잖아. ' 한번 먹고는 반해서 오히려 본식보다 후식을 먹으러 그 가게에 가게 됐다.


편견이 없어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참 많이 판다. 제과점 한 구석에는 플라스틱 통에 가지런히 담긴 선물용 쿠키 상자가 있었고, 스타벅스 진열대에도, 다른 카페에도 진열장 한편에 쿠키가 겹겹이 쌓여 팔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니 종류도 여러 가지다. 반죽의 성질이나 만드는 공정에 따라 무한대. 아마 내가 즐겨 먹던 서브웨이 쿠키는 버터를 풍부히 넣어 반죽이 말랑말랑한 드롭 쿠키(Drop cookies)에 속할 것이고 슈퍼에서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버터링은 드롭 쿠키를 짤주머니로 동그랗게 짜서 만든 것일 것. 단단한 반죽을 밀대로 밀어 틀로 찍어내는 롤드 쿠키(Rolled cookies)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버터 쿠키겠지? 계란 커품을 잔뜩 낸 머랭 쿠키나 아몬드 가루를 잔뜩 넣은 머랭 쿠키 두 개를 필링으로 합쳐둔 마카롱도 있다. 케이크보다 수분함량이 적어 장기간 보관도 가능한 쿠키. 프랑스의 전통 제과를 배우는 곳인 르 꼬르동  블루에서는 어떤 쿠키를 기본으로 여길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블레였다. 모든 슈퍼나 제과점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쿠키이며,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기 때문이란다.


버터향이 솔솔 나는 프랑스의 쿠키를 보통 사블레라고 부르는데 1670년 문헌에도 발견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 슈퍼에 파는 '사브레' 역시 여기서 나온 것이란다. (개인적으로 맛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식감!)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의 남동생이 좋아해서 매일 아침으로 먹겠다고 하기도 했다고. 사블레를 만들 때는 실온의 버터를 으깨고 설탕과 크림화 해서 만드는 크레마쥬 기법과 아주 차가운 버터를 밀가루에 잘게 잘게 작은 알갱이로 만드는 사블라쥬 기법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데모 수업에서 셰프는 뚝딱뚝딱 네 가지 쿠키 반죽을 금세 만들어냈다. 크레마쥬 기법의 부드러운 브레통(breton)과 헤이즐넛(Hazelnet)쿠키, 그리고 사블라쥬 기법으로 만드는 낭떼(Nantais)와 디아망(Diamant). 익숙한 솜씨로 쿠키를 굽고 나무판과 컵으로 삼단 타워를 만들어 2시간 만에 화려한 파티에 어울릴 것 같은 쿠키 타워를 만들었다. 크림만 네 그릇만 딸랑 나온 전 시간과 달리 근사한 모양새의 디저트가 완성된 순간, 학생일동 "우와~"하고 탄성을 자아냈다.


종류별로 하나씩 개인 그릇에 담아와서 자리에 앉았고, 맛을 천천히 음미해본다. 부드럽게 스르르 모래알처럼 풀어지는 식감을 지닌 사블레(Sablé). 사블레가 프랑스어로 모래라는 뜻도 지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겠더라. 입안에 넣어 씹는 순간 와르르르르 하고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 같아 재미있다. 마치 스코틀랜드의 유명 쿠키 쇼트 브레드와도 닮았다. 쇼트 브레드는 조금 퍽퍽했던 것 같은데 사블레는 더 얇기도 하고 버터의 촉촉함 덕분에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다. 그래도 달달한 쿠키 덕에 아메리카노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실습에서는 사블레 낭떼와 디아망을 만들었다. 사블레 낭떼는 낭떼 지방의 쿠키이고 반죽을 차갑고 단단하게 굳혀서 지름 5센티 꽃 모양 쿠키 커터로 꾹꾹 찍어 만든다. 계란 노른자를 붓으로 바른 후에 포크로 사선을 두 번 X자로 내주고 갈색 빛이 나도록 충분히 굽는다. 디아망(Diamant)은 다이아몬드라는 프랑스어. 2센티 지름의 밀대 모양으로 밀어 차갑게 굳히고, 달걀물을 발라 설탕에 굴린 후 다시 얼려 1.5센티 높이로 똑같이 자른다. 바둑알 같은 귀여운 모양이 나오면 원형 중간을 꾸욱 하고 검지로 눌러준다. 겉에 바른 설탕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니 참 예쁘다. 학교의 레시피는 레몬 제스트를 살짝 넣어 느끼할 수 있는 뒷맛을 상큼하게 잡은 디아망. 이름처럼 작고 소중하게 눈부셔서 예쁘고 입안에서 알알이 확 퍼지는 레몬 버터향이 특별히 맛있어서 이날 최고의 쿠키로 꼽았다.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결과물을 보니 뿌듯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양이 족히 내 것의 두배는 되어 보인다. 처음으로 쿠키를 만드는 나는 정신없이 공정을 따라 하는데, 다른 동료들은 여유가 있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확실히 쿠키라서 쉬웠다고.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쿠키커터를 찍는 게 아니라 그냥 마구 찍어도 어차피 커터 모양으로 나오는 것! 다음에는 나도 부지런히 찍어야지.


귀여운 쿠키를 집에 가져가면 좋아할 아이들이 생각나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엄마가 어린이집에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섭섭했다는 아이들에게 꽃 모양의 낭떼와 동그란 디아망을 수줍게 내밀었다.


"미안, 미안! 내일은 꼭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게. 이거 봐. 너희들 선물 주려고 엄마가 학교에서 만든 거야."

"아 그래? 엄마 이거 예뻐요. "

"먹어 봐. 맛있어? "

"네! 나는 이게 맛있어요. "


아이들은 나와 달리 상큼한 디아망보다 버터리하고 달콤한 낭떼를 더 좋아하는 듯했다. 집에 가져온 남은 반죽을 밀어 아이들과 정신없이 쿠키 만들기 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대강 찍어도 그 모양 그대로 나오는 걸 보니 손 덜덜 떨며 하나씩 꾸욱 꾸욱 찍던 수업시간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쿠키를 생각하면서 초콜릿 칩이 가득 박혀있는 커다란 원형의 도톰한 과자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제과를 조금씩 배워가며 내 머릿속 상식도 바뀌어가고 있다. 손으로 직접 만든 과자는 머리가 띵할 듯 달지도 않았고, 샌드위치 가게 덕에 머릿속에 박혀 있던 '바삭 쫀득'이라는 맛있는 쿠키의 공식도 그저 그 세계의 일부에 불과했다. 사블레를 이번에 배운 만큼 당분간 나의 부엌에서는 이 것을 주야장천 구울 예정. 다른 쿠키를 더 알아가기 전에 기본이라고 하는 이 레시피가 충분히 손에 익어서 눈감고도 술술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좋겠는데!

 

아! 그리고 다음 실습 때는... 무엇을 만들던지 반드시 양 껏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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