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친구 사귀는 게 힘들어.
영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다. 스페인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었다. 아기 엄마 친구를 사귀고 플레이 데이트라는 것도 해보고 싶은데, 스페인 아기들은 생후 4개월부터 구아데리아라고 하는 어린이 집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 아기와 비슷한 또래의 집도 있지만 육아라는 공통점으로 말 한번 걸어보려 해도 도무지 단지 내에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알게 된 건 이곳에서는 캉구로(canguro) 즉 내니가 아이를 길러주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아기와 함께 있는 사람의 대다수는 보모였다. 그렇게 나는 친구 없이 몇 달을 지냈다.
드디어 커피 마실 사람이 생겼다.
그녀는 스타일이 근사한 사람이다. 히피펌을 한듯한 보글보글한 긴 머리에 레이벤 선글라스, 페이즐리 문양의 롱드레스를 입고 아이 둘과 함께 놀고 있는 그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뜨거운 여름 같은 봄날이었다. 장소는 아파트 농구장.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파울린. 평소 같았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 텐데 햇살이 좋아 괜히 밖에 조금 더 있고 싶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말을 건넸다. 버벅거리는 스페인어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그녀에겐 영어도 편하다고 해서 긴장도 풀어졌다. 서로의 이름과 사는 곳, 아이의 나이를 묻는 통상적인 첫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그녀의 한마디가 나를 설레게 했다.
“언제 커피 한잔하실래요?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약속을 잡았다. 지인 없는 타향살이에 기분 좋은 첫 커피 약속이었다.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팬트리를 후다닥 살펴보니 호떡 믹스가 있었다. 흠. 이건 실패할 수 없지. 그녀가 좋아할 것을 반쯤은 확신하며 오전 티타임 시간에 그녀 집에 들렀다. 책으로만 접해본 스페인 집 방문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듣자 하니 스페인에는 희한한 집 소개 문화가 있다. 그것은 처음 방문했을 때 하우스 투어를 시켜주는 것이다. 집안 곳곳을 모두 열어준다는데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다 보여준다고. 기대감 가득했던 첫 방문. 나는 그녀의 집을 보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CASA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한 컷 같았다. 거실은 흑백의 정글 문양 벽지와 벽난로를 세팅해두고 10명은 족히 앉아도 될듯한 커다란 테이블도 있었다. 소파와 커튼은 그녀와 잘 어울리는 톤온톤의 베이지로 꾸몄다. 디테일한 하우스 투어의 루머가 사실이었나 보다. 거실로 끝날 줄 알았던 집 소개가 부엌과 발코니로 아이들 방과 부부 침실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화장실까진 아니었다. 정신없이 구경하는 찰나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
그녀의 취향이 가득한 집 구경을 마치고 나니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그녀를 프란세사(Francesa - 스페인어로 프랑스인이라는 뜻이다)라고 불렀다. 분명 마드리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프랑스 사람이란다. 대학 졸업 즈음부터 마드리드에 와서 살았고 마드리드 출신 남자와 결혼해서 이미 이곳에서 반평생을 보냈다고. 그래도 여전히 프랑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했다. 그래서 딸들도 프랑스 학교에 다닌다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비슷한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기 전에 가져온 육아서도 프랑스 아이처럼 이라는 번역서였다. 내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두 나라는 가깝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녀는 프랑스는 육아가 훨씬 엄격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룰이 중요하다고. 이곳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훨씬 더 존중해 준다는 설명에 나는 밤 10시에 아기가 가득한 집 앞 몰을 떠올렸다. 나 또한 우리 집 쌍둥이를 8시 반에 재우는 엄마라고 소개했더니 그녀는 동지를 만난 양 반가워했다.
그녀의 직업은, 아니 전 직업은 번역가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 번역회사의 매니저로 일했단다. 그 회사는 아주 고약한 곳이라 주말은 물론 시차도 고려하지 않고 수시로 연락해댔다고. 게다가 휴가 중에 연락 오는 일도 잦아 결국 회사를 관두었다는데! 휴가를 가기 위해 일한다고 할 정도로 일 년에 한 달 있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에겐 가혹한 회사였나 보다. 어쨌든 그래서 그녀는 일시적 주부의 삶을 사는 중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고민 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예기치 못하게 시작된 주부 라이프. 그녀는 갑자기 생긴 자유 시간에 당황하는 듯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녀처럼 정신없이 바빴던 나의 서울 직장인 시절 그리고 마드리드로의 이사와 갑자기 시작된 살림과 육아. 쉬는 시간은커녕 정신없는 삶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초조한 구석이 있는 시간. 인생의 지금 시기쯤이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장래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더니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둘이라 매달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하는 건가. 혹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말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봐야 하나. 비슷한 처지의 그녀와 나는 서로의 고민을 백번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도 응원해 주지만 자꾸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했단다. 시작에 늦은 시간은 없다며 그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내게도 그녀의 세련된 취향은 집에만 두기엔 너무 아까워 보였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수다를 떨어본 게 얼마 만인가 싶어서. 몇 시간이 순식간에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친구가 없었으니까. 외국 생활에 이렇게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운지 몰랐다. 이전의 타국 생활에 나는 부모님의 딸이었고, 매일 학교를 가야 하는 학생이었으며, 출근을 하던 직장인이었으니까.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에 가까웠다. 지금은 달랐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게 적극성이 필요했다. 경계를 풀고 ‘내’가 다가서야 하는 길. 스페인 사람들이 밝고 명랑해도 수동적인 외국인에게 환대를 베풀 이유는 없다. 첫 시도에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그녀를 만나게 되어서 나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친구가 전혀 없는 이곳의 생활은 이곳이 마드리드인지 서울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의 스타일 만으로는 해외 생활의 즐거움을 채워줄 수 없다.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자란 환경과 다른 문화를 배우면서 사는 것. 그게 가끔 너무 달라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고 다른 언어 때문에 종종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현지인과의 소통은 이곳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도, 내 삶을 조금 더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 같다. 해외 생활에서 제일 그리운 건 뭘까? 보글보글 뚝배기에 나오는 한국 음식? 그것도 그렇지만 나에게는 맘 편히 불러낼 수 있는 친구와 어려울 때 바로 전화할 수 있는 가족이다. 외국에서 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내게 든든한 한편이 생긴다는 뜻이고 나 또한 그에게 좋은 추억을 함께 할 ‘새로운’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일어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아침 시간에 커피 한 잔과 호떡을 먹으면서도 인생의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지금 시간만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엄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녀는 그렇게 나의 동네 프랑스 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