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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약방 Oct 19. 2022

마음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리야 이바시키나가 그리고 쓴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은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저마다의 고유한 감정을 소개하는 그림책입니다. 

 책을 통해 독일어로 “초로스”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돌아가는 정든 곳.”, 이탈리아어로 ‘콤무오베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을 의미한단 걸 알게 됩니다. 

 책 속의 단어들은 분명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언어인데, 설명하는 그 의미들은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웠던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해주었어요.

그림책에서 서로 낯설지만 다양한 언어로 마음을 설명하듯, 저는 제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저만의 정의로 ‘이름’ 붙이고 싶었습니다. 

열여덟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을 받지 않고, 서울에 다녀온다던 영희를 앞으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열아홉 개학하던 날 보경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청소를 끝내고 소각장에 가서 하염없이 잿더미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친구들이 하나둘 그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 소각장은 우리에게 “내가 가면 네가 오던, 너와 내가 함께 슬픔을 태우는 곳”입니다. 


 두 번째 이름 붙인 마음은 ‘수평선’입니다. 

 사춘기 때 이처럼 친구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문득문득 교실 창밖을 보면 늘 한 자리에 수평선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바다는 서로 너무 멀리 있는데 수평선이 그 둘을 만나게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그립고 가슴이 아플 때면, ‘수평선’이라고 쓴 쪽지를 돌렸습니다. 쪽지를 보고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나아지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멀고 먼 경계’이겠지만 우리에게 수평선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 멀리 있어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맞닿게 하는 선”이였습니다.     


 어느날, 학교 3층에 작은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수평선을 바라보고 소각장에 모이던 친구들도 도서관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선후배,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4·3’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와 같은 책을 읽고 문제의식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청준과 윤정모, 최인훈, 박완서 작가 등의 소설을 함께 읽으며 필사를 하고, 편지도 나누었습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지하 음악실로 내려가 피아노를 치며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소각장’과 ‘수평선’이 상실감과 슬픔을 달래어주었다면, ‘도서관’은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알려주었고, 좋아하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도서관은 출판물과 기록물들이 모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지만 저에게 도서관은 “서로의 진심에 귀 기울이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감정은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온 장소와 사람, 관계 맺어온 수많은 것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초로스란 단어는 몇 년 전 고향에 돌아온 저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사전적 정의로도 “돌아왔다”라는 말은 그냥 “왔다”와 달리 어떤 곳으로 움직이거나 이르거나 닿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의 장소로, “다시” 온다는 의미입니다. ‘초로스’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돌아가는 정든 곳’이란 의미를 담고 있듯, 저에게 고향은 다시 돌아온 정든 곳입니다.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나의 언어로 내 마음을 설명하는 일입니다. 내 마음을 설명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내 마음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는 일입니다. 

 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세상에 단 하나뿐일 감정의 이름들이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 당신이 만난 사람, 장소, 그 무엇이든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무미건조한 단어들이 ‘기쁨과 슬픔, 어려움과 쉬움, 지루함과 즐거움’ 같은 마음들과 더불어 내게 고유한 이름이 되어줍니다. 


작은책 8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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