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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약방 Oct 20. 2022

우린 가라앉지 않아

작은 배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
멀리 떠날 수 없네.
아주 멀리 떠날 수 없네. 

가수 조동진이 부르는 ‘작은 배’의 가사입니다. 사춘기 때,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가득 보이는 이 노래를 몹시 좋아했어요.

떠날 수 없다는 것이 절망스럽게 느껴지기보다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지기라도 하면, 바람이 조금 더 일렁거리기라도 하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아버릴지도 모를 작은 배의 항해를 끝까지 응원하고 싶었어요.


언어재활사인 저는 오랫동안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어왔어요.  

그림책이 얼마나 재밌는지 충분히 느끼게 된 아이들과 종종 함께 보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캐시 핸더슨이 글을 쓰고, 패트릭 벤슨이 그린 그림책 <작은 배(보림, 2000)>입니다.  


그림책 <작은 배>에도 조동진의 노래처럼, 바닷가 멀리 떠내려가는 작은 배가 등장합니다. 작은배는 바람에 실려 '수영하는 사람, 낚시꾼, 게잡이 배, 돛단배, 등대, 바닷새, 은빛 물고기'들을 차례차례 지나치며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이 작은 배는 한 아이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예요. 아이는 그 배를 바다 위에 띄우며 흥얼거립니다.  


"우린 가라앉지 않아. 내 배와 나는."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듯, 작은 배도 바다 위를 흘러가던 동안 어느 낚시꾼, 게잡이 배, 등대, 커다란 유조선을 지나갑니다. 그러다 어느덧, 누구도 없는 바다 위에 홀로 남습니다.  해가 기울며, 바다 위에 긴 그림자를 남기지만, 넓은 바다 위에는 작고 작은 ‘작은 배’ 하나만 머물고 있지요.  


아이들에겐 몹시도 생경할 수 있을 그 장면에 저는 얼른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여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야. 나 홀로 있거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재차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제 물음에 아이들은 그 순간, 주변의 소리에 집중합니다. 

왠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한 것이 꼭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일 것 같다고 무섭다고 표현하면, 아이들은 저마다 "아니에요. 스티로폼은 가벼워서 안 가라앉아요. 내가 과학을 잘해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저와 함께 꼭 무언가 나타날 것 같다고 무서워하며, "못 보겠어. 가라앉으면 어떡해"란 걱정까지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지요. 저는 다시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가득 전합니다.

작은 배를 만든 아이가 우린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대로 작은 배가 가라앉으면 어떡하지라고 걱정을 한가득 늘어놓으면서요.  

그순간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되려 제게 용기를 줍니다. 단 한 아이도 배가 가라앉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역시나  배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기쁜 아이들은  하이파이브하며, "다행이다!"를 외칩니다.  

하지만, 삶은 또 다른 시련을 주게 마련이지요.  폭풍우에도 가라앉지 않았던 작은 배는 커다란 물고기에 잡아 먹히고 맙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작은 배를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너무 슬프다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너도나도,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요. 피노키오처럼, 물고기가 재채기할 때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다란 것부터 물고기가 낚싯대에 걸려, 작은 배가 나올 수 있을 거다란 생각까지.

물고기는 작은 배를 뱉어버렸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크게 기뻐합니다.  


다시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이제, 작은 배는 자기를 만들어주었던 친구를 만나게 될까, 아님 새 친구를 만나게 될까?"

제가 예상했던 대답은, 자길 만든 친구를 만나게 될 것 같다였어요. 여태껏, 지난 인연에 긴긴 미련을 두어 왔으니까요.  

하지만, 단 한 녀석도, 처음 자신을 만든 친구를 만날 것 같다고 말하지 않아요. 

아이들의 예상대로 작은 배는 새 친구를 만납니다.  

바다 위에 작은 배처럼,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어깨와 뒷모습이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아이의 삶에 펼쳐지게 될지라도 아이는 꿋꿋이 항해를 계속할 것입니다.  

아이는 또다시 흥얼거립니다.  

우린 가라앉지 않아. 내 배와 나는. 


작은책. 9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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