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ji Jan 24. 2024

이브 생 로랑의 후배가 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피는 '불안 증세'를 핑계로 지각과 무단결근이 잦았고 결국 아뜰리에에는 내 또래 인턴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나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남자 보스와 여자 보스가 나를 불렀다. 아뜰리에와 연계된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에는 알터넝스(Alternance)라는 교육제도가 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일을 하고, 학비와 월급을 지원받을 수 있다. 아뜰리에에 와서 6개월 정도 정식 직원도 아닌 체 지내던 나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 우리 아뜰리에는 파리의 패션스쿨 두 군데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가고 싶었던 파리의상조합(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haute couture)과도 연계가 되어있었다. 파리에 가기 전에는 알터넝스라는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학생이 학교에 먼저 컨택을 하고, 학교에서 회사를 찾아주거나 학생이 회사를 찾아서 알터넝스를 신청하는 식으로 많이 하는 듯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게도 회사가 결정되어 있으니 학교에서만 컨펌이 떨어지면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 보스가 교수에게 전화를 했고 그다음 주 아침에 회사로 교수가 찾아왔다.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면접을 보았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파리의상조합은 1927년에 파리에 설립된 패션 전문가 양성 기관으로 이브 생 로랑, 이세이 미야케, 앙드레 꾸레쥬, 칼 라거펠트 등이 다녔던 유명한 패션 학교이다. 특히 디자인보다는 드레이핑과 테일러링과 같은 기술에 특화된 학교여서 디자인보다는 모델리스트 쪽으로 커리어를 잡고 싶었던 나에게는 파리에서 갈 수 있는 학교 중 가장 좋은 학교였다. 물론 정규 과정이 아닌 알터넝스지만 오히려 좋았다. 모델리스트 전문가 과정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모델리스트 일을 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딱 실무에 필요한 수업들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하게 된 과정은 총 2년(4학기) 과정이었고, 일주일에 학교를 2일, 회사를 3일 나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좋은 점은 학비는 전액 면제이고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회사와 학교는 확정이 되었고, 프랑스에서 노동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미션이 남았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DIRECCTE(노동관청)에 가서 각종 서류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정말 느린 프랑스의 행정시스템으로 인해..) 한 달 뒤쯤 허가증이 나온다. 그걸 다시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놀랍게도 알터넝스 제도는 만 26세까지만 신청이 가능한데, 내가 딱 만 26세였다는 점과 몇 주만 지나면 내가 만 27세가 된다는 점과 프랑스의 행정시스템과 연말 휴가로 인해 내가 만 27세가 되어서야 허가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연말을 보냈다. 체류증 문제 때문에 서류를 몇 번이나 보충해야 했고 제대로 안내도 해주지 않고 서로 다른 말을 하는 행정 직원들 때문에 멀고 먼 DIRECCTE까지 추운 겨울에 네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정말 다행히 1월 말에 허가증을 받을 수 있었고, 2월 초 첫 수업을 가게 되었다. 






제출해야 했던 서류들






파리의상조합 등교 첫날.
















이전 12화 쓸쓸한 외국인 노동자의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