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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Jan 28. 2024

나의 이웃, 다니엘과 파티마




한국에서 친구 주희가 생일 선물로 떡을 한 박스 보내왔다. 상상도 하지 못한 무거운 한 박스였다. 아뜰리에에 있는 동안에 온 택배 아저씨 전화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무려 에펠탑 근처 우체국까지 찾으러 가야 한다는 문자가 와있었다. 퇴근길에 비가 와서 일단 집으로 왔는데, 택배를 앞집에 맡겨놨다는 쪽지가 문 사이에 끼여 있었다.


앞집 문을 두드리니 다니엘이 나왔다. 택배 찾으러 왔다는 걸 알면서도 잠시 들어오라고 했다. 다니엘의 친구 파티마도 함께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택배를 가지고 돌아왔다. 다니엘과 약속을 항상 미뤄서 미안하던 참이었는데 또 신세를 졌다. 주희가 보내온 팥떡을 한 접시 데워서 다시 앞집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서 앉으라고 하며 사과 쥬스를 한 잔 주셨다.


다니엘과 파티마는 아침 장에서 사 온 올리브와 호두를 먹고 있었다. 팥떡을 쌀과 빨간 콩 azuki로 만든 케잌이라고 설명을 했고 파티마는 달지 않고 맛있다며 좋아했다. 이 집에 이사를 온 후로 항상 저녁마다 마주치는 흑인 아줌마와 백인 할아버지의 관계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절친한 친구, 남은 인생의 동반자 사이였다. 다니엘은 런던에서 계속 일했던 전직 BBC 기자인데 몇 년 전 은퇴를 하고 파리로 돌아와서 지금의 나의 앞 집을 샀다. 그는 아내가 먼저 떠난 후 근처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매번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파티마가 웃으며 인사를 맞받아주었을 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다니엘은 보청기를 끼고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파티마가 그를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냐며 물었고 파티마는 더 신이 나서 그를 놀리며 이야기했다. 파티마 다음으로 다니엘에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준 이웃은 나였고, 그래서 다니엘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파티마는 세네갈에서 십여 년 전에 프랑스로 왔다고 했다. 그녀는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지원 단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또 우리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살던 할머니를 도와주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할머니가 94세로 어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너무 아프셨고, 파티마는 조금만 더 힘을 내면 95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 더 이상은 못하겠어. 너무 피곤해. (J’en peux plus. Je suis fatiguée.)’ 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파티마는 할머니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함께 생제르망(Saint German) 거리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다니엘과 파티마는 인생을 이야기했고 나에게 너는 정말 젊다고 세대(Generation)가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티마는 아이폰 1을 쓰고 있다며 보여주었고 다니엘도 아이폰 2를 쓰고 있다며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그 당시 6S를 쓰고 있었다.


다니엘의 폰 배경화면은 자신의 아들과 팀 버튼이 멋있게 함께 걷고 있는 흑백 사진이었다. 아들이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나오미 왓츠와 일했었다며 나오미 왓츠와 아들이 함께 나온 기사 사진들을 찾아 보여줬다.


한참 동안 수다 떨다 보니 떡 한 접시와 올리브, 호두 그리고 사과 쥬스를 다 비웠다. 저녁을 먹기에 조금 늦어버린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다니엘과 파티마는 동네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던 나에게 든든한 이웃이 되어주었다. 다니엘은 종종 좋은 전시에 대한 기사나 패션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두었다 나를 마주치면 전해주었고, 파티마가 다니엘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나를 초대해서 세네갈식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종종 다니엘이 컴퓨터 관련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었고, 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옷을 중고거래 플랫폼에 업로드하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다니엘이 스크랩해 준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 기사






다니엘이 옛날 집을 정리하다 찾았다며 선물로 준 엄마의 패션 잡지. 1942년 잡지로 그림보다 글이 많고, 옷을 파는 매장 이름 대신 오리지널 패턴이 그려져 있었다. 태어난 달에 따른 여자와 남자들의 다른 성향 같은 재미난 글들도 있고, 전쟁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파티마가 만들어준 세네갈식 음식





다니엘의 집에 처음으로 정식으로 초대받아 저녁을 먹었던 날 밤. BBC 기자 시절 사용했던 레코더라고 하시며 녹음하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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