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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Jan 21. 2024

쓸쓸한 외국인 노동자의 마음






달콤했던 3주간의 여름 바캉스가 끝나고 8월 말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보스는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시기 시작했다. 남자 보스가 내 책상 위에 컴퓨터를 설치해 주셨고 왠지 두렵고도 설레는 마음이었다. 렉트라(Lectra)와 모다리스(Modaris)라는 패턴 캐드 프로그램은 주로 프랑스에서 많이 쓰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나는 컴퓨터에 썩 소질이 없다 보니 손작업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보스가 시범을 한번 보여주시는 동안 열심히 노트에 필기를 해두었다가 혼자 다시 사전을 찾아가며 복습을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어느 정도 툴을 다룰 수 있을 때쯤은 보스가 간단한 수정이나 마무리 점검을 부탁하시기도 했는데 너무 긴장이 돼서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을 정도였다. 샘플팀이 바빠서 나에게 손작업을 도와주러 뒤에 있는 큰 테이블로 와달라고 하면 얼마나 기뻤는지 일부러 손을 천천히 놀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보다 어린 프랑스인 인턴들이 세명 들어오기도 했었다. 나보다 3~6살 정도는 어린 20대 초반의 여자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이 들어오니 나의 프랑스어 실력은 평소보다도 더 못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중년층이었고, 그들도 이민자들이었기에 나와 말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 비슷했는데, 어린 친구들의 프랑스어는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점심시간에 몇 번은 우리 넷이 함께 공원에서 먹기도 했는데 혼자 대화에 끼이지 못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반면 작업 속도는 그들이 나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나도 한국인 치고는 느린 편인데 그 친구들은 손이 정말 느렸다. 꼼꼼한 정도는 몇 주가 지나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결국 한 달쯤 뒤에는 세 명 중 두 명이 잘리고, 패턴팀 인턴으로 들어온 소피만 나와 함께 남았다. 


소피는 금발에 가까운 갈색 머리로 엄청 작은 컬이 어깨까지 반복되는 뽀글 머리에 푸른빛 눈동자를 가진 예쁜 친구였다. 인턴으로 들어왔던 세 친구 중에서는 그나마 센스가 있었고, 어쩔 때는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나보다 빠르게 이해를 하고 일처리를 하곤 했다. 나와 소소한 대화를 나눠주긴 했지만 즐기진 않았던 것 같고 개인주의적인 프랑스 사람들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도 퇴근 시간이 되면 칼같이 나가버리곤 했다. 


패션위크로 바빠 주말 출근을 했던 어느 토요일 퇴근 시간에는 소피의 가족들이 회사로 소피를 데리러 왔다. 주말 저녁이라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간다고 했고 함께 한쪽 소매씩 손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던 재킷의 오른쪽을 서둘러 끝내고 달려 나갔다. 허술하게 마무리된 오른쪽 소매를 다시 손을 보고, 왼쪽 소매까지 남아서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같은 시간 한국의 새벽 나의 아빠는 문득 잠에서 깨서 동생에게 내가 어디서 자고 있냐고 잠꼬대를 했다고 했다.  


주말 저녁 혼자밖에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쓸쓸했다. 막 차가워지기 시작한 가을 공기 탓이었을까.





퇴근길 바스티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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