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ji Jan 17. 2024

메이드 인 프랑스

파리에서 첫여름과 친구의 웨딩드레스







아뜰리에에 나간 지 2개월쯤 지나서 패션위크 기간이 다가왔다. 우리 아뜰리에에서는 이 당시에 주로 발렌시아가, 꾸레쥬, 스키아파렐리의 샘플과 쇼 피스 제작을 했다. 패션위크 직전에는 일이 많아져서 토요일 출근도 하게 되었다. 토요일 출근을 하면 보스가 점심을 만들어주시거나 사주시기도 했다. 토요일까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뜰리에에 나오면 피곤하긴 했지만, 패션위크에 올라가는 옷이 내 손을 거친다고 생각하면 설렜다. 그리고 쇼 피스들은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을 때도 많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들이 많았기 때문에 배우는 것도 많았고, 내가 손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서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패션위크 기간에는 내가 학생 때 보던 보그런웨이 웹사이트에서 우리 아뜰리에에서 작업한 피스들이 런웨이에 오른 사진을 찾아보곤 했다. 








바쁘게 지내던 날들이 끝나갈 무렵 파리에서 처음으로 맞는 여름이 왔다. 프랑스는 유급 휴가인 바캉스 기간이 일반적으로 3-4주 정도 된다. 7월 중순에 바캉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도시에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이 느껴졌다. 먼저 바캉스를 떠난 사람들로 인해 어학원과 아뜰리에에 빈자리가 생기기도 하면서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파리에서 맞는 여름에 가족들이 여행을 오게 되어서 더 신이 났다. 


여름 바캉스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작업은 친구의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작업공간도 정해지지 않았던 내가 어쩌자고 무턱대고 친구에게 약속을 하고 사이즈를 재서 파리로 왔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간다. 어쨌든 운명처럼 아뜰리에의 보스가 원래의 꿈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였다고 하시며 웨딩드레스 만들기를 지도해주시기러 하셨다. 두 달 동안 보스는 내가 할 일이 끊어졌을 때마다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라고 하셨다. 틈틈이 드레이핑을 하고, 보스는 피드백을 주셨다. 주말에는 같이 몽마르트르에 있는 드레스 원단 가게도 가주셨다. 드레이핑으로 뜬 패턴을 캐드로 옮기고, 출력하는 법도 알려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비록 정식 직원은 아니었지만, 첫 회사에서 정말 좋은 보스를 만난 것 같다. 아마 보스도 큰 대가 없이 매일 아뜰리에에 나와서 일을 열심히 배우고 돕는 나에게 뭐든 해주고 싶으셨겠지, 꿈을 가지고 내 나이에 파리에 왔던 자신이 떠오르기도 하셨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7월이 되어 한국에서 놀러 온 동생이 아뜰리에에 하루 따라와서 웨딩드레스 마무리로 바쁜 나를 대신해 내가 할 일을 도와주었다. 바캉스로 아뜰리에 셔터를 내리기 직전에 웨딩드레스를 완성하기 위해 보스도, 웨딩드레스 봉제를 해주신 마담 J도 서둘러 도와주셨다. 






집에 와서 단추까지 달고 완성했다. 웨딩드레스는 여름 바캉스를 보내고 돌아가는 동생 편으로 한국에 보내졌다.






9월의 아름다운 결혼식. 스물여섯에 나는 파리로 떠나고, 스물다섯의 지윤인 결혼을 했네. 비록 내가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파리에 떠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멋진 드레스는 없었겠지! 발렌시아가를 만들던 손들이 만든 특별한 메이드 인 프랑스 웨딩드레스. 









이전 10화 한 번 알아버린 이상 모를 수 없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