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과 결혼에 회의적이었다. 끝까지 행복한 부부는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들에게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10대가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특별히 연애에 대한 욕망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연애에 대한 욕망은 있었지만 연애할 사람도, 나를 좋아한 사람도 없었고 그런 나에게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한다며 잔소리하던 사람들 때문에 되려 자존심을 부리느라 더욱더 멀리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연애도 결혼도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던 내가 서른두 살이라는, 내 생각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정말 인연이라는 게 있는지 평소에 술을 입에도 잘 안 대고, 술자리라고는 몇 번 가져본 적도 없는 내가 어쩌다 보니 술자리에서 결혼할 사람과 첫 만남을 가졌다. 4년 전, 남편을 연희동의 한 바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정말 괴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너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끌림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시에 남편이 주최하던 철학 세미나에 가게 되었고 그렇게 얼마 뒤 연애를 시작했다. (남편은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하고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서른을 앞두고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해본 연애에 나의 감정과 멘탈은 엄청나게 흔들렸던 것 같다. 웬만하면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는데 남편과 연애 초반 1년 정도는 정말 많이 싸우고 정말 많이 울었다. 길에서 싸우는 커플이 이해가 안 갔던 나였는데 한밤중 길거리에서 울고 소리를 질러보기까지 했다. 신기한 건 싸운다고 이 사람이 싫어지거나 미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나는 남편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웠던 나는 조금 더 정확하고 솔직해졌고, 너무나도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던 남편은 점점 더 따뜻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둘 사이 어딘가에서 만났다.
연애 초반에 나는 한참 진로 고민과 대학원 스트레스에 예민하고 혼란스러워할 때였는데 남편은 그저 그런 위로와 응원이 아닌 본질적인 질문과 팩트 폭행을 하며 옆을 지켜주었다. 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서 마음속에 숨겨두고 조금 더 현실적이고 쉬워 보이는 길을 가려고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며 하루하루를 지내니까 이유 없는 불만과 짜증만 늘었고,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 옆에서 마음을 후벼 파는 말들을 하는 남편에게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 나의 마음에 공감해주지 않는 게 화가 나고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남편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자신의 삶에 있어 비겁하지 않았고 힘든 상황에도 열심히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비겁하게 모든 걸 회피하고 대충, 적당히 살고 있었다.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결심하기까지 1~2년이 걸린 것 같다. 그렇게 남편을 만나고 나는 신기하게도 더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고, 세상을 보다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미래가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