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콘서트를 다녀왔다. 나에게 짙은은 얼굴 없는 가수다. 그는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음악에서 온도와 색채가 느껴진다. 그의 목소리엔 나무의 결이 살아 있다. 나무가 목소리를 가진다면, 짙은과 비슷하지 않을까?
부드럽고 청량하면서도, 때론 소년 같은 푸르름이 살아 있는 소리. 그러나 작은 관목이 아니라, 굵고 튼튼한 뿌리를 가진 아름드리 나무 같은 목소리. 그는 나무의 목소리로 바다를 꿈꾸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짙은 녹음이 귓가에 내려앉는다.
그의 콘서트를 가게 된 건 A의 제안 덕분이었다. A와 나는 여행 메이트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며,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었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고, 선상에서 풍경을 감상하기엔 을씨년스러웠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푸르른 해협을 바라보며 우리는 번갈아 노래를 추천했다. 그때 A는 "요즘 이 노래가 좋더라"며 짙은의 '고래'를 틀었다.
세상에 수많은 노래가 있지만, 몇몇의 마음에 더 깊게 와닿는 노래들이 있다. 그 노래가 일치할 때, 나는 그것을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닷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듯한 전주가 흐르고, 짙은의 목소리가 나올 때 A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내 맘이 내 맘을 다잡지 못하는 날에
더 깊은 곳으로 날 데려갈 때
언젠가 날 울렸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 밤 꿈속에 다시 나를 찾아와"
-고래 , 짙은-
꽤 먼 거리를 달려,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을 뚫고 겨우 도착했다. 음원으로 충분히 좋은데, 직접 가서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스스로 납득시키려 애썼다.
공연이 시작된 지 10여 분이 흐른 뒤, 조심스럽게 입장했다. 단출한 무대가 눈에 띄었다. 기타, 피아노, 마이크가 전부였다. 화려한 무대에 익숙한 나에게 조금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무대 조명은 밤바다처럼 어두웠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어둡고 짙은 조명이 가수를 비추고 있었다. 관객과의 거리는 가까웠다. 객석과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는, 도파민보다는 세로토닌을 추구하는 무대. 소극장 공연의 묘미였다.
1시간 40분 동안 게스트 한 명 없이, 오로지 가수 한 명의 목소리와 하나의 악기로 채우는 공연. 심심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짙은은 무대 위에서 말했다.
"우울한 노래를 계속 부르는데도 관객들이 왜 이리 계속 찾아주시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별이 끝난 후 들이닥치는 슬픔의 파도가 지나고, 짙은 상실감이 마음을 적실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어떻게 삼켜야 할지 잘 모른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손에 쥐려 애써도, 그와 함께 나눴던 짙은 감정들은 시간과 함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결국 남는 것은 희미한 온기와 공허함, 그리고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순간들에 대한 애틋함뿐이다.
짙은은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배경을 그린다.
그 배경은 자연의 거대함을 담고 있고, 따뜻하며 때로는 쓸쓸하다. 청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 각자의 상실을 담담히 마주한다. 이상하게도 도망치고 싶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싶다.
아마도 그의 노래가 상실의 감정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게. 떠내려가지만 길을 잃지는 않게.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있었고, 누군가는 외면했던 감정을 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때 나를 사랑했던 것들과
한 때 나를 지켜주던 눈빛이
한 때 나를 덥혀주던 온기와
한 때 나를 보살피던 그 집이
사라져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주의 저 먼지들처럼
다시 만날 수가 없다네
-사라져가는 것들, 짙은-
이번 콘서트의 제목은 '우연의 음악'이다.
그러나 그 우연이란, 즉흥적인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가능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소화할 수 있는 감각은,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과 깊이 고민한 흔적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니멀한 무대 구성은 그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도록 했고, 가사의 시적 형상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했다.
그의 라이브에는 우연의 진동과 옹이 같은 단단한 심지가 있었다.
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고, 떠내려가지만 길을 잃지 않는 목소리.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래를 들었지만, 저마다의 상실과 저마다의 온기로 이 공연을 채워나갔다.
짙은이라는 한 예술가가 쌓아온 시간과, 관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온 감정들이 겹쳐지는 순간,
우연한 만남이 아름다운 조우가 되었다.
그의 공연은 3월 23일 일요일까지, 꿈빛극장에서 진행된다. 마지막 곡이었던 백야의 가사로 어제밤의 기억을 갈무리한다.
너와 내가 떠난 이 알 수 없는 여행
너를 바라보다 잠이 들었는데
밤이 찾아와도 어둠이 내리지 않는
이 꿈 같은 곳으로 날 데려온 거야
빛나는 하늘과 떨리는 두 손과
나를 바라보는 너의 그 깊은 미소가
난 울지 않을래, 피하지 않을래
어둠 속의 빛으로 넌 내게 머물러
-백야, 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