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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Oct 07. 2017

그리스: 요리를 둘러싼 원조싸움, 기로스

집에서 만들기 좋은 그리스의 스트릿 푸드

기로스, 아니 그리스 요리를 처음 먹어보았던 것은 수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던 때였다.


내가 수업을 듣게 된 대학교에는 이미 그곳으로 유학 온 유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한인학생회가 있었다. 난생처음 밟아본 미국 땅이 어색하고 두렵게 느껴졌던 신입 교환학생들을 맞이하여 친절하게 밥 한 끼를 대접한 이들이 바로 한인학생회 멤버들이었다. 입국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나는 흔한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던 상태. 한인학생회 멤버들이 우리를 이끄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따라나설 뿐이었다. 식당에 도착을 해서 메뉴판을 받아 들고 나서야 그곳이 그리스 식당임을 알아차렸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새하얗게 칠한 벽에서 힌트를 눈치챌 수도 있었을 것을.


혹시 이 식당은 아니었을까? 구글에서 내가 방문했음직한 식당의 이미지를 검색해보았다.


메뉴판을 보아도 도통 모르는 단어뿐이어서 모든 주문은 이곳으로 우리를 인도한 한인학생회 분들에게 맞겨버렸다. 그리하여 각자의 앞에 납작한 빵 하나, 고기 몇 조각, 토마토와 양파가 들어간 샐러드, 하얀 소스가 올라간 둥그런 그릇이 하나씩 놓이게 되었다. 그때는 그 담백하고 동그란 빵이 '피타'이고 하얀 소스가 '차지키'이고 내가 먹은 요리가 '기로'라고 불린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를 연발하며 먹는 일에 집중할 따름이었다. 단순히 '그리스 요리는 이렇구나'하는 인상만을 얻은 채, 나는 하루하루 새로운 수업과 새로운 만남, 언어에 대한 압박이 몰아쳐오는 교환학생 생활 속에서 내가 먹었던 요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전형적인 기로스의 모습. 피타 브래드에 싸인 샌드위치 모양으로 먹는다. -사진출처: greekboston.com


'기로'라는 요리 이름이 내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 학생식당의 신메뉴로 기로가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수업에서 만나 학생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던 여학생이 나의 깨달음에 일조했다. 필리핀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그녀는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펄럭이는 큰 눈이 정말 예뻤다. 눈썰미 있게 샌드위치와 피자, 부리토 일색인 학생식당에 신메뉴가 나타난 것을 알아차린 것도 그녀였다. 주문대 위에 놓인 작은 칠판에 '오늘의 메뉴 - 기로(Gyro)'라고 한 마디가 적혀 있었을 뿐인데 그녀는 그 작은 변화를 용케도 알아차렸다.

 

"기로가 새로 나왔네! 나 이거 좋아해. 정말 맛있거든."

  

그녀의 말에는 나도 덩달아 같은 요리를 주문하게 만드는 강한 확신이 묻어났다. 주문이 끝나자마자 조리대 뒤에서 기로가 조립되기 시작했고, 카운터 끝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금세 갓 나온 기로 한 접시씩을 들고 서게 되었다. 나는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카운터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기로는 원래 그리스 요리인데 이 도시에 그리스 식당이 많아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요리라는 점. 기로라는 요리는 대부분 둥그런 빵에 야채 조금, 고기 약간을 올려서 싸 먹는 요리인데 흰 소스가 빠지면 안 된다는 점, 자기가 생각하기에 그 흰 소스는 요거트로 만드는 것 같다는 점 등. 둥그렇게 싼 기로를 한 입씩 야무지게 베어 먹으며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기로를 좋아하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내가 'gyro'라고 적힌 칠판을 다시 고개돌려 본 후, 이것을 도대체 어찌 읽으면 되냐고, '기로'인지 '지로'인지, '자이로'인지 헷갈린다고 물은 것은 그녀의 설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녀는 큰 눈을 잠시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다른 사람들은 '자이로'라고 많이 부르던데 나는 왠지 '기로'일 것 같아서 기로라고 불러"라고 대답하고는 야무지게 기로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몇 년이 지나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의 추측이 거의 맞았다.


영어로 '기로(gyro)'라고 적는 그리스어 단어는 'Γύρος'인데 'γύρος'라고도 표기하기도 한다. 그리스식으로 읽으면 기로스 혹은 이로스라고 읽게 되며, 이 차이는 그리스어의 'Γ(로마자로는 G)'의 애매한 발음 때문에 생긴다.  'Γ(γ로도 표기)'는 감마(gamma)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알파벳인데,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발음하는 알파벳이다. 대체로 영어의 'g'또는 'y'와 유사하게 발음된다. 'g'와 'y' 모두 연구개(혀의 뿌리 쪽, 입천장 뒤쪽의 말랑한 부분)에서 나는 소리이기 때문에 음성학적인 관련성이 깊다. 다만 나의 친구가 이 요리를 '기로스'가 아닌 '기로'라고 지칭한 것에는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영어 화자들은 'Γύρος'의 끝에 붙는 'ς(s와 비슷한 발음)'를 복수형(plural)의 's'라고 어림짐작하며 떼어버리고 'gyro'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단순한 오해의 소치이다. 'Γύρος'의 'ς'는 복수형을 나타내는 표지가 아니기 때문에 원래는 's'소리를 붙여 'gyros'라고 표기하고 읽는 것이 적합한 해석이라고 한다.  


그런데, 'gyro'를 '자이로'라고 읽는 미국인들도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있다. 영어 화자들이 'gyro'를 '자이로'로 읽는 것은 필시 이들에게 익숙한 '자이로드롭(gyrodrop)'이나 '자이로스콥(gyroscope)'과 같은 단어를 바탕으로 추론을 한 결과물일 터이다. 이 단어들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접두어 'gyro-'는 '돌다(또는 돌리다, turn)'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Γύρος(gyros)'에서 유래했다. 어디서 많이 본 단어 아니던가? 바로 오늘의 요리 기로스와 동일한 단어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로스'라는 요리는 '돌다(turn)'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기로스'에서 그 이름을  따온 요리이며 그 단어는 영어 단어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다. 단지 영어의 철자 읽기 방식이 그리스의 읽기 방식과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왜 요리에 '빙글빙글 돌다(기로스)' 따위의 이름을 붙인 것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사연이 있다.


첫 번째 사연은 조금 단순하다. 바로 이 기로스의 요리법이 '빙글빙글 도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과 요리법의 관련성으로 보자면 한국요리 중 '주물럭', '비빔', '범벅' 등의 요리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다. 기로스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면 이 '빙글빙글 돌다'가 한 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기로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인 몸뚱이의 절반 길이가 넘는 기다란 쇠꼬챙이가 필요하다. 이 꼬치에 고기 덩어리를 끼워서 전기구이 통닭을 익히듯 로티서리 기계에서 고기를 천천히 익힌다. 특이한 점은 기로를 만들 때는 얇게 저며 양념한 고기를 꼬치에 끼워가며 켜켜이 쌓아서 덩어리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통돼지 구이나 통닭구이처럼 고깃덩이를 통째로 사용하는 로티서리 바비큐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얇게 저민 고기를 꼬챙이에 끼운 채로 쌓아 만드는 기로스. 다 익은 고깃덩이를 긴 칼로 잘라서 피타빵에 끼워 먹는다. -사진출처: (좌) greekboston.com (우) greekfood.about.com



그런데, 위와 같은 고기 샌드위치를 '기로스'가 아닌 또다른 이름으로 이미 접해본 이가 많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거의 유사한 모양새의 터키 요리가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로스라니, 이태원에서도, 명동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는 '되너 케밥'과 같은 요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바로 이 의문에 '기로스'라는 명칭에 대한 두 번째 사연이 숨어있다. 이 요리에 '기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는 고의적인 의도가 작용한 결과물이다. '기로스'라는 이름의 요리가 탄생하게 된 두 번째 사연은 오스만 제국의 흔적을 떨쳐버리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욕망과 관련이 있. 원래 이 요리를 '도네(ντονέρ, doner라고 발음함)'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그리스인들은 요리의 이름이 '너무 터키식'이라고 비판하며 그리스어로 된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는데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선택된 이름이 터키어 '되너(döner)'의 '빙빙 돌린다'는 뜻을 그대로 그리스어로 번역한 '기로스'였다. 이렇듯 외래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 차용하는 것을 어의 차용어(Calque 또는 loan translation)이라고 부른다. 어의 차용어의 존재는 그 단어가 외국어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음을 의미한다. 한국어의 대표적인 어의 차용어에는 벼룩시장과 마천루가 있다. 각각 영어의 'flea market'과 'skyscraper'의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여 빌린 단어인데, 영어의 'flea market' 또한 프랑스어의 'marché aux puces(market with fleas라는 뜻)'이라는 어구를 그대로 번역한 어의 차용어라는 점이 재미있다.

             

그리스인들이 이미 존재하는 요리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가며 애써 요리에 이미 덧씌워진 터키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 요리의 원조가 과연 어느 나라인지가 잘 드러나게 되었다. 더 자세히 찾아보자면,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것은 1830년의 일이고, 얇게 저민 고기를 켜켜이 쌓아 세로로 세운 상태에서 익히는 되너 케밥이라는 요리가 세상에 알려진 것 또한 1830년 정도의 일이다. 한편, 고기를 켜켜이 쌓아 이를 가로로 눕혀 화덕에서 굽는 요리인 Cağkebabı 는 이보다 백 년 정도 앞서서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신생 국가인 그리스에서 이 요리가 개국과 동시에 번쩍 생겨났다기보다는 오스만 제국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요리(되너 케밥)가 그리스가 독립을 한 이후에도 그리스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그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이름(기로스)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좌) 되너 케밥과 유사하지만 고기를 가로로 눕혀 화덕에 익히는 Cağkebabı -사진 출처: 유튜브

(우) 되너 케밥을 찍은 최초의 사진. James Robertson, 1855.



이에 대한 반박으로 혹자는 1800년대 이전에 그리스라는 나라와 문화가 이미 존재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응하자면, 이러한 반박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인 정황을 내세우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대 도시국가의 연합 '그리스'가 사라진 이래로 1830년에 세워진 근대국가 '그리스 왕국'이 탄생하기까지, 그 사이의  '그리스'라는 국가는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이어진 그리스 독립전쟁의 결과로 그리스 왕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그리스'는 실존하는 국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지도상의 한 지역 또는 지나간 고대국가의 이름이었다. 로마제국을 거쳐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시기까지 그리스는 (동)로마 제국의 지역 중 하나였으며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서 '이전에 로마였던 지역'이었다.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스만 제국에 그리스 지역에서 '그리스 민족 국가'에 대한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을 위시로 세계 각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기 시작했던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라는 문장도 사실상 문제가 있는 문장이 된다. 오스만 제국이 복속시킨 것은 동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의 신민들이지 그리스와 그리스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그리스와 터키는 역사적 앙숙인 동시에 수많은 요리의 원조를 두고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두 나라 간에 공유하는 유사한 요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진 그리스 요리의 전통이 사실상 지중해 요리의 근간을 마련했음을 주장한다. 터키인들은 그리스인의 조상들은 오스만 제국의 백성이었으며 이들이 오스만 제국의 요리를 그대로 빌려왔다고 반박한다. 딱 잘라 어느 쪽의 편을 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터키와 그리스가 공유하는, 이름만 다르고 내용물은 동일한 요리의 경우에는 대체로 터키의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잦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요리의 원조를 따지는 것은 극도로 예민하고 복잡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 내가 다루고자 하는 요리가 '그리스의 기로'인 만큼 오늘만은 살짝 그리스의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뿐이다.



[추천 동영상]

터키 요리와 그리스 요리 간의 공통점에 대한 재미있는 동영상이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인은 그리스의 거리를 함께 걸으며 터키 요리와 그리스 요리 간에 비슷한 요리가 엄청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쉼 없이 마주하게 된다.


Turkish Cuisine vs Greek Cuisine

https://www.youtube.com/watch?v=p_gzGmQsnXY




1. 그리스의 요리와 요리 재료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인 만큼 그리스의 요리는 오늘날 지중해 유럽 요리의 기초를 마련한 요리로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의 요리는 밀, 올리브유, 와인을 기초로 하였으며 기후와 지형의 특성상 소고기보다는 염소고기나 양고기, 물고기를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아직까지도 지중해 요리의 핵심이 되는 요소들이다. 비잔틴 제국 시기에는 향신료 문화가 발달했다.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전 세계 향신료 교역의 허브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경험은 오늘날 그리스 요리가 터키 요리와 비슷한 특징을 공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을 통해 그리스에 자리 잡은 식문화에는 바클라바와 같이 필로(filo) 페이스트리를 이용한 디저트, 포도잎, 피스타치오, 요구르트 등이 있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이름이 유사하거나 요리법이 동일한 요리가 있다면 그것은 필시 이 시기 활발히 일어났던 문화교류의 흔적이다.



 -건조 허브: 로즈메리, 오레가노, 타임, 바질, 민트, 파슬리


               

-시나몬(cinammon), 넛멕(nutmeg):

디저트(바클라바)는 물론 요리(무사카 등)에도 많이 사용된다.


- 큐민(cumin):

영원한 앙숙인 터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까, 그리스 요리에는 중동요리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중동의 대표 향신료인 큐민은 그리스에서 유명한 기로(gyro)를 만들 때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그릭 요거트(Greek yogurt):

몇 년 전부터 그릭요거트 바람이 불어 한국에서도 그릭요거트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간식이나 간단한 식사로 식용할 뿐 아니라 그리스의 대표 소스인 차지키(tzatziki)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재료이다. 차지키는 그리스식 고기구이인 수블라키를 먹을 때 빠질 수 없는 소스이다.


-레몬(lemon):

단순히 신맛과 향을 더할 뿐 아니라 아브고레모노 소스(달걀노른자와 레몬즙을 섞어 만든 소스 avgolemono) 등 소스를 만드는 데에도 활용된다.


-페타치즈(feta cheese):

염소젖으로 만든 단단한 치즈로 그리스인들의 식사에 빠질 수 없는 치즈이다. 그릭 샐러드의 주재료이다. 아주 단단해서 손으로 누르면 부스러지며 한국에 수입되는 것들은 대부분 아주 짜다.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고 물기를 닦아내서 적당한 염분기를 맞추고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필로(filo) 페이스트리:

얇은 밀가루 반죽이 겹겹이 쌓여있는 페이스트리지로, 일반적인 페이스트리지보다도 훨씬 얇고 바삭하다. 필로 페이스트리를 사용한 요리로는 바클라바,  페타 치즈와 시금치를 감싼 파이(spanakopita), 그리스식 치킨 파이가 유명하다. 구하기 어려우므로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베이킹이 보편화되지 않은 한국의 여건상 이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2. 기로스 레시피



미남 그리스 요리사 'Akis'의 유튜브 페이지를 뒤지던 이 '기로스' 레시피에 꽂히게 되었다. 기로스라면 당연히 거대한 쇠꼬챙이에 수십 킬로의 고기를 켜켜이 쌓아 만드는 '업소용 요리'인 줄 알았건만, 양념한 고기를 프라이팬에 익혀 만드는 간단한 가정식 조리방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프라이팬을 이용하여 오븐 없이 만드는 피타 브래드를 곁들이면 가정에서도 충분히 그리스식 식사를 마련할 수 있다. 얼굴은 부리부리 강렬한 지중해 미남인데 말투는 어딘가 방정맞은 Akis의 레시피를 믿고 따르기로 한다.


[참고한 레시피 동영상]

Greek Chicken Gyro | Akis Kitchen

https://www.youtube.com/watch?v=VO-yxB3oTOI



[요리 재료]


<마리네이드 재료>

-코리앤더 씨드 1 Tbsp (없어서 생략. 펜넬 씨드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코리앤더 씨드가 없다면 펜넬 씨드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레몬 제스트(생레몬의 껍질을 강판에 간 것. 없어서 생략)

-다진 마늘 1~2알

-파프리카 파우더 2 Tbsp

-칠리 플레이크 또는 고춧가루 취향껏

-말린 타임 1 Tbsp

-올리브 오일 60ml

-레몬 반 개 정도의 레몬즙

-소금 약간


<고기 재료>

-600g 정도의 닭다리살 또는 닭가슴살 (나는 닭가슴살 4조각을 사용했다)



[조리법]


1) <마리네이드 재료>를 절구에 넣고 잘 빻아준다. 절구가 없으면 그냥 섞어도 무방하다.




2) (1)에 올리브 오일, 레몬즙, 소금 약간을 넣고 섞어 준다.




3) 닭다리살이나 닭가슴살은 1 cm 두께로 얇게 저민다.


4) (3)의 닭다리살을 (2)의 마리네이드와 잘 섞어서 냉장고에서 재운다. 적어도 20분, 길면 하룻밤까지 재워준다.



5) 뜨겁게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마리네이드 한 닭고기를 올려서 굽는다.



*겉면이 갈색으로 잘 익은(brownized) 치킨 기로를 요리하기 위한 팁:


- 불은 닭고기가 바싹 타버리지 않을 정도로 강불을 유지한다.


- 절대로 자주 뒤집지 않는다. 아랫면이 짙은 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그때 뒤집어 다른 면을 동일하게 익히고 양면이 고루 익었으면 팬에서 꺼낸다.


- 프라이팬에 한 번에 너무 많은 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한 번에 고기를 너무 많이 구우면 팬의 온도가 급격하게 낮아져서 고기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삶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강한 불에 빠르게 바싹 익히는 것이 포인트.


- 양념을 한 고기를 구울 때는 되도록이면 테팔 같은 코팅 팬보다는 스테인리스 팬이나 무쇠 팬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양념이 타기 쉬운데, 이 양념을 벗겨내며 씻을 때 코팅이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코팅이 벗겨진 테플론 팬은 암 유발 성분을 방출한다.


만약 스테인리스 팬을 이용한다면, 반드시 표면이 매끄러운 상태에서 요리를 할 것이며 예열을 잘하도록 한다. 예열을 잘 했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고기가 눌어붙을 수 있는데, 고기가 다 익으면 저절로 팬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므로 섣불리 떼내지 말고 고기가 다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두 번에 걸쳐서 닭가슴살 세 조각 분량을 다 구웠다. 한 조각 분량은 내일 다시 구워 먹기 위해 남겨두었다.





미리 만들어둔 그릭 샐러드와 피타 브레드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만찬이 완성되었다.

(피타 브레드와 그릭 샐러드 레시피는 다른 매거진에 있으니 필요시 참고할 것. 그리 어렵지 않다)


레시피에 있는 코리앤더 씨드를 펜넬 씨드로 대체했지만, 팬넬 씨드 자체의 향이 다른 마리네이드 재료와 잘 어울려서 충분히 지중해의 향이 난다. 닭고기의 표면은 노릇 노릇 바삭하게 잘 익었지만 속은 아직 부드러워서 식감과 맛이 뛰어나다. 상큼한 그릭 샐러드, 담백한 피타 브레드와 찰떡궁합이다.



피타브레드는 이렇게 가운데를 벌려서 고기와 채소를 담아먹기 딱이다. 차지키도 미리 만들어둘 것을, 그릭요거트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따로 준비하지 못하였다. 사실 차지키 없이도 훌륭하고 맛있는 조합이기는 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멤버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먹는 이의 입장에서는 원조이니, 필수이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왕왕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입맛에 잘 맞아 나를 행복하게 해주면 그만인 그런 상황들이다. 유사한 관점에서 미국과 독일에서 기로스와 되너 케밥이 각각 어떻게 자리를 잡았나를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스인들이 일찍이 이주하였던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아테네에서 스트릿 푸드로 기로스의 인기가 치솟았던 시기와 거의 맞물려 기로스가 각광받고 있었다. 현대적 생산 시스템의 최첨단을 달리던 국가였던 만큼, 1970년대 중반에 이미 밀워키에 기로스 대량 생산 공장이 들어서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기로스에 열광하던 미국인들은, 중동 이민자가 조금씩 증가하면서 케밥이 전파되기 시작하자 이 케밥 또한 주요 스트릿 푸드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반대로 터키 노동자가 물밀듯이 이주하였던 독일에서는 케밥이 스트릿 푸드로서 핵심적인 위치를 선점하였다.




두 나라의 상황에서 공통점인 사실 한 가지. 맛있기만 하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이는 별생각 없이 기꺼이 새로운 요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당사자들의 자존심을 건 원조싸움은 오롯이 당사자들의 몫인 셈이다. 나머지 세계는 맛있는 요리를 즐기며 강건너 불구경할 따름.






[참고한 사이트]

Gyro (food)

https://en.wikipedia.org/wiki/Gyro_(food)

Doner kebab

https://en.wikipedia.org/wiki/Doner_kebab

Cağkebabı

https://en.wikipedia.org/wiki/Ca%C4%9F_kebab%C4%B1

Calque

https://en.wikipedia.org/wiki/Calque

History of Greece

https://www.ahistoryofgreece.com/turkish.htm

Greek–Turkish relations

https://en.wikipedia.org/wiki/Greek%E2%80%93Turkish_relations

Greek War of Independence

https://en.wikipedia.org/wiki/Greek_War_of_Indepe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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