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기억하는 식민의 역사
스페인을 여행한다면 무엇을 꼭 먹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스페인을 꿈꾸는 여행자라면 백이면 백 '빠에야(Paella)'를 빼놓지 않겠노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스페인의 관광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리 또한 빠에야이다. 마드리드의 광장에서도,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에서도, 세비야 대성당 주변의 골목에서도, 그라나다 그란비아 거리 뒷골목의 식당가에서도, 스페인어에 익숙지 못한 관광객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각종 빠에야 사진을 큼지막하게 달아놓은 빠에야 식당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좋은 길목에서 상큼한 상그리아(sangria) 한 잔을 곁들여 먹는 해산물 빠에야 한 판, 얼마나 스페인스러운가! 나 또한 이 달콤한 상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행자였다. 지난 여름 스페인을 여행할 때의 목표 중 하나가 '적어도 세 종류 이상의 빠에야 먹어보기'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계의 관광객들이 스페인을 찾으며 그리는 친숙한 풍경과는 상반되게도, 정작 스페인 사람들은 빠에야를 '국민 요리(national dish)'로 보지 않는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빠에야는 스페인 전체를 대표하는 요리가 아닌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요리(regional dish)'이기 때문이다. 빠에야가 대표하는 그 '특정 지역'은 바로 스페인의 동남부에 위치한 발렌시아(Valencia)이다. 발렌시아는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쌀을 들여온 이래로 빠에야의 핵심 재료 두 가지, 쌀과 샤프론이 대규모로 생산되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좌) 스페인의 동남부에 위치한 발렌시아 지역. (우) 발렌시아의 논밭. (사진출처: 위키 커먼스, www.spainuncovered.net)
이 발렌시아 지역의 농부들이 힘든 노동 중 새참 삼아 양껏 만들어 나누어먹던 요리가 빠에야의 시초이다. 이들은 야외에서 화덕을 만들고 불을 피워 크고 납작한 원형 팬을 불 위에 올린 후, 닭고기, 토끼고기, 달팽이, 콩 등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하나 둘 모아 지역 내에 넘쳐나는 쌀에 샤프란을 더해 익혀먹었다. 이러한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발렌시아 지역에서는 휴일이나 주말에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 빠에야를 짓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주말이 되면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손수 화덕불을 지펴 커다란 팬에 빠에야를 만들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무주걱을 들고 자신이 먹을 만큼의 빠에야를 팬에서 덜어 담는 그런 가족적인 풍경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곳이 바로 발렌시아이다.
이렇듯 가족과 둘러앉아 화덕에서 갓 지어낸 빠에야를 나누어먹는 전통은 발렌시아 고유의 문화로 여겨진다. 바꾸어 말하자면, 발렌시아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가족과 나누어먹는 빠에야에 대한 추억이 희박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남한의 5배에 달하는 영토를 가진 스페인은 한국의 그것보다 강력한 지역 간의 격차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다. 스페인 왕국의 성립 이전에는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라 왕국 등 문화와 언어가 분리된 별개의 국가들과 소수민족 세력이 국경선을 맞대고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21세기에 와서도 '스페인'이라는 통일된 국가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스페인의 입맛을 통일하는 '대표 국민 요리'가 존재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수업을 통해 면식이 있는 스페인 출신 셰프에게 스페인의 국민 요리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음식을 먹고 즐기는 데에 관해 스페인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방식이나 태도(Spanish style of eating)는 있을지언정 특정 요리를 스페인 전체를 대표하는 요리로 꼽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몽, 치즈,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등 몇몇 후보의 이름이 언급되었지만 이들 역시 지역적인 대표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류되었다. 이렇듯 빠에야는 대외적으로는 스페인의 대표 요리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국민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과연 빠에야를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합당한 것일까? 이에 대해 스페인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다.
빠에야(paella)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이 빠에야를 정의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빠에야(paella)라는 이름이 화덕불에 올려서 대량으로 밥을 짓는 데 사용하는 널찍하고 납작한 팬에서 비롯했다는 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틴어에 '요리에 사용하는 넙적한 팬'을 의미하는 '파텔라(patella)'라는 단어가 존재하는데, 이것이 빠에야 팬과 요리 모두를 일컫는 단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빠에야의 어원에 대한 또 다른 설은 '남은 음식(leftovers)'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 'baqiyah'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아랍어이든 라티어이든 그 어원이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노동자들 여럿이 모여 간편히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먹던 소박한 즉석요리가 빠에야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쯤의 일이니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세기로 들어서는 문턱에서는 현대적인 운송과 물자 수송이 가능해지면서 발렌시아의 쌀이 스페인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빠에야를 아는 사람들의 수가 조금 더 늘어났다.
그렇다면 빠에야가 지금과 같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과연 언제부터였을까? 흥미롭게도, 빠에야의 발전과 확산을 스페인 관광산업의 발전과 연계하여 분석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수많은 지역 향토 요리 중 하나였던 빠에야가 스페인이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관광객을 위한 요리로 스페인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랜 기간 이어졌던 프랑코 독재가 끝나갈 무렵은 스페인이 전 세계인이 찾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입을 벌린 홍합을 가득하고 샤프론의 황금빛이 입맛을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빠에야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요리로 급부상하였다.
스페인의 관광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마음이 바쁜 관광객들의 사정과 신속한 회전율 및 이윤 창출은 목표로 하는 장삿속이 어울려 전통적인 발렌시아식 빠에야 레시피가 왜곡되고 변형되기 시작했다. 생산지에서도 고급 재료로 여겨지는 샤프란은 자연히 강황이나 노란 식용색소로 대체되었고, 조리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대량으로 만들어둔 빠에야를 조금씩 덜어서 판매하는 식당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렇든 '가짜 빠에야' 또는 '관광객을 현혹하는 빠에야' 식당이 늘어나는 풍토 속에서 마침내 '빠에야 도르(Paellador)'라는 굴지의 인스턴트 빠에야 체인이 등장하였다. '빠에야도르'의 빠에야는 한국의 냉동 볶음밥과 비슷한 형태로 유통되는 인스턴트식품이다. 빠에야도르 체인식당은 이 인스턴트 빠에야를 조리하여 손님의 식탁에 올린다. 냉동 볶음밥을 데워 빠에야 팬에 옮겨서 파는 형태인데, 그야말로 인스턴트 냉동밥이 전통음식으로 둔갑하여 관광객을 현혹하는 행태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공공연한 사실을 알고서 빠에야도르를 피하고, 이러한 진실을 까맣게 모르는 관광객들만 저렴한 가격에 매료되어 문전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다.
그런 반면, 인지도 높은 자국의 요리가 관광업과 맞물려 왜곡되어가는 현실을 참지 못하는 스페인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은 먼저 스페인 각지에 빠에야를 제대로 만드는 식당이 별로 없다는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관광객을 상대로 엉터리 빠에야를 내놓는 뜨잡이 식당을 강하게 비난한다. 또한 이들은 남을 속이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 일반 스페인 사람들조차 정통 빠에야 레시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들이 인정하는 정통 빠에야 레시피는 빠에야의 진정한 고향, 발렌시아의 그것이기 때문에 발렌시아 밖의 사람들이 빠에야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통성 있는 발렌시아 스타일의 빠에야를 만들기 위해서 지켜야할 조건이 여럿 존재한다. 직경 얼마 이상의 빠에야 팬과 화덕불을 이용함이 바람직하다. 해산물보다는 닭고기, 토끼고기, 콩 등을 넣을 것이 추천된다. 리조토나 볶음밥과는 달리, 팬에 올린 쌀이 자리를 잘 잡으면 절대 주걱으로 이를 휘저어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빠에야에 대한 우려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컸던 덕일까, 마침내 '순수한 빠에야'를 보존하고 발렌시아 정통 빠에야 레시피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위키 빠에야(wikipaella)'라는 사이트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빠에야 레시피를 준수하는 식당들을 발굴, 정리하여 홍보하는 것 또한 이들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이다. 그 이름을 굳이 한국어로 옮기자면 "빠사모" 또는 "빠에야보존번영회" 정도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흥미로운 점은, 빠에야를 보존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요리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전통 요리'의 본질과 대치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요리(traditional food)란 주로 오랜 시간 동안 세대를 걸쳐 전승되며 집단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요리를 일컫는다. 긴 세월 동안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수되기 때문에 잘 알려진 전통 요리는 그 레시피가 다양하기 이를 데가 그지없다. 어떤 레시피에서는 특정 재료가 쓰이는 반면 다른 레시피에서는 동일한 재료가 쓰이지 않으며, 조리순서나 조리방법도 제각각이다. 한국의 된장찌개를 떠올리면 통상적인 전통 요리의 개념이 단번에 이해될 것이다. 감히 어느 누가 된장찌개의 레시피를 일률적으로 결정(dictate)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빠에야는 전통과 현대, 자연스러움과 인위성의 가운데에 놓인 애매한 요리로 볼 수 있다. 빠에야가 진정한 전통요리라면, 각 가정마다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연속적인 스펙트럼에서 어느 한 지점을 오리지널로 추출해내는 과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계마다 전승되는 방식이 다르고 그에 대한 사연도 각양각색 일터, 그 어느 누가 손을 들어 원조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원조싸움'이 기승을 부리는 요리는 대부분 현대의 요리라는 사실이 이를 증빙한다. 예를 들어, '된장국'의 원조나 '고추장'의 원조를 두고 싸우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기름 떡볶이'나 '부대찌개' 따위의 음식을 두고 붙어선 식당끼리 원조를 따지는 일은 현재까지도 왕왕 발생하고 있다.
물론 발렌시아 지역 내에서 나름의 역사를 갖고 100년 이상 전승되어온 발렌시아 빠에야를 기껏해야 50~6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전후 한국의 외식요리들과 비교하는 일에는 상당한 비약이 존재한다. 발렌시아 지역에만 한정한다면 확실히 빠에야는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문화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렌시아를 벗어나 현대 관광업의 잇속 챙기기로 인해 무너져가는 빠에야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빠에야의 레시피를 '이러이러한 것'으로 한정 짓는 순간, 빠에야는 자연적인 전통에서 현대의 인위로 빠져드는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들어버린다. 그것이 참으로 애매한 것이다.
한편, 관광객이 눈에 불을 켜고 맛보려 하는 스페인의 빠에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국요리가 하나 있다. 바로 전주비빔밥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갖가지 색깔의 고명을 올려 화려하기 그지없는 전주비빔밥은 어느덧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반드시 맛보아야 하는 코스로 자리 잡았다. 올라가는 재료도 범상치 않다. 육회, 은행, 잣, 표고버섯, 고사리나물 등 고아한 향취가 묻어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재료가 색동저고리처럼 차곡차곡 색을 개켜서 흰쌀밥 위에 다소곳이 놓인다. 새우며 홍합 같은 각종 해산물이 뽐내듯 의기양양하게 올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빠에야 한 판처럼 보기 흐뭇한 모양새이다.
한국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 전주비빔밥과 빠에야.
하지만, 전주비빔밥을 한국의 대표 요리로 꼽기에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길 이들이 많을 듯하다. 한국인의 식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삼기에는, 전주비빔밥이 지나치게 지역중심적이고 비일상적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집에서 전주비빔밥을 직접 만들어먹어 본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 또한 부담스럽기 그지없어서, 은행이나 잣, 소고기 같은 귀한 재료와 십 수 가지의 나물을 한꺼번에 준비할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과거에도 그렇고 근래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주비빔밥의 본고장, 전주 사람들조차 지인들이 전주를 방문할 때에나 마지못해 전주비빔밥을 사 먹으러 나갈 정도. 결국 전주비빔밥은 '전주'라는 지역브랜드를 입은 외식요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전주비빔밥보다는 남는 반찬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비벼먹는 소박한 나물 비빔밥이, 또는 저녁식사의 상징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것이 한국인의 식사를 대표할 수 있는 장악력과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전주비빔밥이 과연 전통적인 요리인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이 있었다. 음식 역사연구로 명성이 높은 주영하 교수에 따르면, 육회에 갖은 고명을 얹어 현재의 전주비빔밥처럼 '고급화'된 비빔밥은 1950년대에 개발되었고, 이것이 전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 활발해진 백화점의 지역 향토요리 소개 행사를 통해서라고 한다. 이에 앞서 1930년대에 전주의 남문시장에 비빔밥을 판매하는 간이식당이 존재했다고는 하나 '간이'식당인 관계로 놋그릇에 담긴 화려한 비빔밥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결국 비빔밥, 또는 그와 유사한 요리에 대한 기록은 이전에도 존재하지만, 현대의 전주비빔밥과 동일한 음식은 적어도 1950년대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했을 때, 한국인의 식탁을 대표할 쟁쟁한 후보가 허다한 상황에서 굳이 전주비빔밥이 관광안내 책자 속의 대표 요리로 안착하게 된 사연에는 모종의 인공적인 의도가 작용하였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필시 전주비빔밥의 화려한 외양과 결부된 사연일 것이다. 88 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전주비빔밥이 한국 전통요리로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혹은 점점 확실해진다.
스페인 전역에 걸친 급속한 빠에야의 확산을 두고 전주비빔밥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입김만큼이나 인공적인 조류가 있었으리라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빠에야를 모르던 지역 곳곳까지 해산물을 올린 빠에야 식당이 늘어서게 된 현실에는 아무래도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 문화 전반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이 대단했던 현대 한국의 상황과는 달리, 지역 자치성이 강한 스페인 사람들이 정부의 빠에야 홍보에 동조하여 어느 순간부터 발렌시아의 빠에야를 전통요리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리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관광인구의 유입과 빠에야의 유행이 그 궤를 함께 한다고 보는 시각이 더 자연스럽다. 결국 '이러이러함을 전통으로 규정함'을 내세우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 특정지역의 요리가 전 민족의 요리로 둔갑하여 관광객들에게 판매되고 있다는 점, 일반적인 인식보다는 그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빠에야와 전주비빔밥이 공유하는 주된 특징들이다.
한편, 빠에야가 현대의 관광객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통요리들과는 달리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국가의 식문화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빠에야가 발렌시아에서 그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가 19세기 중반, 근대와 현대 사이의 요리인만큼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에 스페인 제국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시기과 시간차가 존재한다. 오랜 기간 빠에야가 스페인 국민 요리가 아닌 발렌시아의 지역 전통요리로서의 소박한 지위를 유지해왔던 사실도 이와 결부되어있다. 식민지를 개척하던 이들이 스페인 사람과 스페인의 문화를 배로 실어 나르며 식민지(植民地)에 이식(移植)시키던 결정적인 시대에, 지역요리에 불과했던 빠에야는 당시 이주민들 사이에서 그 입지가 미미했던 것이다.
빠에야는 식민지의 가정요리로 보편성을 얻는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식민지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스페인 태생의 요리는 수두룩하다. 오히려 과거 스페인 요리문화에서 중요했던 고색창연한 요소들이 현대까지도 전수되고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 예로부터 존재하던 '토르티야(tortilla, 작은 케이크라는 뜻)'라는 요리는 원주민들이 옥수수나 밀로 만든 전병의 새로운 이름으로 그 형태를 바꾸어 신세계에 뿌리를 내렸다. '토리티야 피자'나 '부리또'에 쓰이는 토르티야는 본디 남미 원주민들이 고대부터 섭식하며 '틀라슈칼리(Tlaxcalli)'라고 부르던 뿌리 깊은 전통요리였다. 이 복잡한 이름에 아무래도 익숙해질 수 없었던 스페인의 이주자들이 틀라슈칼리의 둥그런 모양에 착안하여 '우리가 먹는 토르티야와 닮았다'라고 주장하며 그 이름을 교체해버린 결과가 오늘날의 토르티야이다. 한편, 당시 이주민들이 틀라슈칼리를 보고 떠올린 또르띠야는 '감자 오믈렛'으로서의 토르티야보다는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먹던 병아리콩 팬케이크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곱게 다진 야채를 볶아서 요리의 베이스를 만드는 '소프리토(sofrito)'라는 스페인의 오래된 조리법 또한 신세계의 식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의 소프리토는 요리의 시작 단계에서 채소를 잘게 다져 기름에 볶아 맛을 끌어올리는 요리의 과정 또는 그 결과물을 의미한다. 스페인의 소프리토에 자주 등장하는 채소에는 양파와 파프리카, 마늘, 토마토가 있는데 신대륙 태생의 토마토가 소프리토에 합류하게 된 시점은 아무래도 다른 재료의 합류 시점에서 한참 뒤의 일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요리에 빠지지 않는 미르푸아(Mirepoix: 양파, 당근, 샐러리를 사용)나 아라비아따 파스타의 기본 단계로 여겨지는 이탈리아의 소프리토(soffritto: 파슬리, 양파, 마늘, 당근, 샐러리 등을 사용)가 그 사촌뻘이 되는 요리법이다. 스페인의 어머니들은 예로부터 이 소프리토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며칠 동안 병에 보관하며 요리를 할 때마다 덜어내어 사용한다고도 한다.
중세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요리법은 식민지에서 많은 요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단계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했다. 수백 개의 달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레시피가 '소프리토를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원조'인 스페인보다 한술 더 뜬 열렬한 집착이 수세대를 걸쳐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푸에르토 리코의 레까이또(recaito)와 도미니칸 공화국이 사쏜(sazón)이 소프리토의 살아 숨 쉬는 계승자로 꼽힌다. 머나먼 필리핀 땅에서도 잘게 다진 마늘 와 양파, 토마토를 볶는 요리법이 기니사(ginisá)라는 이름으로 전수되고 있는데, 콜롬비아의 유사한 요리법인 기소(guiso)와 이름이 유사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육류 보존방법 중 하나였던 아도보(adobo) 또한 신세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아도보는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박테리아를 쫓아내는 성질을 지닌 파프리카와 식초를 사용하여 고기를 마리네이드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냉장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 스페인에서의 아도보는 육류의 보존보다는 맛을 위해 이따금 사용하는 고색창연한 기술이 되어버렸다. 한편, 본토인 스페인보다는 푸에토리코와 페루에서 아도보는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 예로, 필리핀의 아도보는 요리의 방법이 아닌 식초와 간장으로 만든 소스에 조린 고기 요리를 일컫는데, 한국의 불고기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을 대표하는 요리이다. 식초가 사용된다는 점은 스페인의 아도보 조리법과 유사하다. 따라서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요리가 아닐까 추측을 하기가 쉽지만 필리핀의 아도보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이전부터 별도로 발달한 필리핀 고유의 요리라고 한다. 다만 식민지배 이후로 본래의 명칭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스페인 지배자들이 '우리 아도보와 비슷하군'하고 억지로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둥글넓적한 팬을 사용해야 하고 달팽이, 샤프란 등이 사용되어야 하는 정체성으로 인해 유연하지 못했던 빠에야와는 달리, 빠에야의 선배 격 되는 쌀요리 하나가 대서양을 건너 라틴 아메리카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 푸에토리코와 콜롬비아, 페루에서 국민 가정요리로서 오늘날까지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요리이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는 오래전에 끝났으나 요리에는 죄가 없다고 했던가,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요리, 바로 '아로스 꼰 뽀요(Arroz con Pollo)'가 바로 그것이다. 이름 그대로 쌀(arroz)과 닭고기(pollo)를 함께(con) 넣어 만든 쌀요리의 일종이다.
콜롬비아식 아로스 꼰 뽀요(좌)와 쿠바식 아로스 꼰 뽀요(우) (사진 출처:http://www.colombia.com, http://www.quericavida.com)
누군가는 샤프란을 넣어 노란빛을 띄는 쌀밥을 보고 대체 아로스 꼰 뽀요와 빠에야가 대체 얼마나 다른 요리인지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실로 아로스 꼰 뽀요와 빠에야 사이에는 공통되는 특징이 많다. 요리의 시작 단계에서 양파와 마늘, 토마토로 소프리토를 만들어 풍미를 살린다던가, 쌀과 샤프란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둥글넓적한 빠에야 팬을 사용하고 어떤 재료를 올리는지에 대한 공공연한 규격이 존재하는 빠에야와는 달리, 아로스 꼰 뽀요에는 별다른 규격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아로스 꼰 뽀요는 철저히 가정적이고 보편적인 요리라서 지역마다, 가정마다 그 레시피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유연성 덕에 요리는 스페인의 거의 모든 가정과 대서양을 건너 식민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
앞서 진정한 빠에야는 빠에야 팬에서 수분기를 날려가며 뭉근하게 끓여야 하고 반드시 샤프란을 사용하여 풍미를 돋우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해나가던 혼란스러운 식민지의 상황에서, 화덕에 올린 널따란 파에야 팬을 어딘가에서 공수해와서 스페인 본토에서도 귀하디 귀한 샤프란을 뿌리는 여유를 그 어느 누가 가질 수 있었을까. 아로즈 꼰 뽀요의 스페인식 레시피에는 샤프란을 사용하도록 되어있지만 식민지의 부엌에서 그러한 관습은 얼음이 더위에 녹듯이 자연히 무너져 내렸다. 식민지에서 나고자란 사람들은 구경도 하기 힘들었던 샤프란의 황금빛은 브라질 태생의 아나토(annatto) 씨앗이나 토마토 페이스트가 대신했다. 얕고 넓은 전용 팬을 포기한 만큼 밥의 질감도 각양각색이었다. 리조토 같은 질감으로 축축하게 끓이기도 하고 고슬고슬한 쌀밥 정도로 부드럽게 익히기도 했다. 물론 빠에야처럼 쌀을 꼬들꼬들하게 바짝 말려가며 요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 중요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아로스 꼰 뽀요가 진정한 아로스 꼰 뽀요가 아님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로스 꼰 뽀요에 원형(archetype)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가정요리로서의 자유분방함, 단지 그것뿐이었다.
한편, 스페인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아로스 꼰 뽀요가 아무리 임시변통하며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한들, 엄연히 스페인 태생의 요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애초에 신대륙에 쌀을 옮겨가서 경작을 시작한 이들이 바로 스페인의 개척자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들이 신대륙으로 이주시킨 것이 어디 쌀뿐이랴. 말과 돼지, 소, 양, 염소, 닭과 고양이, 그리고 무수한 인디오를 죽음으로 내몬 각종 전염병까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건은 한 대륙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막아놓은 수문이 터지듯 광폭하게 밀려들어온 정복자들의 내몬 변화의 물결 속에서, 토르티야와 소프리토, 아도보와 쌀문화는 미세한 잔물결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렇듯 신대륙에서 위세를 떨쳤던 스페인의 요리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과거 스페인 본토를 지배했던 또 다른 정복자의 흔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무적함대와 무자비한 식민지배로 명성과 악명이 높았던 스페인 제국을 감히 식민지로 삼은 그 막강한 세력은 과연 누구였을까? 세비야의 알카사르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를 방문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확연한 그들의 흔적, 이들은 바로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랍인들이다.
지금은 유럽인의 땅인 스페인에 아랍인들이 꽤나 오랜 기간 거주하게 된 사연 뒤에는 당연히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혼란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로마제국에 이어 서고트족이 영향권 하에 있었던 스페인의 영토에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서기 711년에 시작된 우마이야 왕조에 의한 스페인 정복(Umayyad conquest of Hispania) 이후의 일이다. 그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많은 지역이 아랍 왕조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아랍 세력이 가장 확장되어 있던 시기에는 아스투리아, 나바라 그리고 아라곤의 북쪽 산간 지방만이 겨우 남아서 독립을 유지할 정도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 세력이 강성하였다.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아랍인들의 영역을 알-안달루스(Al- Andalus)라 명명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안달루시아(Andalucia)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오늘날 스페인이 유럽의 영토로 확고하게 자리잡기까지 그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이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부부 중 하나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이다. 정략결혼으로 두 왕국의 임시적인 결합을 이룬 이 부부는 스페인 땅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이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되찾았던(reconquest)' 이슬람의 땅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이다. 이들이 그라나다를 침공하고 포위하였던 1492년, 보압딜(Boabdil)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마지막 모슬렘 지배자인 에미르 무하마드 7세가 마침내 그라나다 토후국의 지배권을 이사벨과 페르난도에게 이양하였다. 이로서 알-안달루스 지역의 레콩키스타가 완성되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말을 타고 알함브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오르며 보압딜은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을 그라나다의 전경을 뒤돌아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보압딜은 알람브라 궁전의 열쇠를 여왕과 왕에게 양위하며 '이슬람 교인들의 종교와 관습을 박해하지 말고 유지하게 해달라'라고 부탁한 바가 있다. 보압딜과 가톨릭 군주들 간의 덧없는 약조는 보압딜이 탄 말이 언덕을 넘어서자마자 얇은 살얼음처럼 부서지고 말았다. 아랍 세력이 앗아간 선조들의 땅를 수복한 가톨릭 신민들은 남아있는 이슬람 교인들과 아랍 왕조의 흔적을 파쇄하는 일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보압딜의 나직한 한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듯이, 수백 년 동안 이슬람 땅에 퇴적되었던 아랍의 문화와 역사는 그렇게 사라지는 듯 보였다.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에 경탄한 왕의 특별 명령으로 간신히 알람브라 궁전 정도만이 분쇄되는 화를 면했을 정도로 스페인 사람들의 적대심은 대단했다. 건물이며 서적이며 오랜 기간 스페인에 거주했던 아랍 주민들까지 이러한 광풍을 버티지 못하고 스페인 땅에서 스러졌다. 하나, 유독 이러한 질풍노도 속에서 살아남아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명맥을 유지한 아랍인들의 유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랍의 식문화였다.
아랍인에 의한 식민지배의 역사를 형형하게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예시는 바로 식재료와 요리를 일컫는 스페인어의 단어들이다. 스페인어에서 알파벳 'a'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는 아랍어의 영향을 받은 단어가 많은데(영어에도 있는 algebra 같은 단어가 대표적), 유독 식재료에 관련해서 그러한 경우가 많다. 이를 나열하자면 그 명단이 꽤나 길어진다. 알본디가스(albóndigas, 아랍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식 미트볼), 오일(aceite), 올리브(aceituna), 쌀(arroz), 자두(albaricoque), 사프론(azafrán), 아몬드(almendra) 등의 단어가 그 예시이다. 오랜 기간 사용하며 애초에 자신들의 것인 양 입에 붙어버린 이 단어들을, 스페인인들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옮겨온 농작물 또한, 아랍인들이 물러나는 시기에 와서는 너무나도 소중한 식재료가 되어버려 도저히 내쳐버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아랍인들이 스페인 영토로 옮겨온 대표적인 식재료에는 쌀, 시금치, 사탕수수, 자두, 오렌지, 아몬드, 사프론 등이 있다. 어디 농작물뿐이랴. 스페인은 아랍인들로부터 맛을 쌓아 올리는 정교한 비법을 배우기도 했다. 시나몬, 큐민, 넛멕, 민트, 실란트로와 같은 허브와 향신료가 이들로부터 도입되었고, 식초를 이용하여 고기를 보존하는 방법 또한 이들이 전수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으로 퍼져나간 아도보(adobo)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스페인의 식탁에 아랍인들이 남긴 흔적을 살펴보다 보면, 스페인 정복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식탁을 바꾸어버린 사건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대서양을 건너 인디오의 식탁을 바꾼 사건, 그리고 이에 앞서 스페인의 식탁 또한 아랍 정복자에 의해 완전히 재정립되는 시기를 겪었다는 점이 마치 반투명한 미농지를 얹어놓은 것처럼 고스란히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화권의 다양한 쌀 요리들. 왼쪽부터 Mandi, machbūs, Mansaf (출처: 구글 검색)
따지고 보면 빠에야의 어원이 과연 어느 언어의 것이었는지, 아로스 꼰 뽀요가 신대륙에서 얼마나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는지를 따지기 전에 이 모든 공덕을 아랍인에게 돌리는 것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애초와 쌀과 사프론을 이베리아 반도로 가지고 간 이들이 아랍인들이며, 이들이 바로 사프론으로 염색한 밥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곁들여먹는 레시피를 스페인 사람들에게 전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 빠에야가 진짜이고 저 빠에야는 가짜이며 아로스 꼰 뽀요가 빠에야와는 어떻게 다른지 옥신각신 논쟁을 하는 것을 만약 이들이 목격할 수 있다면, 이 아랍인들은 과연 무엇이라 말했을지? 원조에 대한 논쟁은 시조 격 되는 요리 앞에서는 겸손하게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요리와 추억을 즐기는 순수한 마음, 그 자체가 아닐까.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요리는 문화의 그 어느 저변보다도 강렬하고 순수하게 지나간 역사를 기억한다는 점이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스페인 요리에 푹 빠져 살았다. 동영상도 여럿 보고 몇 가지 요리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로 한 나라의 요리를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스페인 요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골라내야 한다면 지중해와 이슬람, 아메리카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스페인은 큰 나라이다. 위쪽으로는 선선한 고산지대가 있고 그 아래에는 무더운 고원지대가, 그 밑에는 태양이 내리쬐는 지중해를 접한 해안이 펼쳐져 있다. 역사적으로도 통일국가를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요리의 지역별 특성이 뚜렷하다. 하지만 식사에 와인이나 맥주를 곁들이며 여유를 즐기는 지중해 지역민 특유의 여유는 어딜 가나 발견할 수 있다. 올리브유의 최대 생산국인만큼 올리브유 인심도 후해서 요리마다 맛 좋은 올리브유가 듬뿍 뿌려져 있다.
지중해 지역이라는 지리적인 요소 외에도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이 스페인의 식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베리아 반도의 상당 부분을 이슬람 왕조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이슬람 식문화의 영향을 받아 쌀, 가지, 아몬드, 오렌지와 같은 재료가 널리 사용되었다. 스페인의 대표음식으로 유명한 빠에야도 이 시기에 도입된 이슬람의 쌀요리가 발전한 형태이다. 1492년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신세계를 향한 도전에 앞장섰던 스페인의 식문화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토마토와 오이, 옥수수, 감자, 파프리카, 코코아는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스페인으로 전파된 식재료이다.
-파프리카 파우더(Spanish paprika powder; pimentón):
토마토와 더불어 스페인 요리의 붉은색을 담당하는 일익이다. 고춧가루와 비교하면 매운맛이 거의 없는 편이며 좀 더 달큼한 향이 난다. 파프리카 파우더는 크게 (1) 원산지가 특정되지 않은 파프리카 파우더(헝가리, 남아메리카, 이스라엘 산 등), (2) 헝가리안 파프리카 파우더 (3) 스패니쉬 파프리카 파우더(이 경우 pimentón이라고 부를 수 있음)로 구분할 수 있다. (1)의 경우는 단순히 요리의 색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며 깊은 향취나 매운맛은 없다. (2) 헝가리산 또는 (3) 스페인산으로 원산 지명을 달고 제품의 경우, 그 맛과 향에 있어 다양한 등급이 매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나라 모두 파프리카 파우더에 대한 자부심이 높으며 이에 따라 매운맛(hot)과 달고 연한 맛(sweet and mild) 사이에서 다양한 등급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한국에서 이를 모두 접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경우 라베라(La Vera) 지방의 특산품인 훈제 파프리카 가루(smoked paprika; pimentón de La Vera)가 유명하다. 수확한 파프리카(pimento)의 겉면을 장작불에 오랫동안 그슬린 후에 이를 건조하여 만드는데, 특유의 훈제향이 매력적이다. 인터넷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만약 레시피에서 매운맛이 나는 파프리카 파우더를 요한다면 파프리카 파우더와 카옌페퍼를 사서 이 둘을 기호에 맞게 혼합하는 것도 방법이다.
-샤프론(shaffron, 샤프론이 없어 빠에야 시즈닝 사진으로 대체함):
파에야의 아름다운 황금색의 비결이다. 이슬람 식문화의 영향을 받은 재료이다. 스페인은 좋은 품질의 샤프론 생산국으로 이름이 높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우니 스페인을 여행할 때 꼭 사도록 하자(라고 써놓고 정작 사 오지 못했다).
-셰리 식초(Sherry vinegar, 없다면 화이트 와인식초로 대체):
셰리와인으로 만드는 식초로, 셰리와인 특유의 나무향이 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화이트 와인식초로 이를 대체하는 것을 추천한다.
-초리조 소시지(chorizo):
스패니쉬 파프리카 파우더(피멘톤)를 듬뿍 넣고 만들어 열을 가하면 매콤한 고추기름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온다. 수프 요리에 올려 먹으면 환상적이다.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코스트코에서도 가끔씩 발견된다.
-만체고 치즈:
스페인을 대표하는 치즈로 부드러운 것, 단단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너트류의 향이 강하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치즈이다.
[소프리토 재료]
아로스 꼰 뽀요를 만들기 전에 소프리토를 먼저 만들어볼까 한다. 요리의 기본이 되는 야채볶음 소스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미리 많이 만들어놓고 샥슈카를 만들거나 빠에야를 만들 때 필요한 만큼 덜어서 쓰면 편리하다.
- 토마토 캔 두 개
- 양파 1~1.5 개(잘게 썰어서 준비)
- 마늘 두 톨(다져서 준비)
- 청피망, 홍피망(파프리카) 각 1 개씩 또는 합쳐서 3 개(잘게 썰어서 준비)
- 파프리카 파우더
- 월계수 잎
- 올리브유
[아로스 꼰 뽀요를 위한 소프리토 조리법]
1) 불에 잘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다.
2) 잘게 썬 양파를 넣고 양파에 황금빛이 돌 때까지 볶는다.
소프리토의 양파는 갈색으로 타지 않되 황금빛이 되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돌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3) 양파가 다 익으면 잘게 썬 마늘을 넣고 3분 정도 더 볶는다.
4) 잘게 썬 파프리카를 넣고 파프리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는다.
5) 토마토 캔과 월계수 잎, 파프리카 파우더를 을 넣고 모든 재료가 부드럽게 잘 섞일 때까지 10분 이상 익힌다.
[아로스 꼰 뽀요 재료]
- 소프리토 2컵
- 닭고기 적당량 (2명이라면 1인당 다리 2개, 닭가슴살 1개를 추천)
- 쌀 1컵~1.5 컵 (기호에 맞추어)
- 치킨 스톡, 소금, 후추
- (고형 치킨 스톡을 사용할 경우) 물 2~3 컵 (쌀을 양에 따라 가감함)
- (선택) 붉은 파프리카 하나, 그린 올리브, 오레가노, 터머릭(샤프란 대용)
1) 닭고기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올리브유를 두른 뜨거운 팬에서 겉면을 노르스름하게 익힌다. 모든 면이 노르스름하게 변하면 닭고기를 따로 덜어낸다.
2) (1)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는 팬에 소프리토와 쌀을 넣는다. 쌀이 소프리토에 잘 섞이도록 주걱으로 젓듯이 살짝 볶는다.
3) 따로 덜어두었던 닭고기를 (2) 위에 올리고 치킨스톡을 푼 물을 넣고 끓인다. 쌀알이 익고 물이 충분히 졸아들 때까지 약불~중약불에서 서서히 끓인다. 물이 졸아들면 소금으로 간을 본다. 샤프란(터머릭), 오레가노 등의 향신료를 넣는다.
나는 팬에 공간이 모자라 잠시 냄비로 재료들을 옮겨담았다.
4) (3)의 쌀이 익는 동안 파프리카를 준비한다. 가스버너에 직화로, 또는 오븐에서 파프리카를 잘 익힌 후, 밀폐된 용이게 넣어 뚜껑을 닫아둔다. 한 김 식은 파프리카를 들고 껍질을 벗겨내어 가늘게 썰어 준비한다.
5) 볶음밥이 아니므로 쌀을 너무 자주 휘젓는 것은 추천하지 않지만 쌀이 바닥에 눌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프라이팬이 아니라 냄비에서 만들 경우 바닥이 얇으므로 더더욱 쌀이 타는 것에 주의하도록 한다. 쌀이 밥의 형태를 갖출 때쯤 그린 올리브를 올린다. 짠 국물이 흘러나와 밥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남미의 사랑을 받게 된 요리, 아로스 꼰 뽀요를 완성하였다.
부드러운 향기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오븐에 구운 파프리카는 색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입안에서 녹아드는 식감과 달달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생각보다 쌀이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리 물에 쌀을 불려두는 것을 추천한다.
밥이 꼬들하게 말라있는 빠에야와는 달리 조금 질척한 정도로 조리했다. 사실 가정마다 요리법이 조금씩 다른 가정식 요리인만큼 취향껏 가감하면 되는 것이다.
요리의 원류를 따지는 일은 참 흥미로운 일이지만, 제대로 따지자면 그보다 복잡한 것이 없다. 원재료의 수준까지 해부를 해서 따져야하기 때문이다.
쌀과 샤프란은 아랍에서 스페인으로, 스페인에서 라틴 아메리카로 긴 여정을 거쳤고,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재료인 닭은 본디 라틴 아메리카 태생이 아니어서 스페인 정복자들이 라틴 아메리카 땅에 도달하면서 식량 생산의 용도로 들여온 것이다. 반면 소프리토의 핵심인 토마토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유럽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를 한 몸에 품고, 철저히 가정식으로 남기로 한 요리가 바로 아로즈 꼰 뽀요이다. 그 이름부터가 보편적이다. 쌀과 닭이라니, 어느 누가 이 조합을 쉬이 거절한단 말인가.
아로스 꼰 뽀요는 해산물 빠에야와 같이 화려한 모양새는 없어도 그 자유로움과 편안함으로 인해 대서양을 성공적으로 건너 라틴 아메리카의 가정식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요리가 기억하는 거대한 역사를, 이 닭다리살 한 입과 함께 음미해보는 것이 어떠할까.
위키피디아: 소프리토(sofrito)
https://en.wikipedia.org/wiki/Sofrito
위키피디아: 아도보(adobo)
https://en.wikipedia.org/wiki/Adobo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3310&cid=58987&categoryId=58987
https://www.tripsavvy.com/finding-good-paella-in-spain-1643897
https://www.thespruce.com/basic-sofrito-2138264
http://roadsandkingdoms.com/2012/spains-paella-problem/
http://www.thehungrycuban.com/the-history-of-spanish-paella/
http://www.saboreagourmet.com/la-utentica-paella-valenciana/
http://www.spanish-food.org/spanish-food-history-arab-influence.html
https://catavino.net/how-the-moors-influenced-spanish-cuisine/
https://en.wikipedia.org/wiki/Rice
http://www.worldsofflavorspain.com/spain-and-latin-america
http://www.foodreference.com/html/a1028-arroz-con-pollo.html
http://mykitcheninspain.blogspot.kr/2013/09/beyond-paella.html
Paella
https://theculturetrip.com/europe/spain/articles/everything-you-need-to-know-about-pa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