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민 작가가 읽어주는 『계절의 맛』
만화 『리틀 포레스트』는 아주 간단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다. 시골에서 성장한 주인공이 도시에 올라가 몇 년을 살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간다. 그녀는 고향 집에서 홀로 소소하게 농사를 짓고, 하루 세 번 1인분의 식사를 차린다. 그리고 홀로 맛있게 먹는다. 이것이 전부다. 원작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이며,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한국에서 김태리 배우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한국 작품이 개봉하기 한참 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접했다. 첫 관람을 했을 때부터 푹 빠져서 머릿속에 복잡한 일이 생길 때나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거릴 때, 너무 덥거나 또 너무 춥다고 느껴질 때면 이 영화를 틀어두곤 했다. 그러면 화면 속에서 주인공은 한 끼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겨울에 구운 고구마를 먹기 위해서 일단 고구마를 심는다. 그리고 잘 자랄 수 있게 매일 밭에 가서 고구마를 돌본다. 그리고 나면 당연히 고구마를 수확한다. 이제야 요리의 재료가 준비된 셈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운 고구마는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에 겨울까지 상하지 않도록 수분을 바짝 말리는 과정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고구마를 하나하나 편 썰고 그것을 꿰어 바람에 말린다. 그렇게 고구마를 준비하다 보면 계절은 어느새 겨울이 되어 있고, 잘 마른 고구마를 화롯불에 올려 두어 개 굽는다. 많이 굽지도 않는다. 혼자 먹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말린 고구마를 잘 구워서 주인공은 한 입, 맛있게 먹는다.
이 모든 과정을 보다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뭘 저렇게까지...'이다. 정말이지 '혼자 먹을 건데 뭘 저렇게까지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TV를 끄고 이불을 덮고 누우면 이상하게도 정반대의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생각이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 걸까?'
정말 그랬다. 영화 속 주인공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고, 그 보답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을 선물 받는데,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뭘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저런 소중한 시간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왜 이리 바쁘게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한 1인분의 식사에 얼마의 시간을 허락할 수 있을까?"
답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어쩌면 잴 것 많은 사회생활 복판에 선 많은 분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싶다. 그런 기분이 켜켜이 쌓이던 순간, 브런치북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급류에 휩쓸리듯 매일을 살아내다 보면 가끔 돌아볼 때를 잊은 적도 있다. 나를 살필 여력도 좀처럼 나지 않아 어쩐지 웅덩이에 푹 빠져 고인 채로 그대로 있던 날도 있었다. 이런 날은 퇴근길에 시장으로 향한다. 텔레비전을 켜는 대신 먹고 있는 음식에 시선을 두고 맛에 집중해 한 끼를 챙기고 나면 희한하게 마음이 한 풀 가라앉는다. 조바심에 급히 흐르던 시간이 제 속도를 찾기 시작한다.
글리(정보화) 작가의 브런치북 『계절의 맛』에 담긴 글이었다. 작가가 쓴 이 글이 너무나 가깝게 다가왔던 이유는 글에서처럼 나 자신이 크고 작은 급류에 휩쓸리듯 살아가고 있고, 나를 살필 여력을 찾기도 전에 웅덩이에 빠져 지내는 날이 잦아서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들에 『리틀 포레스트』를 켜 두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시계를 보며 고장 난 내 삶의 시계를 맞춰보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고장 난 시계를 안고 살아간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급류에 휩쓸리고 있고, 여전히 웅덩이를 침대 삼아 지내고 있다. 그랬기에 나의 고장 난 시계를 천천히 다시 고쳐줄, 글리 작가의 브런치북 『계절의 맛』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갖가지 계절의 맛을 즐기며 적당한 계절의 속도에 시계를 맞출 수 있었다. 혹시 지금 나처럼 고장 난 시계 때문에 쫓기듯 사는 사람이 있다면 『계절의 맛』을 펼쳐보기를 추천한다.
글: 브런치 작가 최동민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와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의 만남. <브런치 라디오>는 브런치에서 작품이 된 글, 원작 '브런치북'을 브런치 작가의 목소리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멜론에서 즐기는 특별한 책방, 브런치 작가가 읽어주는 브런치 리딩 북 <브런치 라디오>를 멜론 스테이션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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