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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직업란 앞에 머뭇거려본 당신에게

최동민 작가가 읽어주는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by 브런치팀

소설가 로맹 가리.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곳은 프랑스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모스크바에서부터 힘겨운 이주를 했다. 따뜻한 남프랑스에 도착한 모자는 이민자의 힘겨운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맹의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로맹의 삶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맹 가리 역시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넌 작가가 되어야 해.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빅토르 위고처럼 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잊지 않고 살아갔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로맹과 어머니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로맹 가리가 2차 대전에 공군 비행사로 참전한 순간에도 유효했다. 로맹 가리를 스타덤에 올려준 데뷔작 『유럽의 교육』은 로맹 가리가 전쟁터에서 써내려 간 작품이었다. 목숨이 오가는 사투 속에서도 로맹 가리는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키려 애쓴 것이다. 어머니의 존재가 로맹 가리를 글 쓰게 했고, 마침내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가에게는 자신을 글 쓰게 만드는 어떤 요인들이 있다. 그중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최초의 인연, 부모의 존재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부모님의 직업을 자주 조사했다. 나는 그때마다 아버지의 직업을 적는 칸에서 긴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매번 다른 답을 적곤 했다. 예를 들면 '토목'이라든지 '건축'이라든지 '건설업' 같은... 두루뭉술한 답을 적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의 직업란에 '막노동' 세 글자를 적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아버지의 ‘직업’이 아닌, 직업란 앞에서 머뭇거린 나의 ‘행동’이 더 부끄럽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린 나이에 '막노동'이라는 글자는 너무나 감추고 싶은 단어였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임희정 작가의 브런치북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에 담긴 글의 제목을 보고는 단숨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 글의 제목은 바로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였다.




그러한 제목 아래 담길 글에는 부끄러운 과거의 내 모습이 담겨 있을 것 같았고, 그 기억을 이겨내고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은 진짜 이유는 아마도 '나와 같은 부끄러움을 가진 이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같은 경험을 글로 공유하며 위로받고 싶다.'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런 공유와 소통, 위로의 마음이 꼭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둔 자식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임희정 작가의 브런치북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어쩌면 부모와의 끊어지지 않는 실을 바라볼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일 것이다.


이 책에 담긴 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이 또 있다. '가던 방향을 틀어 일부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이라는 글이다. 이 글에는 힘겨운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 쓰러질 법도 한데, 다시 한번 힘을 내 딸이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슈퍼로 방향을 트는 부모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방향을 튼다는 것. 그것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일부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행동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깨닫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그 주체가 부모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합리화를 해버릴 때도 많다. 하지만 자신이 부모가 된다거나, 부모의 이름을 보호자로 쓰던 시기를 지나 부모의 이름 앞에 보호자로 나의 이름을 써야 하는 시기가 오면 이 글의 제목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를 태어나게 하고 나를 걷게 하고 또 뛰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게 해 준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니 부모라는 최초의 인연, 그 시리도록 붉은 실을 바라볼 줄 아는 분들의 옆에 이 책이 놓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글: 브런치 작가 최동민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와 음악이 필요한 순간 '멜론'의 만남. <브런치 라디오>는 브런치에서 작품이 된 글, 원작 '브런치북'을 브런치 작가의 목소리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멜론에서 즐기는 특별한 책방, 브런치 작가가 읽어주는 브런치 리딩 북 <브런치 라디오>를 멜론 스테이션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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