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상하이 21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은 아무리 좋은 기분을 가지려 해도, 아쉬움이 깃든다. 얼마나 떠나 와 있어야 돌아가는 걸 반길까?
오늘의 여정은 오래되고 의미 깊은 것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 차분한 걸음으로 지금 서 있는 순간을 바라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호텔 조식이 아쉽다는 일행들의 이야기에 동참하며 더 나은 점심을 기획하기도 한다. ‘사는 게 이렇지 뭐’ 하며.
짐을 꾸리고,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에 짐을 맡긴다. 첫날 헤매며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간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는 여전히 크고, 낡은 것과 헌 것이 뒤섞인 거리는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이곳도 며칠 지나다니다 보니 익숙하네.”
“신기하게도 늘 그렇지 않아. 좀 익숙해지려고 하면 떠나ㅎㅎ”
“그것이 여행자의 본질 아니겠어. 결국 떠나게 되니까.”
“그래. 떠나게 되니까, 더 자세히 보게 되고,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 되는 것 같아.”
“근데, 규봇은 어디로 간 거야?”
어젯밤 머물렀던 신천지, 환한 시간에 보니 정말 ‘新天地’, 뭔가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다. 거리에 사람도 더 많고, 노천 카페의 외국인들이 더욱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시간만 있다면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렸을 텐데…
신천지의 거리를 거닐다가, 옆쪽에 차도를 따라가면 허름한 골목 안쪽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나온다. 잘 모르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평범하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표가 필요하다. 매표소는 어느 시골 버스정류장처럼 좁고 낡았다. 직원들 중에 한국인은 없고, 한국말 잘하는 사람도 없다. 입장료는 20위안(약 3,500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일 텐데, 관리도 그렇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찝찝했다.
드디어 안으로, 넓은 한쪽 벽에 작게 걸린 ‘대한민국림시정부’라고 쓰여 있는 오래된 현판이 뭔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좁은 문을 통과해 안쪽을 들어서며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촬영 금지란다. ‘도대체 왜?’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공간인데, 기록할 수 없다니… (물론 찍지 말라고 찍지 않지는 않았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좁은 편이었고, 어두운 편이었다. 1층에는 단체 관람객을 위한 영상실이, 2층에는 김구 선생님의 집무실을 비롯한 각 부처의 집무실이 사람모형과 함께 꾸며져 있고, 3층은 임시정부 활동에 관련된 사진과 신문, 문서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1919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뜨겁게 한 생을 살아갔던 분들을 떠올리며, 헤매고 쫓겨 뜻을 제대로 품지도 펼치지도 못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러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의 치열함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일까? 이런 생각, 쓸데없는 것일까? 어쨌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갔던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볼거리로 치면 한없이 빈약하다, 대충 훑어본다면 10분으로도 족하다. 하지만 많은 생각 거리가 그 좁은 공간에 그득했다. 그것만으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임시정부에서도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일행들은 말이 없었다. 이제 실질적인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라고 할 수 있는 ‘문묘’로 향한다. 마지막인 이유는 가는 날이 일요일이라서. 즉, 문묘에서는 매주 일요일에 중고책 시장이 열리기 때문.
입구부터 어수선하다. 사당의 안쪽 너른 터에 여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번잡한 소음과, 바닥에 널린 좌판들이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허름한 고서에서부터 랩핑된 신간까지 다양한 책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 우표, 엽서, 수첩, 쓰던 노트, 서류뭉치, 옛날 지폐, 화집 등 온갖 온간 인쇄물들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책 보기에 적극적이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서 책을 훑어보고 있었다. 낯선 디자인과 어색한 형태의 책들도 많았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익숙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도 책을 사러 온 사람처럼 책들을 봤다. 한자만 가득한 책은 패스, 크고 무거운 책도 패스, 결국 우리 손에 들린 책들은 그림이 많이 담겨 있는 가벼운 책들이었다. 흥정도 나름 재밌었다. 아저씨에게 일행 여러 명이 함께 사니까 깎아달라고 하니까, 그건 안 되고, 서비스로 책 한 권은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소통은 어떻게 했냐고? 영어도 중국어도 안 돼서, 손짓 발짓으로 했더니 잘 알아들으신다는 거.
중고책 시장이 열린다기에 찾긴 했지만, 문묘도 나름 유명한 곳이다. 문묘(文庙, Wénmiào 원마오)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신해혁명 이후, 공자의 사상은 낡은 풍습으로 여겨져 수많은 문묘가 사라졌다고 한다. 상하이 문묘는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입구 쪽은 시장이 들어서서 어수선한 편이었지만,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와도 여유롭다. 사당 앞쪽에 공자의 동상도 볼 수 있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도 몇몇 볼 수 있다. 더 깊숙이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넓다. 어떤 곳에는 공자의 저서로 보이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식이 짧아서 그저 낯선 사당을 둘러보는 정도였지만, 너른 공간에 사람도 많지 않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여유 있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머물다 가도 좋을 것 같다.
문묘뿐만 아니라 문묘를 오가며 마주치게 되는 주변 동네의 일상 풍경도 제법 볼거리를 안긴다. 어쩌면 그 어느 이름난 곳들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신천지에서 문묘까지 도보로 약 20~30분, 지하철 이용 시 10호선 신천지역에서 한 정류장 지나 라오시먼(老西門) 역에서 하차 후 도보로 5분.
* 문묘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 중고책 시장 운영 시간: 매주 일요일 오전 8시부터 해질 때까지
* 문묘 전체 입장료는 10위안, 중고책 시장만 보려면 1위안.
이제 상하이에서 주어진 시간은 바닥에 이르러 간다. 우리의 발걸음은 결국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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