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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May 24. 2018

4월의 영화일기 <패터슨>

오늘도 운전을 해요

(2018. 04. 02. 14:30부터 15:05까지 - 노트에 손으로 쓴 것을 블로그에 옮긴 후 다시 옮기다)


rain falls. 두 단어로 이루어진 시의 제목을 소녀가 말하고 패터슨이 뒤이어 그 단어를 나지막이 발음할 때, 아름다웠다.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본 <패터슨>이 올해 내가 극장에서 본 첫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로버트 패틴슨이 출연하는 작품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었다) 가끔은 착오와 기대 없음에서 아름다움이 돋아난다.



뉴저지에 사는 패터슨은 버스 운전을 하는데 나는 그가 주 5일 출근을 한다는 사실과 매일 오전 7시 30분 경부터 운전을 시작해 적절한 점심시간을 갖고 저녁 해가 지기 전에 퇴근을 한다는 지점에서 감탄했다. 일상은 단어답게 무료함을 유지하며 굴러간다. 작은 변주가 있기도 하다. 아내 혹은 파트너인 로라가 그리는 희고 검은 줄무늬, 원, 패턴이 매번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패터슨의 버스는 매번 다른 대화를 나누는 다른 승객들을 싣고 움직인다. 일상성을 유지하며 그 낱낱의 순간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은 얼마나 고강도의 노동인지. 내가 연인의 귀를 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깨무는 일은 따지고 보면 얼마나 특별하고 성실한 사건인가.

영화는 길었고 루즈했지만 아름답고 명랑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패터슨의 생활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는 그의 습관에 대해서. 다른 습관도 하나 있다. 버스를 타면 운전석 바로 뒤에 나 있는 자리에 앉아 버스 기사마다 가지고 있는 작은 습관과 디테일을 포착하는 것이다. 운전석 사진을 몰래 찍어 간직하는 것도 그 습관의 일부다. (나쁜가?) 운전하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 관해 상상한다. 매일 같은 구간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해가 뜨고 지는 일을 보는 건 지루할까. 혹은 내가 그런 것처럼 매번 새롭고 다소 감동적이기까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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