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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 Sep 15. 2018

아무도 아닌

사랑하는 마리코는 어느 방향에서 올까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소설가 정유정



나는 살고 있다 어떻게 하냐면


출근해서 편집을 하는 일로 하루와 다른 하루를 구분하면서. 파란 색 바탕에 붉은 색 파동. 광고와 노래의 진폭은 다르다. <쩔어>와 <Heal the world>의 주기도 다르다. 열 달 넘게 비슷한 음의 파동을 들여다보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슥 보고도 광고인지 교통정보인지 분간할 수 있다. 소리를 안 듣고도 어떤 소리인지 알고 편집해 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인사돌 플러스 광고와 지 마켓 글로벌 광고를 구분할 수 있고, 서울시내 교통상황과 국도 상황의 음파가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됐다. 5시간 넘게 걸리던 편집을 이젠 1시간도 안 돼서 해낸다.


편집을 하기 위해서는 방송국 서버에서 라디오 원음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야 한다. 매일 그 날의 날짜와 시간을 쳐 넣으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다시 확인한다. 오늘, 2018091411부터 2018091417까지 숫자들을 타이핑하다가 알았다. 아, 오늘, 벌써, 20180914, 이야? 여름은 언제 가 버린 거지? 다 가버렸다고 투박하게 말해버리기엔 좀 그렇지만.


도서전에서 산 정유정의 책에 저런 문장이 있었다.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나는 죽음이 아닌 삶 위에 있으므로 그렇다면 이 시간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그것일 텐데, 생계를 위해 오디오를 편집하는 순간에만 내가 몇 날 며칠을 살아내고 있는지 깨닫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꼴이 아닌가 싶다.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편집하고 싹싹하게 인사했단 사실이 일과에서 그나마 유의미하다. 수치에 가까운 감정이 든다. 자유도 의지도 자유의지도 충분치 않고 나는 그냥 가만히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차가 오나. 나는 종종 주저앉아 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다리가 아플 때까지 서 있다가 다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잊어버린 사람 같기도 하다. 기다린다.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황정은의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실리는 마리코를 기다릴 때 앉지 않는다. 상당히 오래…… 기다리면서도. 실리는 앉지 않아. 왜냐하면 길게 자란 풀에 묻혀서 마리코가 자칫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갈지도 모르니까. 서서 기다린다. 마리코는 어느 방향에서 올까. 그러다가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서야 실리는 앉는다. 앉아서 기다린다.


너무 많이 기다리다가 이제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타협된 무엇이고, 사랑하는 마리코가 아니라서, 내가 기다리는 것이 언제 올지 몰라 내내 서 있으면서도 그 마음에는 좋은 것이 반드시 올 거라는 상상, 그런 설익고 난처한 조각이 없다. 붉은 파동 앞에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30, 8, 볼륨을 조정하고, 재빨리 스테레오로 파일들을 저장하면서 하루와 다른 하루를 보내고 그런 방식으로 기다린다. 자유도 의지도 없이. 삶에서 좋은 것이라 상상하곤 하는 것들은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그것들은 가만 보면 아주 징그럽다. 나는 침대 매트리스에 얼굴을 대고 누워 그것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는 느낌을 받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나와 너무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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