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영재를 처음 눈으로 본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대학교 <화학> 전공서적을 거침없이 보는 과학영재가 너무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다. 궁금했다. 그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나는 왜 그 친구만큼 과학을 잘할 수 없는 걸까? 매일매일 이것저것 질문했다. 곧 내가 그 남자아이를 좋아한다고 전교에 소문이 났다. 예쁘장하고 적극적인 여자애와 조용히 공부만 하는 이과 너드남의 스캔들은 중학생들에게 꽤 재밌는 루머였다. 나는 그래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그 아이에게 질척거렸다.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다. 이성적 끌림이 아니라 관중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하게 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영재가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까지 가서 영재를 연구하고 논문도 쓰고 대학부설 영재교육원에서 일도 맡아서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사람들이 영재들을 더 잘 알아주었으면, 해서 시작하게 됐다. 조금 날 것으로 표현하면 영재 진성 덕후가 여러분 우리 애들 예쁘게 봐달라며 피의 쉴드를 그럴싸하게 치고 싶었다.
지금부터 내가 좋아하는 영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영재는 똑똑한 사람일까?
네이버에 '영재'를 검색하면, '지능이 높은 사람'이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맞다.
영재는 똑똑한, 지능이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높은 지능'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재는 '재주', '재능'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국어사전에서는 '영재'를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재를 머리가 좋은, 그래서 학교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로 생각한다. 또래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물어봐도 대체로 비슷한 답을 한다.
선행학습도 척척 해내고,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 문제를 풀어내거나 기억력이 월등해서 암기를 순식간에 한다거나 하는 아이들.
하지만 법에 따른 영재의 정의와 학계에서 바라보는 영재는 조금 다르다.
영재교육을 최초로 명문화한 1972년 미국의 Marrland 보고서에 의하면,
영재란 “그 능력 개발을 위해 학교교육 이외의 특수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일반 지적 능력, 학습 능력, 창조력(사고력), 리더십, 시각/무대 예술 지능, 정신운동 능력의 6가지 재능 중 특출 난 한 가지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높은 수행을 보이는 자”로 정리하고 있다.
<영재교육진흥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영재를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영재를 양성하고 지원한다. 국가에서 담당하는 영재교육은 <영재교육진흥법>을 기본으로 하는데, 정부에서 정의한 영재는 '재능이 뛰어나며', '타고난 잠재력이 있고' 이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한 특별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특별한 교육인 영재고, 과학고가 탄생했고 이런 특수한 학교에서 특별한 교육을 영재에게 제공한다.
미국 영재교육의 대표적인 학자 S.Renzulli는 영재를 '지능', '과제 집착력', '창의성'의 세 가지 특성으로 정의했다. 그의 이론인 '세 고리 모형'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요소 각각이 상위 15%이면서 이 가운데 한 가지 분야에서 상위 2% 이상인 아이가 영재라고 한다. 세 고리 모형은 '지능' 뿐만 아니라 '과제 집착력'과 '창의성'과 같은 영역을 영재의 요소로 포함시켰다는데서 의미가 있고, 학계에서도 설득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재능이 뛰어나고,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고, 지능이 높고 과제 집착력이 있으면서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들인 영재는 어떻게 알아볼까?
영재학교,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물론 영재다. 영재를 위한 특별 교육 기관에서 선발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영재성을 입증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학영재학교(KSA)의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학교장이나 교사의 추천을 받아 창의적 문제해결력 검사, 서류 심사, 영재성 다면평가, 심층 구술과 면접 평가 등을 거쳐 최종 선발된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수과학분야의 영재교육에 특화된 학교이기 때문에 주로 수과학 관련 역량을 판단하고 수과학영재를 판별해 낸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영재를 판별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와 판별도구를 사용해서 영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촘촘하게 선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재학교, 과학고에 가지 못한 허준이 교수는 2022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세기의 난제를 풀어내는 것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허 교수는 중학생 때 학교 선생님께 과학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가 '넌 수학을 못해서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에서야 선생님이 재능 있는 영재를 알아보지 못했다면서 쓴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당시 허준이 교수는 수학 성적이 매우 낮았다고 한다. 수학 성적이 매우 낮은 학생이 과학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하면 대부분 허준이 교수의 중학교 때 선생님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그렇다면 수학 성적이 낮았던 중학교 시절의 허준이 교수는 수학에 재능이 없는 아이였고, 영재라고 할 수 없을까?
물론, 후천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 하지만 허준이 교수가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단순히 후천적 노력만으로 필즈상을 수상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일궈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허준이 교수의 어린 시절처럼 영재성이 발현되지 못하였거나, 영재성이 있는데도 그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에는 '선교육 후선발'의 영재 판별을 하고 있다.
먼저 '잠재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영재후보를 선발하여 교육을 한 뒤 오랜 기간 평가를 여러 번 거쳐 진짜 영재를 가려내는 식이다.
영재의 지능과 과제 집착력, 창의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교사가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전문가 평가, 서류 평가, 창의성 평가 등 복잡한 평가를 통해 영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영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영재에게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