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다시 멕시코 | #6. DJ와 함께 춤을
J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생일 파티 여행으로 42명을 실은 버스가 께레따로에서부터 14시간을 달려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플라야 깡그레호(Playa Cangrejo)는 떼후안테펙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어느 지점에서 오솔길처럼 좁아지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든다. 거대한 버스가 울퉁불퉁한 길 위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드디어 해변에 도착한다. 핸드폰 시그널도 잘 안 터지고, 인터넷도 없고, 관광객도 없는, 레스토랑과 숙소 하나만 달랑있는, 우리들만 있는 넓은 해변.
그곳에서 영화에서만 보았던, 늘 해보고 싶었던 비치 파티가 시작된다. 둠칫 둠칫.
해변에 도착한 첫날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미친 듯이 바다를 기다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래를 밟자마자 너도나도 입고 있던 겉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선크림을 바르고 태양을 쬐러 눕거나, 아이스박스에서 시원한 맥주나 와인을 꺼내어 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다. 혹은 나처럼 이 모든 것을 하거나.
사실 우리가 간 잘 알려지지 않은 플라야 깡그레호(Playa Cangrejo)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데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내게는 파도가 너무 강렬했다.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할 정도로 수온은 알맞았지만, 거센 파도를 뚫고 지나간 뒤 평온한 바다 위를 둥둥 떠 있기에는 조금 무서웠다.
아, J에게 어떻게 이렇게 숨겨진 곳을 알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외할아버지가 레바논에서 탈출해서 배를 타고 뉴욕에 정박했는데 입국을 거절당하자 계속해서 배를 타다 도착한 곳이 멕시코의 베라크루즈 지역이었고, 이 해변 근처에 자리를 잡으시게 되었다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 해변을 자주 왔었다고. (그렇다, J는 레바니즈-멕시칸이라고 보면 되겠다. 농담으로 부유한 탈레반이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아마도 중동에 있으면 이질감이 없을지도?)
자칭 상어 JM,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J, 그리고 수영과 서핑을 즐겨하는 G가 같이 수영하러 바다에 들어가 보자고 했지만 무서웠다. 파도 좀 봐, 얘들아!
물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무서워했고, 수영을 할 줄 모르지만 구명조끼에 의지해 고래상어와 헤엄치고, 호흡기를 믿고 스쿠버다이빙을, 서프보드에 의지한 서핑을, 물속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믿고 5m 높이에서 다이빙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 자신과 맞서고 싶었고 이겨내고 싶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물속에 얼굴이 잠기는 것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고, 누워서 물에 떠 있을 수 있거나 물에 둥둥 떠서 스노클링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단, 발이 땅에 닿는 곳에서만!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서핑한다고?”
물에 빠지면 서프보드를 붙잡으면 되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G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자기가 알려줄 테니 제발 수영 먼저 배우자고. 근데 이 바다에서는 당연히 안 된단다. 수영장에서 하자는데… 아니 G, 우리 수영장을 함께 가지 않는데 그럼 언제 알려주겠다는 거야? 아무튼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무식하게 용감하고 극단적이었던 나를 돌아보게 했달까.
"바보야, 그거 정말 위험한 거야. 큰 파도가 오면 서프보드를 버리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해. 보드를 붙들고 있다간 네가 위험해진다고! 그리고 너를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영 배워. 너 물에 빠지면 누군가는 너를 구하러 갈 텐데, 그럼 그 사람들의 생명은? 그 사람들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는 생각해봤어?"
갑자기 멍해졌다. 두려움을 떨쳐내겠다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대담함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잘못된 방법으로 두려움과 맞서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수영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속에서 더 재밌게 놀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너무 부러웠다. 거칠고 높은 파도가 와도 그 안으로 쑤욱 몸을 집어넣고 파도를 넘어서는 친구들이. 그리고 난 뒤 물 위에 둥둥 떠 올라서 바다를 정처 없이 표류하며 해변을 바라보고 자연을 느끼는 모습이. 이래서 내가 수영 배워야지 했는데! 3월에 수영장 갔다가 물이 너무 차가워서 수영 전후로 샤워를 20분씩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추운 건 너무 싫어… 나는 추위를 잘 타는 summer person이다. 진짜 수영 배워야지, 안 되겠다. 이래서 사람은 나중을 생각하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써먹을 수 있지!
3일 내내 이어진 해변에서의 파티는 날마다 그 바이브와 느낌이 달랐다. 시끌시끌하고 다들 (거의) 온종일 술 마시고 춤을 췄던 첫날, 두 그룹으로 나뉘어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춤추며 놀기도 했던 둘째 날, 브라질리언 보사노바와 함께 해변에 누워 이야기 나누고 낮잠도 자고 선탠도 했던 마지막 날. 그리고 각자 예약한 시간과 날짜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받는 마사지까지! crazy → chill,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바이브가 재밌었다. 이 모든 걸 준비해준 J에게도 많이 고마웠고.
오… 음식? 빼놓을 수 없다. 여긴 와하카잖아! (첫날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레스토랑과 숙소가 하나만 달랑 있는 줄 알았는데 서너 군데 정도가 있었다) 사실 종일 맥주를 마시거나 와인을 마셨기에 크게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와서 코를 간지럽히는 음식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안 먹을 수가 없다. 커다란 생선구이, 구운 새우 요리, ceviche con camarón(새우가 들어가 있는 회무침 정도 될 것 같다, 소스는 당연히도 라임 주스 베이스), pulpo al la diabla (매운 소스가 버무려진 문어 요리). 맛을 형용하고 싶은데 설명이 불가하다. 뭐랄까 함께 한입을 먹고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그런 맛. 이런 순간들이 멕시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해변에서 하는 비치 파티.
내가 호스팅 한 건 아니지만 버킷리스트 하나 체크해야겠다. 넓은 자연 속에서 아주 찐하게, 그리고 재밌게 즐겼다.